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러려고 정보공개청구 했나...”

   
▲ 송승현 기자

학부 시절을 마무리할 무렵 언론계로 진로를 잡은 탓에, 졸업을 앞둔 학기에 부랴부랴 학보사 문을 두드렸다. 학보 기자로 뛰던 도중 “형, 정보공개청구 한번 해볼 생각 없어?” 후배가 불쑥 던진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후 ‘정보공개청구’ 제도에 관심을 두고 처음 도전한 게 기숙사비였다. ‘기숙사비 책정 근거와 사용 내역’ 정보공개청구를 다니던 학교 측에 냈다. 이후 범위를 넓혀 타 대학 총장업무추진비 공개도 청구했다. 결과는 비공개. 총장이 바뀌는 과정이라며 시간을 끌었고, 결국 결과조차 통보하지 않았다. “총장님이 거절했다”는 변명을 듣는 것으로 학보사 기자도 학교도 마쳤다. 그때 아쉬움은 이번 ‘서울권 대학 전체 정보공개 실태’ 취재로 이어졌다.

서울권 대학 수를 전부 세서 42개 대학에 정보공개청구를 냈다. 다행히 28개 대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대학연구소’에 정보공개청구제도 홈페이지 운영 실태가 소개된 덕분이다. 나머지 14개 대학은 직접 신청 부서를 찾아내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기사에는 ‘그 외 부서 직원들은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는 짧은 문장으로 표현했지만, 무척 곤혹스러웠다. 몇 번씩이나 똑같은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면 “이러려고 내가 정보공개청구 한다고 했나,..” 자괴감이 들고 지쳤다. 신원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단비 기자’ 여부를 밝혀야 하는지 두 번째 당혹스러운 상황에 몰렸다.

2달이 넘는 시간을 끌며 그나마 답을 하나둘 받으면서 더 힘들어졌다. 42개 대학에서 “된다, 안된다” 쏟아지는 답변 메일, 정보공개청구 결과 통지서... 업무 추진비 수치 계산이 많은 탓에 몇 번이고 메일과 통지서를 들추며 셈을 반복했다. 기사 제출 마지막까지 셈에 매달렸지만, 끝내 실수가 나왔다. 기사를 본 독자가 네이버 뉴스 댓글에 “196만원을 69명으로 나누면 어떻게 20만원이 되냐? 기자 수준을 알만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이런 평가 받으려고 몇 달을 매달렸나...” 기자로서 기본적인 사실 확인 부족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 밀실 운영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은 '귀찮게 하기' 뿐이다. 업무추진비 비공개를 결정한 5개 대학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 송승현

무엇보다 씁쓸한 기분이 든 것은 총장들 씀씀이였다. 제공받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서 상 호텔 식사나 기본 2만원이 넘는 식대는 모두 학생 등록금 아닌가. 김영란 전 대법관도 지적했듯, 접대가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한국적 분위기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영란법 통과 당시 “김영란법으로 정(情)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총장실 한 해 경조사비로 많게는 2천만원을 지출하는 현실을 보며 ‘공적인 영역에서 굳이 ‘정’이 중시돼야 하는가‘란 의문이 들었다. “어려웠을 때 도움을 줬던 터라, 도움을 구했다”는 대통령의 말처럼 ’정‘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사회에 불법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나름 투명하다고 자부하며 자료를 냈을 대학들에서도 “업무추진비는 총장 쌈짓돈”이란 결론이 나오는데, 하물며 이번에 자료를 내지 않은 대학들 실태야 오죽할까.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대학 실태를 더 깊게 파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취재의 본령이다. 자료를 전혀 내지 않은 5개 대학(경희, 서강, 연세, 중앙, 한국외대)을 법원에 행정심판 청구했다. 물론 승소해도 5개 대학이 자료를 주지 않을 수 있다. 현행 정보공개법에 강제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파고든다. 후속 취재로 그런 맹점들을 계속 밝혀내야 그릇된 관행이나 법을 바꿔 낼 수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청구센터’ 김조은 활동가의 지적이 떠오른다. “귀찮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밀실 운영이 가져오는 해악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고치는 길은 시민의 직접 참여다.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것처럼, 정보공개청구서를 드는 시민이 늘어날수록 민주주의 곁으로 다가선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밀실 운영에 찌든 모든 주체를 ‘귀찮게’ 해보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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