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림지마라톤] 뛰면서 ‘극복의 힘’ 얻는 사람들

지난달 22일 오전 충북 제천의 의림지 잔디밭. 재잘거리는 초등학생부터 머리를 빡빡 민 인근부대 병사들, 백발의 노인까지 전국에서 몰려온 2500여 인파가 축구장만한 풀밭을 북새통으로 만들었다. 제 11회 제천의림지 마라톤 참가자들이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 ⓒ김인아

의림지 쉼터광장에서 출발, 제천 시내를 거쳐 대원대학입구를 지나 바이오밸리까지 돌아오는 코스를 중심으로 5km, 10km, 하프(21.1km) 등 3개 종목으로 진행된 이 대회에는 ‘인천사랑 마라톤클럽’ 등 20명 이상의 단체 참가자들도 많았다. 가족과 함께 나왔다는 이승훈(48, 제천시) 씨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또 앞으로 삶에서 마주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키워주기 위해 참가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개회사와 간략한 사전행사를 마치고 하프코스 참가자들이 총성과 함께 출발했다. 5분 간격으로 10km, 5km 코스도 출발했다. 취재를 겸해 5km에 참가한 김지영(26) 기자는 주로 가족단위 참가자와 초중등학생들로 보이는 1600여 명의 뒷줄에서 출발했다.  5km 참가자들은 코스가 짧다고 생각해서인지 처음부터 속도를 냈다. 거의 맨 뒤에서 대기하던 김 기자가 출발할 때쯤, 앞줄 선수들은 이미 수백 m를 앞서가고 있었다.

▲출발하는 하프코스 참가자들 ⓒ김인아

하지만 1km 정도 지났을 때, 도로변에 주저앉아 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참가자들이 오히려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뛰었다. 다만 처음부터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뛰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반환점을 돌 때쯤엔 참가자의 반 정도가 맨 뒤에 출발한 기자의 뒤로 처졌다.

3km가 지났을 땐 지쳐서 걷는 참가자들이 많아졌다. 결승점을 앞두고 마지막 오르막길을 뛸 때, 기자의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길을 막고 있었나 싶어 옆으로 비켜주니 부녀로 보이는 두 명이 지나갔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힘겨운 듯 비틀거리자 40대쯤 된 아버지가 손으로 딸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처음엔 억지로 떠밀리는 것 같이 보이더니 오르막을 지나자 딸 혼자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단체 참가자들도 많았다. 동호회 <사따모>의 경기 모습 ⓒ김인아

저만치 결승점이 보이자 기자의 다리도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짧은 코스라고 생각해서 별다른 준비 없이 참가했는데, 5km도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머리 속이 하얘졌다. 어떻게 결승점에 도달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완주 메달과 기념품을 손에 쥐니 무척 뿌듯했다. 뒤돌아보니 멀리서 걸어오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 5km 우승자 황영배 씨 ⓒ 김인아
5km 부문 우승자인 황영배(53,대구시 달서구) 씨는 마라톤 선수 출신이다. 이날 경기에서 넘어져 손목에 약간의 부상을 입는 바람에 평소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18분대의 기록을 냈다. 황 씨는 지난 88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는데, 2001년 이후 생활체육 붐과 함께 마라톤 대회가 여러 지역에서 생기면서 꾸준히 참여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만 해도 이번까지 12개 대회에 참가했다. 지난해엔 모두 33개 대회에 나갔는데 올해는 구제역 여파로 대회가 다소 줄었다고 한다. 평소 지구력과 스피드 훈련, 산악훈련 등으로 체력을 다진다는 그는 참가한 대회마다 순위권 안에 들었다고 말했다.

“마라톤은 제 삶의 활력소입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가파른 언덕에서도 달리게 하는 힘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뒤에 오는 성취감이라고 한다. 단조로운 뜀박질을 계속하는 동안 몸과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고통 속에 당장이라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극심해지지만 마침내 결승점에 도달했을 때의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힘든 인생 헤쳐 나갈 용기를 얻기에 사람들은 달리나 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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