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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이론의 덫에 빠진 ‘더러운 잠’ 논란
[미디어비평] 가치보도를 추구하는 진보언론을 꿈꾼다
2017년 05월 15일 (월) 07:44:18 남지현 기자 njihyun0116@gmail.com

지난 1월 큰 논란이 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화 ‘더러운 잠’을 떠올려 보자. 여인의 나체를 그린 마네의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그림이다. 박근혜 정권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며 개최한 ‘곧, BYE! 展’에 전시됐다. 이 작품이 논란에 빠지면서 전시의 국회 주최를 주도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내 윤리심판원에 회부돼 6개월 당직 정지 처분을 받았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마네의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합성한 <더러운 잠>. ⓒ 이구영 작가

보수언론의 ‘가짜 페미니즘’

‘더러운 잠’을 ‘여성모독’으로 규정하고 처음 문제를 제기한 언론은 조선일보였다(조선일보 1월25일자 5면). 24일 첫 보도를 시작으로 26일까지 총 5개의 기사를 통해 표창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을 옥죄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같은 기간 동안 각각 4개, 3개씩 기사를 보도해 ‘더러운 잠’이 여성의 인격을 모독했을 뿐 아니라 “정치의 품격과 국격을 훼손”(중앙일보 1월25일자 사설)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인격살인 행위”, “질 낮은 성희롱”이라고 공격했다.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이러한 비판은 ‘가짜 페미니즘’이다. 비판의 의도가 문제다. 조중동과 여당의 여성혐오 프레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록 추락했으나 한 나라의 최고 정치권력이었음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축소했다. ‘더러운 잠’ 속 박근혜는 ‘여성 대통령’이 아닌 ‘여성’으로서만 묘사됐다. 표창원으로 대변되는 ‘남성’과, 정치적 강자인 더불어민주당(조선일보 1월25일자 사설)에 의해 조롱당하고 모욕당한 ‘약자’가 된 거다.

보수진영의 이 같은 여성혐오 프레임이 겨냥하는 대상은 가부장제라는 지배담론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보수진영이 내건 여성혐오 프레임은 젠더 감수성의 소산이었다기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높은 관심과 여성혐오 이슈가 가지는 화제성을 동원해 탄핵국면에서 급격히 벌어진 야당과의 세력 격차를 좁혀보려 한 시도였다.

   
▲ 1월25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두 가지 측면에서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 페미니즘 담론을 도구로 삼았을 뿐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20대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남성에게 살해당했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과 비교해보자. 조선일보는 사건 직후였던 2016년 5월18일에서 25일까지 5건의 기사를 보도한다. ‘더러운 잠’에 대한 기사가 하루 평균 1.6건이었던 반면,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에 대한 보도는 0.625건에 불과했다.

논조 또한 이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여성혐오 프레임을 주장하지 않았고 조현병을 가진 정신병자의 일탈 범죄라는 프레임을 썼다. 박 전 대통령이 여성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때와는 관심의 정도와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랐다. 즉, ‘더러운 잠’ 논란을 주도했던 조선일보가 이를 주요한 이슈로 부각한 것은 여성주의적 문제의식 탓이 아니라 진보 진영을 공격할 좋은 구실로 여겼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보수진영의 어색한 어휘 사용도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해야 한다. ‘인격 살인’이나 ‘성희롱’, ‘여성 모독’과 같은 단어는 박 전 대통령이 여성일 뿐만 아니라 정치 권력자였던 사실을 은폐한다. 본의를 교묘하게 페미니즘으로 포장해 숨겼기 때문에 보수진영의 언어는 혼란스럽다. “국격을 훼손”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감히 한 나라의 대통령을 옷 벗겼다는 분노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겉으로는 여성혐오를 말하니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진정한 국격 훼손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유리천장이 가장 두꺼운 나라 중 하나란 것이다. 또 유력 일간지가 여성 혐오라는 단어 사용을 두려워해 ‘여성 모독’과 같은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가부장적 보수 기득권 세력이 페미니즘을 정치적 도구로 오용해도 이를 제대로 짚어내고 대응하는 진보진영이 부재하다는 건 더 큰 국격 훼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진보언론은 ‘표현의 자유’ 프레임을 내세웠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더러운 잠’과 관련해 25일 각각 1개의 기사만을 내보냈다. 보수단체 회원이 그림을 부순 사실과 표 의원이 윤리심판원에 회부된 사실에 초점을 맞추며 표현의 자유 프레임을 들고 나섰다. 기사의 건수와 후면 배치는 ‘더러운 잠’ 논란을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여줬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때 한겨레는 하루 평균 3.2건, 경향은 2.6건의 기사를 내보냈고, 논조 역시 묻지마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 범죄임을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정신병 환자 관리 실패로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적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이 왜 여성혐오 범죄인지 설명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맥락과 역사를 짚기도 했다. 그러나 두 신문 모두 ‘더러운 잠’ 관련 보도는 3일간 하루 평균 0.3건에 불과했다. 여성혐오 프레임도 다루지 않았다.

   
▲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 의원들이 표창원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며 연 기자회견. ⓒ <TV서울> 화면 갈무리

진보언론의 이 같은 소극적 대처는 아쉽기만 하다. 보수진영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페미니즘 담론을 이용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했어야 마땅했다.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는 기자회견장에서 “더러운 잠에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고, 일부 보수언론 온라인판 기사는 구속된 조윤선의 수척해지는 얼굴 변천사를 조롱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보수진영이 여성혐오적 시각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그런데도 왜 한겨레와 경향은 ‘더러운 잠’ 논란에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방어 논리를 내세우기에만 급급했는가. 진보언론으로서 가치 중심의 보도가 아니라 정파성을 띈 보도를 일삼던 관성 때문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언제나 진보적 가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진보언론이 정당과의 연대보다 진보 가치를 중심에 둔 보도를 했다면 ‘더러운 잠’이 여성 혐오적 요소를 갖고 있음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보언론은 ‘더러운 잠’의 여성 혐오성을 외면했다

‘더러운 잠’이 실제로 여성 혐오를 나타낸 작품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작품을 그린 이구영 작가는 “여성 폄훼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소수자적 특질을 강조해서 대통령으로서 그의 무능함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비상식적 대처를 꼬집기 위해 ‘잠’이라는 요소를 활용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올랭피아>와 <잠자는 비너스>에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하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을 뿐이란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작가도 작품의 의미 생산에 독점적 권력을 갖지 않는다. 작품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창작물은 본질적으로 그것을 보는 이들을 전제로 한다. 작품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이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진다.

이구영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벗은 몸은 특정한 사회적 의미를 표상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시각에 의해 여성의 몸으로만 규정되곤 한다. 여성의 몸이 쾌락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객체화되는 사회에서 여성의 나체는 정치풍자라는 ‘순수한’ 의도로만 읽힐 수 없다. 트럼프 나체 동상이 미국 공원 곳곳에 기습 설치되었던 사건이 ‘더러운 잠’ 논란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나체가 남성의 쾌락을 위해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두 작품의 의미는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던 광화문 광장의 촛불 속에서도 ‘닭 근혜’, ‘미친 X’ 같은 여성 혐오적인 수사가 넘쳤다. 여성 혐오의 역사가 ‘더러운 잠’을 읽는 맥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구영 작가의 항변은 ‘더러운 잠’이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에 의미 있는 답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을 무시하고 표현의 자유만 운운한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보도는 아쉽기만 하다. 진보언론 역시 보수 진영과 마찬가지 오류를 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여성이 아닌 정치적 권력자로서만 규정했다. ‘더러운 잠’ 논란을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단순화하고, 작품 자체나 이를 둘러싼 진보 진영의 대응에 여성 혐오적 측면이 있었음을 외면했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발가벗겨 풍자 그림을 걸었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었겠는가”라고 발언한 것이나, 문재인 전 대표가 ‘더러운 잠’이 정치에서 중요한 “품격과 절제”를 잃었다며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한 대응은 모두 ‘더러운 잠’이 가지는 여성 혐오적 요소를 철저히 비가시화시켰다. 젠더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더러운 잠’ 논란을 정치 품격의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진보언론이 여성주의라는 진보적 가치를 우위에 두고 가치 보도를 했다면 진보 정당의 이러한 대응 역시 통렬히 비판했어야 마땅했다.

‘표현의 자유’와 ‘페미니즘’은 대립적 가치가 아니다

‘더러운 잠’ 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로만 인식하는 것은 진영 논리에 얽매인 현실 왜곡이다.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국가에 그 권한을 일임할 때 난점이 생긴다. 비판 행위 자체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진보언론으로서 자승자박이 될 수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와 여성주의라는 두 진보적인 가치를 대립관계로 규정한 것이 최선의 대응이었는가 묻고 싶다. 진보언론은 ‘더러운 잠’ 사태의 본질에 대한 섬세한 규명과 가치에 근거한 조중동 비판이 가능했음에도 진영논리에 얽매여 이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또다시 보수 진영이 진보의 담론을 전복시켜 그 칼끝을 역으로 진보 진영에 겨눌 경우 그때는 ‘더러운 잠’ 때와 달리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보 언론이 살고 진보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 길이 진보정당을 진보정당답게 만들 것이다.


편집 : 김소영 기자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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