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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삼키며 추억을 빚는 은빛 물결
[현장] 서울 억새풀 축제 (동영상 포함)
2016년 10월 18일 (화) 10:56:39 고륜형 손준수 기자 kryunhyoung@naver.com

은빛 솜털이 춤추듯 하늘거린다. 그 앞으로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이 들뜬 표정으로 다가선다. 손에 들린 카메라는 덩달아 흔들린다. 비단처럼 고운 억새밭 속의 연인, 가족, 친구들이 삼삼오오 맑은 웃음을 자아낸다. 환하게 짓는 미소는 그렇게 또 하나의 가을의 전설이 돼 추억으로 남는다. 밤이 되자 은은한 달빛 아래 조명까지 받은 억새는 또 다른 정취를 빚는다. 잿빛 억새가 빨강, 보라, 연두, 노랑... 한밤에 무지개로 피어난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슴 시린 시민들 마음을 포근히 감싸준다.

   
▲ 제 15회 서울 억새꽃 축제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고륜형

올해로 15회를 맞는 억새풀 축제는 2002년 월드컵 공원 내 하늘공원을 조성하면서 첫발을 뗐다. 서울시가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 일대를 하늘공원과 평화의 공원, 난지 한강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제2매립지를 하늘공원으로 바꿔 억새를 심었다. 15년이 흐른 지금, 하늘공원에는 철새가 날아들고 맹꽁이와 개구리가 산다. 2015년엔 멸종 위기 동물인 삵이 발견돼 생태 공원으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각종 쓰레기가 매립된 탓에 150여종의 귀화 식물도 자란다. 난지도 귀화식물은 우리나라 전체 귀화식물의 50%를 차지한다.

   
▲ 서울 억새풀 축제가 열리고 있는 난지 하늘공원.  억새축제 홈페이지
   
▲ 조명을 받은 하늘공원의 야경. 고륜형

생태공원인 만큼 낮에는 시민에게 개방하지만 밤에는 야생 동식물의 보호를 위해 문을 닫는다. 예외가 있다. <서울 억새풀 축제> 기간 중이다. 억새풀이 만발한 10월, 입구와 전망대를 비롯한 억새밭 일대에 조명을 설치해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억새밭 내 무대에서 시민을 위한 야간 소공연도 펼쳐져 눈과 귀가 즐겁다. 이번 억새풀 축제에서는 주말을 이용해 거리 퍼레이드, 팝페라, 7080 노래 공연, 마술쇼 등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이어진 공연에는 시민 100여명이 모였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즐기는 문화 축제로서의 면모를 한껏 뽐냈다.

“중간고사 끝나고 이렇게 가까운 데로 데이트 나올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달빛 아래 선선한 날씨에서 억새밭을 걸으니 기분이 좋아요”

   
▲ 전망대에 오른 시민들. 고륜형
   
▲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  고륜형

대학생인 조의령(21), 차지환(25) 커플이 들려준다. 이들은 서울 억새꽃 축제의 장점으로 ‘가까운 거리’를 꼽는다. 서울역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하늘공원은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는다. 마포구에 있어 홍대, 합정 등 대표적인 문화 구역과도 가깝다. 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이 하늘공원과 한강 공원을 함께 찾아 이용률도 높다. 서울시 자전거 길의 시작이기도 해 하늘공원은 축제 적지로 인정받는다.

   
▲ 제 15회 서울 억새풀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하늘공원. 고륜형

난지 하늘공원의 과거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1987년 서울시는 도심과 가까운 난지도를 쓰레기 매립지로 점찍었다. 비슷한 크기의 여의도를 서울 중심부로 키운 것과 대조적이다. 분리수거 없는 단순 매립이어서 음식물 쓰레기로 오염 문제가 심각해졌다. 특히 여기서 나온 메탄가스로 화재가 잦아 문제를 키웠다. 수술에 나선 서울시는 2002년 월드컵 공원을 건설하며 ‘매립지 안정화’ 사업을 펼쳤다. 오염 침출수를 막고, 유해가스 포집처리 시설도 만들었다. 흙을 덮어 초지를 조성했다. ‘매립지 안정화’ 사업은 2020년까지 진행된다. 생태 공원으로 진화가 거듭되는 중이다.

   
▲ 1910년 당시 난지도 지도. 올림픽공원 홈페이지
   
▲ 1980년대 경 조립식주택이 들어선 난지도 모습.  올림픽공원 홈페이지

난초와 지초가 자랐다던 난지(蘭芝)도. 나라의 정사를 알려면 난지도에 핀 꽃을 살펴보라고 했을 정도로 난지도는 꽃과 향기가 가득한 섬이었다. <택리지>에는 ‘풍수지리가 좋은 땅’이라고도 쓰였다. 구한말에는 풀이 자란다는 뜻의 ‘중초도(中草島)’로 불렸다. 땅콩과 수수가 자라던 비옥한 농지에서 쓰레기 매립지장으로. 다시 억새가 넘실대는 생태공원으로....

쓰레기 분류로 생을 이어가던 이주민들의 고달픈 삶의 흔적까지 간직한 난지 하늘공원.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은빛 정원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에 푹 빠져보는 잠시의 여유는 서울 시민에게 축복이다. 서울 억새풀 축제가 15회를 넘어 가을 생태문화축제의 대명사로 백년 뒤의 새 역사를 빚어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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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소영 기자

[고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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