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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것의 아름다움
[상상사전] '집'
2017년 06월 01일 (목) 22:28:56 박수지 기자 wbdjffl514@naver.com
   
▲ 박수지 기자

2015년 6월 24일 창원 마산 야구장. 기아와 NC가 대결을 벌이는 사이 바깥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들어와 주심이 10분간 경기를 중단했다. 언론은 연기의 근원지를 단순히 주인이 모기향을 피우다 불이 난 ‘야구장 인근 주택’이라 보도했다. 그러나 이 2층 목조주택은 일제강점기 여류 소설가 ‘지하련’이 살았던 곳이다. 우리나라 페미니즘 문학의 효시인 그녀가 당대의 천재 문인이자 혁명가였던 ‘임화’와 사랑을 나눈 집이기도 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집은 일식과 서양식이 뒤섞인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주택이다. 그러나 현재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보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재개발 설계도에 따르면 ‘지하련 주택’은 곧 놀이터 옆 잔디밭이 되어 사라질 예정이다.

   
▲ 지하련 주택은 1930년대 지어져 일식과 서양식이 뒤섞인 문화주택이지만 재개발구역에 포함돼 불에 탄 후 보수공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 Flickr

집은 저마다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시는 그런 집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역사책이다. 수많은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살아온 도시는 어떤 재료로도 복원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흔적이라는 ‘나이테’를 가진다. 그런데 지금 그 도시들이 함부로 난도질 되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 평균 수명은 23년에 불과해 역사를 만들고 기억하기에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모두의 역사이면서 누군가의 재산이기도 한 낡은 집들은 자본의 눈으로 보면 이익을 낼 수 있는 ‘개발 대상'일 뿐이다. 지역의 문화를 통째로 도려내는 재개발로 도시는 역사가 끊기고 색깔과 특성이 사라진 무색무취의 공간이 되고 있다.

정부와 재벌 건설사 등 이해관계자들은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 재건축을 주민을 위한 것이라며 추진한다. 하지만 권력에 의한 공간구조 개편은 멀쩡한 집과 주민들의 삶, 일터를 파괴한다. 그 위에 욕망의 집을 짓고 이익을 누리는 건 자본력을 지닌 소수 특권층이다.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 주민들은 자기 집을 고칠 수 없고 재개발 과정에서도 소외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보상금을 쥔 채 아무런 주거대책 없이 쫓겨나는 것이다. 용산참사는 대책 없는 강제 철거와 퇴거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용역업체는 주거권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용산 주민들을 폭력으로 제압했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도시의 나이테를 만들어 온 주민들에게 권력이 들어선 용산4구역은 죽음의 ‘헬 타운’이었다.

   
▲ 2009년 서울시 용산4구역 재개발의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 Wikipedia

언론인이자 건축저술가인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에는 생명을 이어온 역사가 있고 또한 생명이 이뤄낸 문화가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을 위한, 사람의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 방법의 하나로 ‘오래된 건물들을 그대로 두는 것’을 소개한다. 또한 자신들이 실제로 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계획과 개발은 그 지역을 슬럼으로 만들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도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공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중심인 도시는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활력이 넘친다. 도시사업의 주체는 주민이어야 한다.

오래된 집들은 분명 손봐야 할 곳이 많다. 하지만 꼭 다 허물고 남김없이 대기업의 아파트로 만들 필요는 없다. 낮고 낡은 집일지라도 이끼처럼 뿌리내리고 잘살고 있다면 주민들이 꼭 그 집을 내놓아야 할 이유도 없다. 오래된 집은 고쳐서 쓰면 된다. 조금만 손보면 역사를 간직한 매력적인 집이 될 수 있고, 대기업에 짓눌린 동네의 작은 수리업체들과 중소기업들도 두루 먹고 살 수 있다.

곧 허물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지하련의 주택이 도서관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여류 소설가와 천재 문인의 보금자리였던 곳에서 그들의 책을 읽는 주민과 관광객들을 그려본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미래로 흐르고 있는 지하련 주택의 역사 속 한 장면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조은비 기자

[박수지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부장, 편집부, 환경부, TV뉴스부 박수지입니다.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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