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쌍용차 해고자 돕는 레몬트리공작단 “참여하세요”

 ▲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박혜경씨 ⓒ 이준석

“엄마 아빠를 잃은 쌍용차 노동자 자녀들의 언니, 누나가 되어주고 싶어 레몬트리공작단을 시작했어요.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아파하고, 누구는 눈치 보며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 밤색 우산을 받쳐든 가수 박혜경(38) 씨가 무대에 올랐다. 지난달 21일 오후 1시 서울 문정동 가든파이브 상가 앞 광장. 빗물 때문에 무대가 꽤 미끄러워 보였지만 박 씨는 햇살만큼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뒤 노래를 시작했다. 알록달록 색색의 우산들이 무대를 에워싸고,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혹은 아빠 품에 안겨 무대로 다가왔다. 박 씨 특유의 상큼발랄한 목소리가 비 때문에 가라앉았던 공기를 단번에 띄웠다.

“외로운 날들이여 모두 다 안녕,
내 마음속의 눈물들도 이제는 안녕……..”

‘레몬트리’ ‘고백’에 이어 ‘안녕’을 부를 때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어른들은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불렀고, 신이 난 아이들은 무대로 올라가 춤을 추었다. 처음에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남자들도 이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봉사와 바자회 등을 위해 천막을 치고 대기하던 레몬트리공작단 자원봉사자들도 흥겹게 장단을 맞췄다.

복직약속 지켜지지 않아 노동자 비롯 15명 목숨 잃어

 ▲ 가수 박혜경과 '레몬트리공작단'의 첫 콘서트 및 바자회의 로고 ⓒ 이준석

“해고노동자로서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했는데, 잠시나마 웃고 즐거워하는 시간을 갖게 돼 너무 기쁩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해서 덩달아 흐뭇하네요.”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황인석 씨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지난 2009년 5월 구조조정에 반발해 평택공장에서 77일 간 농성을 벌이다 무려 2500여 명이 해고되거나 무급휴직 처분을 받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경찰이 폭력적으로 농성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와 가족들이 심신에 큰 상처를 입었고, 회사에 남은 동료들도 고통을 겪었다. 그로부터 2년 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회사측의 복직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중 15명이 자살이나 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날 박 씨가 ‘출동’한 것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48) 박사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집단 심리치료 하는 동안 박 씨가 이끄는 레몬트리공작단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활동이 이날 1차로 끝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7일부터 시작된 심리치료에는 해고자 7명과 가족 6명 등 13명이 8주 동안 참여했다.

“지난 2년간 정말 답답했어요. 사람들 대하는 것도 무서워서 누구한테 말할 생각도 못했고요. 그런데 정 박사님이 말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 들어주시는데 참 속이 편하고 위로가 되더라고요. 아이들도 레몬트리랑 놀면서 너무 좋아하고…….”  

심리치료에 참여한 30대 후반의 한 해직노동자 아내는 이들이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재능기부, 바자회, 심리치료 등 다양한 행사 선보여

박혜경 씨의 무대가 끝나자 재능기부자들의 순서가 이어졌다. 상문고 힙합 동아리 ‘흑락회’의 비보이 공연, 성남청소년교향악단 앙상블 ‘시크릿’의 연주, 이준형 씨 등의 마술쇼, 주기훈 해우 씨 등의 노래 공연도 300여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바자회 ⓒ 이준석

해고자들을 돕기 위한 바자회도 함께 진행됐다. 레몬트리공작단의 트위터 등을 통해 여러 독지가들이 기부한 의류, 음식, 도서, 음반 등을 자원봉사자들이 떠들썩하게 손님을 끌며 팔았다. 틈틈이 해고노동자의 자녀들과 어울려 장난도 치는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처음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낯을 많이 가리던 아이들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보니까 봉사자로서 정말 기뻐요. 아이들도 너무 예쁘고. 이젠 정도 많이 들었죠. 빨리 문제가 해결돼서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전직 놀이치료사인 김태희 씨는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레몬트리공작단 활동이 즐겁다고 말했다. 인천 계산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한다는 40대의 박진회 씨는 초밥을 만들어 왔다.

“생선초밥을 만들어오려다 상할까 봐 롤초밥을 만들었는데 맛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오늘이 첫 활동인데,  오늘 하루 장사도 포기하고 왔어요. 당연히 함께 고민하고 힘을 보태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이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레몬트리공작단에 합류했다. 지난 3월 결성된 공작단에는 현재 8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했고, 매 번 행사마다 그 중 20~30 명이 직접 현장에 나와 봉사한다. 직장인이 70% 정도고 학생이 20%, 기타 10% 정도로 구성됐다고 한다. 

이날 오후 3시부터로 예정된 상담치료를 위해 미리 바자회장에 나와 있던 정혜신 박사도 해고노동자 가족 등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전 행사에는 정 박사 외에 명진스님과 방송인 김제동 씨 등도 강연이나 진행자 등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 쌍용차 노조 이창근 기획실장
쌍용차 노조 이창근 기획실장은 정 박사와 레몬트리공작단 등의 활동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많은 대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1970년대에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읽어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처럼 2011년 노동자들도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뿐 아니라 다른 소외된 노동자들도 많고요. 대학생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노동운동도, 등록금투쟁과 같은 학생운동도 함께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2차 심리치료는 오는 4일부터 시작된다. 레몬트리공작단도 이 일정에 맞춰 활동을 재개한다. 쌍용차 노조원들을 돕고 싶은 마음, 어린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신청은 트위터나 네이버 카페 등을 통해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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