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민주 기자

▲ 김민주 기자

꿈쩍 않는 기득권층 바위에 눌렸던 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바위에다 계란 치기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구체제의 부스러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책 공방보다 상대 후보 흠집내기에 몰입하는 지금의 선거 풍토는 자칫 ‘촛불혁명’의 정신이 묻힐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적폐 청산은커녕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촛불시민’ 대신 기득권층이 한국사회를 여전히 지배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광장에서 외쳤던 민주주의 회복은 무엇일까? 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룬 절차적 민주주의는 시작한 지 30년이 다 됐다. 2017년에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떼야 한다. ‘촛불시민’은 새로운 정부와 그것을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길 갈망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는 국민의 ‘행복권’ 보장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 권리, 즉 자연권을 갖는다. 자연권 사상은 근대 입헌국가에서 헌법으로 성문화했다. 미국은 헌법의 기초가 되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에 밝혔고, 한국은 헌법 제10조에 드러나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저출산 문제는 행복한 나라가 될 때 해결되지, '대한민국 출산지도'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 Pixabay

한국은 그동안 성장을 핑계로 기본권을 뒷전으로 미뤄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교육, 노동, 주거 등 주요 사회정책들도 그 틀 안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입시 위주 교육제도는 기본권을 보장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누리 교수는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칼럼에서 ‘한국 교육은 일상적인 모욕과 무시 속에서 열등감과 좌절감을 내면화한 ‘열등생’을 만들어내고, 다른 쪽에선 턱없는 우월감과 오만한 심성을 가진 ‘우등생’을 길러낸다’고 썼다. 소수의 우등생을 빼고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 추구가 차단당하는 ‘헬조선’에 진입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수익성만 중시하는 기업의 갑질 문화에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벌어 꼬박 저축해도 높은 집값에 전세 인생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는 행복을 보장하는 9개 나라를 소개한다. 세계 최고 교육 강국인 핀란드는 학교 수업이 주 40시간을 넘지 않으며(우리나라는 주당 70시간) 학교 수업 말고 숙제가 거의 없다. 핀란드의 한 학교 교장은 인터뷰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려고 한다, 타인과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쟁 구도 교육 시스템의 허를 찌르는 말이다. 이탈리아 한 패션기업은 1년에 8주 유급 휴가와 무려 2시간의 점심시간을 제공한다. CEO는 “직원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기계적 효율성보다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우선시한다. 독일 기업은 이사회 절반을 노동자에게 양보한다. 노동자를 기업의 소모품이 아닌 주체로 인식해 그들로부터 경영 아이디어를 구한다.
 
기본권은 헌법에 쓰인 것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실제 삶에 적용되는 국가정책과 사회제도가 국민 개개인의 존엄과 행복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차기 정부는 기본권에 합당한 시민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실질적 민주주의’에 힘써야 한다. 교육, 노동, 주택 등 민생 관련 정책이 여전히 성과에만 매달린다면 불행의 대가는 국가 차원으로 부풀어 오른다. 지난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혼인율과 OECD 출산율 꼴찌라는 성적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못한 결과다. 이런 권리를 보장해주는 정책과 그 정책을 밀고 나갈 리더를 뽑는 게 선거다. 이런 선거 풍토라면 선거는 왜 치르는지 모르겠다.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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