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do it 2017, Seoul' 을 체험하다

찰칵- 소리가 전시장의 고요를 깨트린다. 관람객들은 미술품에 핸드폰을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다.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SNS에 사진을 올린다. 아예 전시된 작품을 이것저것 만져보기까지 한다. 미술전시회에서 작품을 만져본다? 일반적인 전시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작품을 만질 수 있는 전시회가 있다. 바로 <do it 2017, Seoul>전이다. 전시회에서는 작품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다.

▲ 광화문역 5번출구에 위치하고 있는 일민미술관. 작가의 지시문에 따라 관객의 참여가 돋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 이연주

'절대로 끝나지 않는 전시'가 있다

<do it> 전시회는 가장 오래된 전시회이자,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개최된 전시회다. 1993년 파리에서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열린 결말을 가진 전시회를 기획했다. 어떻게 작품을 만들라는 지시문을 엮은 <do it 개요서>는 책으로 만들어져 있어, 전 세계 예술가들은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개요서 지시문을 보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같은 지역에 있는 작가들은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연다. 이런 방식으로 <do it> 전시회는 24년간 전 세계에서 지속돼 '절대로 끝나지 않는 전시회'로 불린다. <do it> 전시회가 서울을 찾았다. <do it 2017, Seoul>은 피에르 위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올라퍼 엘리아슨 등의 전 세계 작가 44명이 쓴 지시문을 국내 작가들이 제작한 작품을 전시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지시문은 '신선한 모유와 신선한 정자를 섞어라. 지진이 일어나는 날 밤에 그것을 마셔라' 다. 이 지시문으로 장지아 작가는 <잘 익은 붉은 영혼들>을 만들었다. 작품은 하얀빛이 나는 테이블 위에 다양한 유리병을 놓았다. 유리병 안에는 작가가 담근 다양한 술이 들어있다. 관객들은 지시문에 따라 작가가 담근 술을 마셔 볼 수 있다. 작품을 만지며 지시어에 따라 일반인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 위의 사진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지시문이다. 장지아 작가는 지시문에 따라 유리병에 술을 담았다. 관객은 작가가 담근 술을 마셔볼 수 있다. ⓒ 이연주

구정아 작가는 '흰 종이에 검은색 연필로 선을 긋고 이어서 모양을 만들어보라'는 지시문을 썼다. 관객은 테이블에 구비되어 있는 흰 종이와 자로 지시문에 따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자를 대고 지시문에 쓰인 '오른쪽으로 5cm, 반대로 3cm…'을 따라 선을 긋다 보면 하나의 모양이 나온다. 테이블에는 관객들이 그려놓은 종이가 놓여있는데, 신기하게도 모양이 모두 다르다. 관객은 참여함으로써 작품의 창의와 실험성을 깨닫게 된다.

▲ 일반 관객이 지시문에 따라 그린 그림들이다. 같은 지시문을 보고 그렸는데, 모두 다른 그림이 나온다. ⓒ 이연주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전시회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상은 모든 예술작품의 완성에 관중의 참여가 요구된다는 참여 미술을 주창한다. 그에 따르면 관객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작품은 재창조되고 완전한 형태의 예술작품이 된다. 최근 관객들이 참여하는 미술 전시회가 많이 개최된다. <do it 2017, Seoul> 또한 참여 미술의 일종이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컴퓨터나 게임, 그리고 작가가 제시한 지시문에 따라 행동하고 작품을 재창조한다. 작품에 참여하는 순간 관객은 예술가가 된다. 박혜수 작가의 <당신이 버린 꿈>은 관객에게 직접 타자기를 쳐 자신이 버린 꿈을 적으라 요구한다. 천장까지 늘어진 종이에는 누군가가 버린 꿈이 기록되어 있다. 작품 한쪽 벽면에는 관객들 자신이 버린 꿈에 대해 적은 파란 종이가 액자처럼 전시되어 있다. 관객들의 답은 각양각색이다. 관객들의 참여가 모여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 "당신이 버린 꿈이 무엇입니까?" 관객들이 박혜수 작가의 질문에 자필로 답을 한 질문지가 전시회 벽면에 타일처럼 붙어있다. ⓒ 이연주

<do it 2017, Seoul> 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네 인생에서 버린 꿈은 뭐니?", "너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니?"라고. 관객은 작가의 질문과 지시에 따라 답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돌아본다. 다른 관객들의 답을 보면서 불특정 타인의 인생을 읽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기자도 작가의 지시문에 따라 작품을 만들며 생각하고, 참여하고, 즐겼다. 미술은 무조건 심오하지도, 작가만의 예술이 아니었다. <do it 2017, Seoul> 전시는 미술이 쉽고, 누구나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예술임을 느끼고 체험케 한다. <do it 2017, Seoul>은 오는 7월 9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편집 :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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