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탄핵

▲ 송승현 기자

출애굽을 이끈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는 구스 여인, 즉 ‘흑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탄핵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도리어 탄핵을 주도한 미리암이 쫓겨난다. 권력을 맡긴 주체가 보기에 탄핵의 이유가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당시 모세에게 권력을 이양한 주체는 야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라는 목적으로 모세에게 권력을 맡겼다. 야훼가 보기에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 인도라는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다. 지도자에 대한 심판은 권력을 이양한 주체가 정해 놓은 목적을 벗어날 때 가능하다. 권력 이양의 주체가 성경에서는 신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수 없기에, 5년에 한 번 선출직 대표에게 권력을 맡긴다. 최순실 사태는 국민에게 이양받은 권력을 대통령 스스로 한 자연인에게 다시 이양한 점에서 불법이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에 대해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명시한다. 정당한 선출직이나 임명절차를 거치지 않은 자연인은 그 주체가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권력을 이양한 주체가 설정한 목적에서 이탈하는 불법행위다.

푸코는 권력을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명목적 개념으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권력을 인정하는 이유는 ‘생산성’에 있다고 설명한다. 즉, 국민은 치안 유지, 소비 창출 등의 생산성을 기대하기 때문에 권력을 정치 지도자에게 넘겨준다는 얘기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보자. 최순실의 결재를 받던 국정 운영 시스템이 작동을 멈췄다. 나라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박 대통령 지지율 5%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이양한 권력을 거둬들였다는 의미다. 푸코의 이론을 대입하자면 대통령의 생산성은 이제 마이너스다.

‘거국중립내각’이 대안으로 고개를 든다. 그러나 중립내각 체제에서 외교와 국방을 담당한 대통령이 전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국토 수호를 내세울 명분이 있는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거국중립내각을 통해 유지되는 박근혜 권력은 외치와 국방 분야에서도 생산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선출직 대통령의 비리와 무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으나 적어도 목적 이탈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안이 부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6일에 이어 12일 100만 촛불집회에서 확인하듯, 국민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목적 이탈로 간주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 11월 12일 백만 시민은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다. ⓒ 박진영

데모크라시(Democracy, 민주주의)의 어원은 데모스(Demos, 민중)와 크라티아(Kratia, 권력·지배)의 합성어인 데모크라티아(democratia, 민중의 힘)다. 즉, 국민의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를 가리킨다. 국민에게 버림받은 대통령이 거국중립내각으로 살아남아 2선 후퇴한다고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라는 민주주의 틀 안에서 권력을 부여받았다. 지금 국민은 100만 촛불집회를 통해 그 권력을 거둬들였다. 촛불은 국민소환제가 허용되지 않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틀 안에서 주권자인 국민(Demos)이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힘(Kratia)의 표현이다. ‘국민의 힘’을 수용해 퇴진하는 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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