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홍기빈 소장
주제①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

시장의 허망함 직시… 인간 가치 회복하려는 움직임

“너희들 지금 그럴 때야? 우리는 세계 유수 대학과 경쟁해서 이겨야 해!”
“터무니없이 치솟은 등록금은 불합리해. 영어 강의, 스펙 경쟁이 제대로 된 교육일까?”

 ▲ 강의 중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 양호근

등록금 투쟁에 대한 우리 사회 두 가지 목소리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이를 칼 폴라니가 말한 사회의 ‘이중적 운동’으로 설명했다. ‘자기조정 시장 창출’과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그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성과 효율성 최적을 찾아가는 시장경제를 말한다. 반대로 ‘자기보호 운동’은 자기조정 시장이 허망한 유토피아임을 직시하고 인간 가치와 사회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두 운동은 ‘길항관계’에 있다. 한 쪽이 세지면 다른 쪽도 거세진다는 말이다. 고무줄 한 쪽을 세게 잡아당길수록 다른 쪽도 세지는 것과 같다. 시장이 극악하게 굴수록 사회 반항도 커지고, 등록금이 못 견딜 정도로 치솟으면 학생들이 드는 촛불도 밝아진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이 두 거대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갈등하는 장이다.   

 ▲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홍 소장은 지난 2009년 칼 폴라니의 역작 <거대한 전환>을 우리말로 옮겼다. 1991년 우리 사회에 소개되고 절판된 뒤 두 번째 번역이다. 이 책은 1944년에 출간됐지만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나고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한 현재 더 절실한 의미를 갖게 됐다. 칼 폴라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경제의 역사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인류역사상 한번도 시장이 사회를 지배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시장은 언제나 사회의 한 부분에서 부수적 영역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회를 ‘이기적 인간’이 경제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보는 경제학도가 들으면 십자가를 거꾸로 세운 것 같은 얘기다.

“시장경제가 인간의 이기적 본능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이라면 ‘이중적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사회적 본능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고 따라서 이와 정면으로 모순되는 게 나타나면 당연히 ‘길항작용’이 일어나게 돼 있죠.”

후배에게 술 사는 것, 대가 바라고 하나?

존 로크 같은 학자가 주장하는 국가의 탄생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로빈슨 크루소 같은 개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서로 노동 분업을 하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해 나뉘어 사냥을 하고 물물을 교환했다. 교환하는 사람이 늘면서 시장이 형성되고 규모가 커지면서 화폐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도적과 불합리도 생겨났다. 따라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사회에서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 사회계약을 맺고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홍 소장은 칼 폴라니의 말을 빌려 이를 반박한다.

“사람들은 ‘노동 분업’과 ‘시장’을 헷갈려 하고 있습니다. 둘을 당연하게 연결시키는 거죠. 어떤 사회든 노동 분업은 거스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노동 분업이 과연 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할까요? 노동 분업을 하면 무조건 시장에서 맞바꿔야 하나요? 그렇지 않다는 게 폴라니 얘기죠.”

폴라니는 인류가 시장이라는 방식으로만 노동 분업 활동을 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장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고 인류 역사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은 장신구나 신기한 물건들이 다였다. 식자재 같은 필수품이 대규모로 거래된 일은 없었다. 식량이 대량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북대서양 무역에서부터다. 이미 자본주의가 생긴 다음이고, 그것도 일정 지역의 도매업에 그쳤다. 

시장 밖 노동 분업에는 인간관계가 묻어있다

대신 노동 분업을 통한 경제활동으로 ‘상호성’, ‘재분배’, ‘가정경제’ 방식이 있었다. 상호성은 ‘선물’ 경제를 말한다. 이는 대학생들이 ‘선배님, 술 사주세요’라고 말할 때 안 사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중에 대가를 바라면서 사 주는 게 아니다. 술을 얻어먹던 후배들은 다시 선배가 돼 후배들에게 사주는 ‘내림’ 형식으로 전해진다.

재분배는 중앙권력이 각 지역의 자원과 물자를 걷어 분배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지역에 필요한 것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과거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그토록 수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재분배 방식에 있었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 물품을 공평하게 분배해주는 중앙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했다. 

 ▲ 홍 소장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 양호근

가정경제는 조그만 섬에서 가족들이 함께 농사짓고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가족 간에도 노동 분업이 존재한다. 아버지가 잡아온 고래를 다같이 먹고, 어머니가 지은 옷을 입는다. 아버지가 장난감을 만들어 주었다고 아이한테 돈을 받지는 않는다. 가정경제에서 노동 분업의 원리는 가족 간 ‘사랑’이다.

이들 노동 분업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관계가 묻어있다는 것이다. 바로 사회성이다. 그러나 시장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물건과 물건의 관계를 토대로 형성된다. 그래서 시장경제가 확장되면 사회적 관계가 무너진다. 시장경제가 팽창하면 억제하려는 힘이 작용하는 이유다.

팔지 말아야 할 것까지 파는 사회

이처럼 역사적으로 정상적이라 할 패턴은 경제가 사회에 종속된 관계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자기조정 시장 체제는 거꾸로 사회를 시장논리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유토피아이며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산업혁명 이후로 시장경제가 전 세계를 장악한 게 사실인데 무슨 말이냐고? 그렇지 않다. 홍 소장을 통해 폴라니 말을 들어보자.

“폴라니는 실제 상품과 허구 상품을 구별합니다. 상품이란 시장에서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이라 할 수 있죠. 이게 실제 상품입니다. 그러면 토지, 노동, 화폐는 모두 허구 상품이죠. 애초 시장에 팔려고 생산된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인간 존재의 활동이고, 토지는 차근차근 분할돼 있는 자연이며, 화폐는 정부의 여러 정책에 의해 모습을 갖추는 사회적 구매력입니다.”

그러나 자기조정 시장에서는 이러한 허구 상품이 마치 실제 상품과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요소인 사람과 자연, 화폐를 몽땅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람을 상품으로 만든다고 칩시다. 여러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회사로부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면 가지 말아야겠죠? 상품답게 행동해야죠. 대학 구조조정으로 대학교수가 직업을 잃었는데 어디 수위 자리가 났다면 그 교수는 노동시장의 탄력성에 따라 군말 없이 수위 자리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노동 상품입니다.”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 양호근
자연도 마찬가지다. 필리핀은 쌀농사 대국이었지만 선진국의 자유무역 요구로 1980년대 초 쌀농사를 없애버렸다. 결국 필리핀에는 식량 값이 폭등해 폭동이 일어났다. 아랍국가 폭동도 빵 값이 폭등한 게 원인이다. 식량 시장의 자기조정을 믿는다면 사람들은 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조용히 굶어 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화폐를 보자. 금본위제는 통화가치를 금에 고정하고 각 국이 보유한 금의 양에 따라 화폐를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국가로부터 벗어나 지구적으로 통합된 시장을 세우기 위해 화폐를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각 국별 물가 구조를 무시한 것이어서 오히려 불확실과 불안정을 낳았다. 이로 인해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나 자기 영역을 넓히는 식민지 정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잘 알려졌듯이 이는 세계대전이란 비극을 낳았다.

이처럼 시장의 상품이 되지 말아야 할 것까지 상품화한 세계가 바로 자기조정 시장이다. 여기서 나온 게 저 유명한 ‘사탄의 맷돌’ 비유다. 시장경제라는 맷돌이 노동, 토지, 화폐 등 허구상품을 비롯한 모든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넣고 빻아버린다는 것이다.    

시장 파국 맞은 뒤 ‘거대한 전환’ 이뤄진다

그러나 폴라니가 보기에 결국 자기조정 시장은 파국을 맞는다. 1930년대 대공황이 터지면서 인간은 시장경제의 한계를 깨닫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뉴딜주의, 공산주의, 나치즘과 파시즘이다. 제 각기 성격은 다르지만 자기조정 시장을 지양하고 국가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거대한 전환’이다.

폴라니의 예상처럼 거대한 전환은 정말 일어난 걸까? 아직도 신자유주의가 이렇게 기세등등한데?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사회는 알아서 잘 굴러간다는 자기조정 시장은 헛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에 다시 한번 이 사실을 일깨웠다. 결국 시장은 홀로 튀어나와 사회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 ‘묻어 들어가(embedded)’ 있어야 한다.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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