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인류학자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이자 여성‧환경·청소년운동가인 조한혜정(69) 교수가 13일 SBSCNBC 방송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 “구조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시대에 맞춰 청년배당 등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 시대, 일자리 문제는 단기 해결 불가능

▲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한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왼쪽). ⓒ SBSCNBC 갈무리

조한 교수는 “인공지능(A.I.)의 노동력 대체 등으로 일자리 문제는 단기적으로 풀 수 없는 전환점에 있다”며 “이걸 인정 안 하고, 대통령이 되면 직장을 어떻게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한 교수는 “기존의 일자리를 더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어떻게 전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우리 사회의 정경유착, 부정부패, 승자독식, 인맥 주의의 폐해 속에서 직장마저 구하기 어려워진 젊은이들은 완전히 부모가 가진 것에 비례해서 살아가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우 부모의 인맥에 따라 일찌감치 취업이 결정되는 등 곳곳에서 가족주의가 판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한 교수는 청년일자리 대책으로 “기본소득이나 시민수당의 맥락에서 (우선) 청년배당을 도입하는 것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청년배당은 일정한 연령대의 젊은이들에게 현금을 나눠주어 기본생계를 지원하는 것으로, 서울시와 성남시 등이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조한 교수는 “지금처럼 6개월, 8개월 등 조건을 다는 식으로 하지 말고 청년들과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제대로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청년들이) 부모한테 빌붙어 살지 않아도 친구들과 작업을 하든 어떤 (생존의) 조건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한 교수는 청년들에 대해서도 “혼자 있지 말고 작당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입시, 스펙 쌓기 등에 쫓기면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몰려다니지 마라’ 였을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가장 적응력과 생존력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당하기, 즉 무리를 짓고 몰려다니며 어울리는 것은 숨 쉬기 어려운 현실에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무턱대고 ‘애 낳아라’ 대신 아이가 잘 자랄 환경을 

▲ 무턱대고 출산율만 올리자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는 조한혜정 교수. ⓒ SBSCNBC 갈무리

조한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이 엉터리였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후배인 한의사가 영국 연수를 다녀온 후 “아이들은 나올 만한 세상이 아니면 알아서 안 나온다”며 전문분야였던 불임 치료를 포기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엄마의 몸이 너무 바쁘고 과로한 상태라 뱃속에서도, 태어나서도 환대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아이가 안 나온다는 것”이라며 미팅을 주선하고 결혼을 촉진하는 등의 출산율 제고 정책을 비판했다.

조한 교수는 “지금 낳아 놓은 아이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등) 엉망이 되고 있다”며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만들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를 낳을 것”라고 강조했다.

페미니즘 공방, 적대 대신 돌봄과 상생의 해법 찾아야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최근의 페미니즘(여성주의) 논란에 대해 조한 교수는 “실업 등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외국에서 소외계층 남성들이 이민자와 유색인종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 문제를 ‘누가 더 차별받나’ 등으로 따져서는 역효과가 난다”며 “돌봄과 소통, 상생의 개념으로 큰 틀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긴 했지만 의사결정 지위에서 배제되는 등 성차별이 아직 심각한 게 국제비교에서 확인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는 ‘여성도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기계적 생각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기간을 ‘경력 단절’로 보는데, 주부의 일을 남녀 모두 선택할 수 있는 노동으로 재평가하고 육아 경력도 새로운 노동수요에 맞춰 살려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전문가, 시민의 소통으로 ‘탈핵’ 이뤄야

▲ 양심적인 전문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탈핵을 이야기하고 용기 있는 내부고발도 해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조한혜정 교수. ⓒ SBSCNBC 갈무리

환경운동과 강연, 기고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탈핵(원자력발전으로부터의 탈피)을 주장해 온  조한 교수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독일 사회가 이끌어낸 탈핵 결정에 대해 “9일간 계속된 전문가들의 TV토론과 시민들의 온라인 소통 결과였다”며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한 교수는 “후쿠시마를 다루는 일본 언론을 보며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에 좌우되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손자 세대를 위해 탈핵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신과 ‘비전문분야에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하는 남편 전길남(74·카이스트 명예교수) 박사는 탈핵 얘기만 나오면 부부싸움을 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조한 교수는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 국가 연구과제에 파묻힌 과학자들이 사회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한 과학자의 말을 씁쓸하게 전하면서도 “위험한 확률이 있다면 과학자나 공학자 등 전문가들이 경고를 해야 하며 이제는 내부고발도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이날 방송에서 자신이 여성운동을 하면서 부모의 성을 함께 쓰게 된 이유와 차기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 4가지, 교수의 꿈을 접고 영화감독이 된 제자의 이야기 등도 풀어 놓았다. 13일에 방송된 <제정임의 문답쇼, 힘>은 <단비뉴스>와 <SBSCNBC>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55428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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