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연정

▲ 박상연 기자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는 권력욕에만 찌든 탐욕스러운 정치인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인공 프랭크는 오로지 권력을 얻으려 움직인다. 그가 가진 원칙은 하나, ‘오직 나만의 권력’이다. 사람을 죽이고, 정적들을 이간질시키며 상원 의원에서 결국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다. 비선 실세인 아내에게 부통령 자리를 약속하는 은밀한 거래도 서슴지 않고 재선을 노린다.

한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권력 쟁취의 전운이 감돈다. 이번 대선의 화두는 ‘연립 정부’였다.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이재명 후보에서부터 국민의당 손학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까지 다양한 방식의 연정론을 내걸었다. 연정의 뼈대는 권력 분산과 협치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변질된 제왕적 대통령을 바로잡기 위한 명쾌한 대안이다. 연정은 다수 정당이 공존하는 구도에서 정치적 안정성을 주고 효율적인 정치활동을 보장한다.

지난 3월 20일 네덜란드 총선에서 13개 정당이 의석을 얻었다. 제1당인 자유민주당은 150석 중 3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집권을 위한 과반 76석을 확보하려면 적어도 3개 이상의 정당과 연정이 필수조건이다. 득표율 0.67%만 넘으면 의석을 얻을 수 있는 소수 배려의 네덜란드식 비례대표제가 갖는 특성이다. 네덜란드에서 연정을 구성하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은 89.5일. 자유민주당의 마르크 뤼테 총리는 연정 협상에 앞서 중산층세 부담 완화, 노년층 복지, 재생에너지 전환을 조건으로 꼽았다. 권력 나누기가 아닌 정책 공유를 우선시하는 정치철학이 돋보인다.

이에 비해 한국의 연정론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주요 정당 5개 중 4당의 뿌리는 1945년 한국민주당, 한 줄기다. 보수와 진보를 자청하는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결국 뿌리는 같은 셈이다. 이념 차이가 미미하다. 무엇보다 후보들의 연정론에는 정책 논의가 빠졌다. 연정 대상의 적합성을 놓고 벌이는 공방전에 그친다. 그래서 연정 주장은 국민의 다양한 의사 반영이 아닌 정치인들끼리 권력 나누기로 비친다. 연정 논의를 벌일 시간이 짧은 점도 마뜩지 않다. 대선까지 30일도 채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란 카드를 삼각형 모양으로 쌓아 올린 카드 탑을 이르는 말로, 위태로운 상황이나 불안정한 계획 등을 뜻한다. ⓒ flickr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제목에서 주인공 프랭크의 끝은 짐작 가능하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카드를 삼각형 모양으로 쌓아 올린 탑처럼 불안정한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모래 위에 쌓은 집이라는 ‘사상누각(砂上樓閣)’과 맥이 닿는다. 권력이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본질을 외면한 이들의 권력 추구는 진흙탕 싸움일 뿐이다. 19대 대선을 준비하는 후보들의 연정론도 자신의 필요에 따른 나눠 먹기식 정치적 구호에 불과한 건 아닌지. 시민주권을 뒤로 한 채 대한민국 정치를 모래 위에 세우는 권력 나누기라면 용납하기 어렵다. 정치가 시민 삶의 질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연정론의 정치'가 아닌 진정한 '연정의 정치' 논의를 기대해 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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