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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산다네
[씨네토크] 미국 금융위기 파헤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
2011년 06월 10일 (금) 16:20:01 곽영신 기자 kwaaak@danbinews.com

범인은 누구일까. 지난 2007년과 2008년, 전 세계적으로 3천여만 명의 직장을 앗아가고 5천여만 명을 극빈자로 만든 글로벌 금융위기의 책임자들 말이다. 지난달 19일 국내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Inside Job)>은 미국의 핵심 경제엘리트들을 지목한다. 월가의 금융인, 백악관의 정치관료, 하버드나 컬럼비아 같은 명문대의 경제학자들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냉혹한 책임 추궁을 당한 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을까? 천만에, 그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재산도 명예도 그대로 누리면서. 뭔가 께름칙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 남 얘기가 아닌 것 같지 않은가.  

   
▲영화 <인사이드 잡>의 장면들.

<인사이드 잡>은 카메라를 들고 과감히 적진(敵陣)에 뛰어들어 금융위기가 초대형 ‘사기극’의 결과였음을 하나하나 폭로한다. 이 사기극에서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감독 실패로 무대를 마련한 게 정부, 탐욕의 노예가 돼 주연배우로 활약한 게 금융회사들, 이론과 전문성으로 이들의 뒤를 받쳐준 스태프가 바로 경제학자들과 신용평가회사들이다.

정부·금융회사·경제전문가, ‘검은 트라이앵글’

먼저 정부의 무대 장치부터 보자. 1980년대 레이건 정부부터 미국은 ‘금융시장의 발전을 촉진한다’며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1999년에는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분리하는 ‘글래스 스티걸법’을 무력화해버렸다. 안전하게 보호해야할 다수 고객의 예금으로 위험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정부는 투자은행이 모래성을 쌓듯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금융위험성을 높여갈 때 이를 방치한 것에 모자라 감독 필요성을 주장한 일부 전문가의 입을 막았다. 금융위기 당시 증권거래위원회(SEC) 위험관리부서의 직원은 고작 1명이었다고 한다.

   
▲영화 <인사이드 잡>의 장면들. 영화는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런 토양에서 주연배우인 금융회사들은 마음껏 활개를 쳤다. 투자은행은 부실한 주택담보대출을 바탕으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또 투자자들이 돈을 잃을수록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판 뒤, 자기들이 판매한 CDO가 부도날 가능성에 거액을 걸었다. 번드레한 금융 거래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사기를 친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번 돈으로 자기네끼리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스트립클럽을 드나들거나 매춘과 마약에 빠지는 장면에 이르면 관객은 분노를 넘어 헛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주연배우가 무대를 종횡무진 할 수 있도록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피치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은 CDO에 최고 등급인 트리플에이(AAA)를 매겨주었다. 그 대가로 투자회사로부터 막대한 수수료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일류 경제학자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이들은 규제완화 이론을 설계했고, 정부 정책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 명성 덕에 각 금융회사의 고문이나 이사직을 맡아 막대한 돈도 챙겼다. 금융의 공공성과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감시자가 됐어야 할 지식인들이 극소수 금융조직의 이익을 지키는 첨병 노릇을 한 것이다.

<인사이드 잡>의 매력은 이들에게 곧바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관객이 궁금해 할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당신은 왜 그랬는가?”
“왜 책임지지 않는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연신 말을 더듬거나 얘길 하다 말고 발끈하는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 대 교수 등 경제학자들, “잠깐 카메라 좀 꺼줄래요?”라고 말하는 데이빗 맥코믹 전 재무부 차관 등 관료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게 빙빙 돌려 말하는 금융로비스트 스콧 탈보트 등을 보고 있으면 한심하다 못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 책임지기는커녕 더 높은 자리에

   
▲<인사이드 잡>의 포스터.
이들 중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정부와 금융회사의 잘못을 옹호하는 인물도 있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투자은행 임원들이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받고,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정부와 금융회사를 왔다 갔다 하며 자문역할을 해도 ‘그게 무슨 문제냐’는 식이다. 그럴 때 관객은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그렇게 밖에 말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건지 몹시 궁금해진다.

보는 이를 가장 ‘욱’하게 만드는 사실은 금융위기에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들이 여전히 미국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재무부장관인 티모시 가이트너는 금융위기 당시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였는데,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부도에서 구제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는 골드만삭스 로비스트인 마크 패터슨을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의장 게리 겐슬러도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 출신이고,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윌리엄 더글리 역시 전 골드만삭스 수석경제학자다. 오바마 대통령의 수석경제자문위원인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부 차관과 장관을 거치면서 파생상품 규제법을 무력화하고 금융산업 팽창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금융 개혁을 강조했음에도 뚜렷한 진전이 없는 것은 이렇게 ‘월가 사람’들에게 포위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눈을 잠시 국내로 돌려보자. 우리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부실 건설사를 살려주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으로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방조하고, 금산분리 규제 완화 등으로 탐욕적인 자본이 활개 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고위 경제 관료들은 김앤장과 같은 법무회사 등에서 일하다 정책결정권자의 자리로 돌아와 민간에서 ‘돈 받은 값’을 단단히 한다. 서슬 퍼런 감독자가 돼야 할 금융감독원 임직원은 퇴직 후 피감기관의 임원으로 둥지를 트는 관행 속에 뇌물을 받고 ‘봐주기’를 남발하다 저축은행 사태 같은 인재(人災)를 초래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은 공적으로 규제해야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인사이드 잡>에서는 요새 시끄러운 일로 고생 중인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 마디 한다.

“금융위기 당시 헨리 폴슨 전 재무부장관이 주재하고 가장 큰 은행 CEO들이 함께 한 저녁식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장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규제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욕심이 너무 많으니까요.’”

인터뷰어가 자신은 한 번도 그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자, 스트로스 칸이 다시 말했다.

“왜냐면 그때가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던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이 시작된 후, 아마 그들의 마음이 다시 변했을 겁니다.”
 
스스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월가에는 적절한 규제와 관리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이 간 길을 쫓아가고 있는 우리의 금융회사, 대기업 등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사이드 잡>은 올해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cgv
<인사이드 잡>을 연출한 찰스 퍼거슨 감독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정치학 박사출신으로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고 정부 경제컨설턴트로 일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전문성 위에서 그는 이제 다큐멘터리로 미국 사회에 조언하는 컨설턴트가 된 듯하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한 전작 <끝이 안 보인다>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두 번째 작품 <인사이드 잡> 역시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0년 톱10 영화에 뽑혔고, 올해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상 받는 자리에서 퍼거슨 감독은 “엄청난 경제위기를 가져온 금융회사의 간부들이 하나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며 쓴 소리를 했다고 한다. 

미국 언론 대부분이 극찬했던 이 작품에 대한 보스턴 글로브의 평이 특이하다.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오싹한 경제 호러(horror)다.”

공포영화는 보는 동안만 두려움에 떨면 되지만, 이 작품은 스크린 밖의 현실에까지 공포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핵심 중의 핵심’은 하나같이 인터뷰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벤 버냉키 현 FRB 의장, 헨리 폴슨 전 재무부장관, 티모시 가이트너 현 재무부장관, 골드만삭스와 3대 신용평가회사의 CEO들이 그들이다.  

   
<인사이드 잡>의 미국 포스터.

만약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어떻게 될까? 누가 카메라 앞에서 횡설수설 하고, 누가 카메라를 피해 도망칠까? 떠오르는 이름들이 많다. 더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그들이 제발 이 다큐멘터리를 봤으면 좋겠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지성파 배우 맷 데이먼이 깔끔한 내레이션으로 100분 동안 잘 알아듣게 설명해 줄 테니. 복잡한 금융 메커니즘은 다양한 그래픽과 이미지로 쉽게 정리해 주고, 무거운 내용도 경쾌한 록 음악으로 흥을 돋우니 집중하기 쉬울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가 ‘리얼 호러’가 될까봐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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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끙 (116.XXX.XXX.244)
2011-06-11 13:19:00
경제관료 및 금융계 종사자들 대상을 무료상영 해주면 좋겠네요. 여름 더위 해소용으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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