[단비발언대] 진희정

▲ 진희정 기자
서른여덟이 되도록 여자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는 숙맥 홍만택이 있다. 또, 딴에는 여자를 꽤나 다룬다지만 매일 밤 떠나간 '18세 순이'를 부르며 서러운 건 마찬가지인 죽마고우 희철도 있다. 마을에 시집온 옆집 우즈벡 신부를 본 할아버지 등쌀에, 장가 못간 이 죄인 둘도 신붓감을 찾아 우즈베키스탄으로 간다. 떠나라! 찾을지니, 구하라! 얻을지니.

이역만리로 떠난 맞선 여행의 결과는 반타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희철은 우즈벡 여성과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만택은 맞선녀가 아니라 현지 통역을 담당한 불법체류 탈북여성 김라라를 사랑해 지참금 명목의 원정비용만 날리고 홀로 돌아왔다. 영화는 라라가 만택을 찾아와 재회하는 것을 끝으로 이들의 결혼 원정기가 결과적으로 성공했음을, 흐드러지게 핀 벚꽃 엔딩 장면으로 대신 알렸다.

덕암리 대표 농촌 궁상 노총각 만택과 희철의 <나의 결혼 원정기>처럼, 결혼이주여성만 20만에 이르는 우리 농촌의 다문화 현실도 국경을 뛰어넘는 낭만의 결과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가 우즈벡 여성이든 탈북여성이든 출신이 상관없을 만큼 둘 사이 진정한 마음 그 자체가 고귀하다면 말이다. 서로 다름에서 오는 차이는 그저 사랑하는 이들이 감내해야 할 진통 정도로 끝난다면 말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만은 없는 게 현실 아니던가. 우리 사회 다문화 가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가난한 나라 여성의 설움을 담보로 한 일종의 상행위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 땅에서 해결하지 못한 결혼 그 자체가 목적인 남성들이 신부를 얻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펼치는 ‘인신매매’라고 한다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건가?

이제, 진실게임에서 진심을 고백하는 시간이다. 결혼에 실패한 5명의 남성이 재혼을 위해 베트남으로 떠났다. 서로 신상정보를 파악하고 만나, 통역을 통해 몇 십 분 대화를 나눈 뒤 결혼이 결정됐다. 만택과 희철, 그리고 우주벡 맞선녀에게 주어졌던 ‘선택’을 고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실상은 딸과 다름없는 아가씨를 ‘간택’하는 60대 재혼자의 일방적 결정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결혼을 전제로 베트남 신부 쪽에 천오백만원을 주고, 결혼 뒤에는 매달 얼마씩 친정집에 돈을 보내는 계약으로 재혼에 성공했다.

KBS <VJ특공대> ‘결혼 신풍속도-인생 2막! 베트남 재혼 원정기’를 통해 국내와 베트남 현지는 물론 세계 곳곳에 방영된 한국의 국제 매매혼이다. 이게 결혼 신풍속도라니. 모자이크 뒤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춘 이들은 제 나이 절반도 안 되는 어린 신부와 인생 2막을 살기 위해, 신랑이 신부의 친정에 주는 ‘지참금’을 넉넉히 준비했다. 부부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마음가짐 대신 말이다.

경북 청도의 한 베트남 여성은 생후 19일 된 아기 곁에서 14살 많은 한국인 남편에게 수십 차례 찔려 사망했다. 남편과 시어머니 폭력에 시달리다 못한 또 다른 베트남 여성은 아파트에서 제 몸을 던졌다. 부산에서는 20살 베트남 신부가 입국 일주일 만에 40대 정신 병력 남편에게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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