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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엔 아직도 생생한 전쟁의 흔적이
60년 전 소양강전투 현장에서 발견한 ‘대학살’의 잔해들
[헬로 코리아] 다니엘 모리스
2011년 06월 03일 (금) 23:34:54 다니엘 모리스 morrisdn@hotmail.com

   
▲다니엘 모리스(세명대 원어민 교수)
The month of May of this year marks the sixtieth anniversary of a battle that was probably the last major attempt by Communist forces to wrest complete control of the Korean peninsula. It began on May 16, 1951 to the east of Chuncheon in a battle that included armies from South Korea, North Korea, United States, China, Netherlands and France. It was one of the more ferocious battles that left numerous soldiers injured, killed and missing.

2011년 5월은 공산군이 한반도를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 마지막 주요 전투를 벌인 지 60년 되는 달이다. 1951년 5월 16일 춘천 동쪽 지역에서 발발한 전투에는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네덜란드, 프랑스 군이 참전했다. 그 잔인한 전투는 엄청난 수의 부상자와 사망자 그리고 실종자를 낳았다.

It is called the ‘Battle of Soyang River’ by the U.N. and the Chinese called it the ‘Fifth Phase Offensive’ and to the common U.S. soldier, it is best known as ‘May Massacre’. I decided to go on a road trip to that site after reading military records of the battle, academic thoughts of historians and first hand accounts of the soldiers themselves, living and deceased.  I wanted to see how accurate the stories and writings were and how the area may have changed in the 60 years since it’s passing and how it earned the title of “massacre”.

이 대결을 유엔은 ‘소양강 전투(Battle of Soyang River)’라고 불렀고, 중국은 ‘5차 공격(Fifth Phase Offensive)’이라 했으며 일반 미군들은 ‘5월의 대학살(May Massacre)’로 알고 있다. 나는 군대기록, 역사학자들의 학술적 의견, 그리고 생존하거나 이미 고인이 된 참전 군인들의 경험담을 읽은 뒤 그 전투가 있었던 장소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접한 이야기가 얼마나 정확한지, 그곳이 지난 60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학살’이란 이름을 얻게 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The setting is a large dominating mountain called Garisan or ‘Hill 1051’ that possesses key north/south, east/west roads and a view as far as Chuncheon to the west and Soyang lake and river to the north and east making it a strategically valuable terrain that all sides wanted to possess. The stage was set with a large buildup of Communist forces preparing to unleash a wave of human souls against the north face of Garisan lined with U.S. soldiers and it was that north face that I climbed much in the way the Chinese did.

전쟁의 배경이 된 가리산, 혹은 ‘1051 언덕’은 동서남북으로 모두 길이 나 있고 서쪽으론 춘천까지,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소양강과 소양호가 보이는 곳이었다. 이런 위치는 공산군과 미군 양쪽이 모두 차지하고 싶어할 만한 전략적 가치가 충분했다. 당시 많은 공산군은 가리산 북쪽에 배치된 미군 병사들을 향해 인해전술을 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중국 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북쪽 산을 올랐다.

After climbing half way up the steep incline, I came upon the first sign of the battle which was a very large dugout bunker where Chinese forces would’ve been during the five day battle.  On the surface were other signs of their presence such as a Chinese enamel rice bowl and then a little further, a soup bowl with white Chinese characters printed out with an exclamation point saying, “Let’s unite together to protect the people!” for the purpose of propaganda.

가파른 경사를 반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전장의 흔적을 발견했다. 5일 간의 전투 동안 중공군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이는 참호(dugout bunker)였다. 참호 주변엔 에나멜(법랑)로 된 밥그릇과 국그릇도  있었는데 거기엔 한자로 “하나 되어 인민을 지키자!”는 선전구호가 쓰여 있었다.

   
▲가리산 곳곳에 남아있는 소양강전투의 흔적들. 병사들의 것으로 보이는 국그릇과 밥그릇, 삽, 소총 ⓒ 다니엘 모리스

A little further up the sharp incline signs of the U.S. involvement were visible with the remains of a soldier’s shovel, one of thousands used to dig out protective bunkers and fighting positions.  As I neared the ridgeline where the Chinese and Americans would’ve been face to face, the full evidence of anger, fear and the struggle to kill and live was apparent.  The number of grenade clips, bullet casings were too numerous to count.  Even more apparent were the scars on the land gradually trying to heal itself with fresh soil and plant growth, and concealing other signs of battle such as a U.S. 4.2 inch mortar shell and a Chinese Mosin-Nagant assault rifle.

경사 위로 더 오르니 군용으로 쓰던 삽 등 미군의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엄폐용 참호와 전투 위치를 구축하기 위해 썼던 수천 여 개 삽 중 하나일 것이다. 중공군과 미군이 서로 대치했을 산등성이에 가까워지자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 생사를 위한 투쟁의 흔적이 너무나 뚜렷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수류탄과 총탄의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 더 분명한 것은 땅에 남아 있는 상흔이었는데, 새로운 흙과 나무가 미군의 4.2인치 박격포와 중공군의 모신 네이건트(Mosin-Nagant) 소총 자국을 덮고 있었다.

It was then I felt I was surrounded, that I was being consumed by all these signs of what was indeed a massacre for every soldier involved that I needed to sit down. Looking at the parting clouds of spring’s bright blue sky and the fresh green vegetation sprouting forth from the ground and trees, I began to meditate on what I have learned.  I thought about this battle and the many other battles, the numerous lives lost and changed in the Korean War, a war that brought many countries together yet left one country still divided, and I asked myself, “Was it all worth it?”

당시 참전했던 모든 병사들에게는 정말 대학살이었던 게 분명한 전투의 흔적들에 둘러싸이자, 나는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다. 봄날의 푸른 하늘 위로 갈라지는 구름들, 그리고 땅과 나무에서 피어나는 새싹들을 보며, 나는 내가 알게 된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소양강전투와 다른 많은 전투들, 그리고 한국 전쟁에서 희생되거나 변화됐을 수많은 삶들, 많은 나라들이 함께 했지만 아직도 한 나라만큼은 분단된 채 남겨 둔 그 전쟁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Then I thought back to the trip I took to reach that mountain, passing the ever prosperous and growing cities like Wonju, Hongchon and Chuncheon, driving by the SUVs full of families heading out to the Garisan nature preserve and campgrounds and even greeting the warm smiles of the farmers I met in the valley below.  So the answer to that deep question, a question likely often asked by the soldiers themselves during that battle, asked even today and will be asked in the future, the answer to that question would be, “Yes”.

그리고 나는 다시 가리산에 도착하기까지 왔던 길을 떠올렸다. 날로 발전하는 원주, 홍천 그리고 춘천을 지나 많은 가족들이 스포츠실용차(SUV)를 타고 가리산 자연휴양림과 캠프장 등을 향하고 있었다. 산자락 밑에서 따뜻한 미소를 보여준 농부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마침내 당시 전투에서 싸웠던 병사들이 종종 떠올렸을 그 질문, 그리고 오늘 혹은 앞으로도 사람들이 묻게 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럴 가치가 있었냐고? “그렇다.”


* 번역 윤지원 기자

* 원제: “Was it all worth it?” by Daniel Morris (다니엘 모리스 세명대 원어민 교수는 17년 전 춘천의 캠프 페이지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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