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박명림 교수
주제①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 강의 중인 박명림 교수. ⓒ 구세라
 
"저는 파업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미국에 교환교수로 있을 때 일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중요한 학술회의가 있어 버스를 타러 갔는데 버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었다. 1400여 명이 직장을 내놓고 파업을 벌일 정도라면 뭔가 절박한 뜻이 있을 것 같아 한 노동자에게 말을 걸었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당신이 대체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면 파업이 실패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시오. 당신이 학교로 돌아가면 <보스턴 글로브>든 어디든 글을 올려 주시오.”

결국 박 교수는 회의에 가는 대신 파업 현장에 머물렀다. 이날 9ㆍ11테러가 발생했다.

공공성 부재가 불행의 원인

박 교수는 강의 내내 공공성이 곧 개인성임을 강조했다. 공공성을 높일 때 개인의 삶을 예측 가능하고 더욱 행복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파업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한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법인 동시에 개인성을 실현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가장 좋다는 카이스트에서도 학생들이 연달아 자살했습니다. 학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참회록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구세라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는 공공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를 가르친다는 대학에서 조차 공공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소위 한국을 대표한다는 세 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 파업이 벌어졌지만 파업 현장에서 교수들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며 하버드대에 교환교수로 있을 당시 벌어진 청소노동자 파업에서 교수들이 돌아가며 피켓을 들던 모습을 회상했다. 교육현장에서마저 공공성과 개인성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이기에 ‘중고등학생 자살률 1등’에 이어 ‘대학생 자살률 1등’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박 교수는 한 공동체 안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면 수단화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3대 수출품은 교회와 영어학원, 룸살롱이다. 탤런트 고 장자연 씨의 일기를 보면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접대할 수 있는지 실감나게 한다. 장자연과 같은 유명한 여배우도 그런데 수많은 여성들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있는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그래서 장자연의 자살은 한 사람의 자살이 아니다. 공공성은 개인성이다. 공공성이 타락했기 때문에 개인 장자연은 전체 장자연을 대변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기적? 인간이 만든 재앙!

박 교수는 공공성 부재의 원인을 한국의 역사에서 찾았다. 한국 사회는 20세기에 식민지, 전쟁, 독재, 민주화, 산업화를 모두 겪은 나라다. 이 과정에서 세계 7대 산업을 전 세계 5위 안에 올려놓았다. ‘인간이 만든 기적’이다. 

그는 지구를 북극 위에서 바라보듯, 한 사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북극관점(Nordic View)’을 소개하며 이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한국에는 187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모든 게 들어옵니다. 선교사와 함께 식민지 문명이 들어오다가 1970년대부터는 전 세계로 다 나갑니다. 교회, 사람, 가수들까지요. 북극 위에서 내려다보면 20세기에 빛이 한국에서 다 나와요. 세계 경제성장 통계에서 한국이라는 한 나라가 이룬 것을 보면, 이것은 기적이에요.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만든 재앙’과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세계 최고 자살률, 세계 최저 출산율과 함께요.”

박 교수는 자살을 ‘자기 생명의 거부’로, 저출산을 ‘자기 생명 연장의 거부’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행복하지 않았으면 인간 본능인 출산마저 거부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우리가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자동차를 빠르게 하고, 도로를 직선으로 만드는 동안 인간 삶의 외면에서는 기적을 이루었을지라도 삶 자체가 재앙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박 교수는 우리가 만든 기적들은 삶의 조건에 불과하지 인간 삶 자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가난 문제에는 기적을 이뤘는데, 정작 인간 문제는 재앙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는 발전하는데 개인은 불행해지고 있다며 그 이유는 공공성을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상급식 논란에 대해서도 소리 높여 비판했다.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의무급식 반대하려면 학교시설, 교과서 등 모두 무상으로 받으면 안 돼요. 무상급식은 헌법상의 의무교육인데 유예됐던 것뿐입니다. 예산으로 따져도 급식비용은 교사들 월급에 비하면 정말 적은 것이에요. 급식은 교육의 일부 중에 일부입니다. 교육 전체의 의무교육을 받아들이면서 급식만 가지고 이념공세를 하면 안 됩니다.”

 ▲ 강의 중인 박명림 교수. ⓒ구세라

한국, 미국, 일본에서 ‘처세술’이 베스트셀러인 이유

박 교수는 공공성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왜곡돼 나타나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 첫 번째 형태로 보수언론이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개인을 칭송하는 한편, 제도를 통해 사회를 바꾸려 했던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현상을 꼽았다. 개인이 내면의 충만함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두가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같은 성인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성인이 돼 행복을 찾아야 하는 사회보다는 세금을 내고 개인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더욱 필요하다는 뜻이다.

“ ‘개인윤리는 전체윤리를 숨기고 왜곡할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말입니다. 그는 이것을 ‘폭력’이라고 불렀어요.” 

그는 이명박 정부의 공직 문제 역시 공공성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로마시대로 치면 타락해 처벌을 받아야 할 시민이 시민의 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격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기소돼야 할 사람들, 공적 합의로서 법률 체계를 위반한 사람들이 공직을 차지하고 있어요. 개인 덕성, 윤리의 부재도 문제지만 이는 시민 덕성, 윤리를 희화화 하는 것입니다. ‘시민성’이 후퇴하고 있어요. 국민들은 ‘아, 막 벌어먹고 살아도 되는구나’, ‘저렇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공공성 부재의 세 번째 근거는 ‘처세술 책이 많이 팔리는 나라’에서 찾을 수 있다. 처세술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나라는 한국, 일본, 영국, 미국이다. 최근에는 중국도 끼어들었다. 소위 신자유주의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라들이다. 박 교수는 공적 안전망이 없는 나라에서는 개인이 말을 잘 해야 하고 ‘자기포장’도 잘 해야 하기 때문에 이 방법을 알려주는 처세술이 유행한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사적인 영역에서 절대적인 차이를 공적인 영역에서 상대화 해주는 게 정부”라고 말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는 공통적이지만 사회로 들어가는 순간 상대적으로는 모두 다르다. 돈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상대화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이게 바로 공화국이다. 

“평화는 사람에게 식량을 주는 것, 즉 번영입니다. 공화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같이 주라는 겁니다. 같은 지역에 묶인 사람에게 식량을 고르게 주라는 거지요. 공화국에는 공공성과 분배를 통해 차별을 줄이는 가치가 들어있습니다.” 

개인을 통해 전체가 소리쳐야 세상이 바뀝니다

▲ 박명림, 김상봉의 <다음 국가를 말하다>.
박 교수는 공공성과 공화성을 높이기 위한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정부 수준에서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희소한 자원을 복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정치라고 할 때, 국가의 정책은 제한된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나눌 것인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성격은 곧 삶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이 안정적인 의료와 교육,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도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성격 덕분이다. 

두 번째는 대의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직접성을 높이는 일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은 공공영역에서 시민들의 공적인 요구를 정책으로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표체계의 문제는 시민과 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대표를 대표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대표를 뽑으면 국민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뒀어요.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 견제 없이, 즉 시민의 참여 없이 대의민주주의는 민중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시민ㆍ대표ㆍ정부는 절대로 분리 될 수 없어요. 시민에서 출발해 시민으로 돌아오는 것이 공화국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전체 문제는 없고, 나에게 귀결되지 않은 전체 문제는 없습니다.” 

마지막은 개인성이다. 개인성은 안정성과 예측가능성, 형평성(보편성)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 안정성은 공공성을 높여 그 시점에서의 삶의 불안성을 줄여준다. 예측가능성은 몇 살이 되면 어떤 삶을 살겠다, 어느 정도로 살겠다는 것을 가늠케 해 자살률을 낮추고 출산을 하게 만든다. 형평성은 똑같이 만들려는 게 아니라 서로 목적적 존재로 만들자는 것이다.

“전체는 부분을 모아놓은 것보다 큽니다. 전체가 소리를 낼 때 개인으로서 누구도 할 수 없었던 혁명이 이루어집니다. 그 때의 소리가 개인의 입에서 나와도 개인의 소리가 아닙니다. 그 개인을 통해 전체가 직접 외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있었지만 전체는 전체가 부르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함석헌 선생의 가르침을 소개하는 박 교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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