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권력

▲ 신혜연 기자

“애완견과 산책할 땐, 아무리 힘들어도 개가 당신 앞에 걷게 놔두지 마라. 그러면 개는 자신이 주인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주인이 들으면 황당할 말이지만 사실이다. 주인은 개와 자신이 동등하게 산책을 즐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산책 때 제멋대로 뛰거나, 주인을 무는 개들은 자신을 주인보다 권력구조의 상위로 착각하는 경우다. 권력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졸지에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주인공이 된다.

▲ 개를 잘 통제하지 못하면, 개는 자신이 주인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 pixabay

한국 사회에서 잘못된 권력관계의 대표 격은 돈과 사람 간의 관계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따르면 권력은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상대를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목줄을 쥐고 당기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돈은 한국사회의 독보적인 권력이다. ‘사법 권력’ ‘언론 권력’ 등은 돈이 만들어낸 부수적인 권력에 불과하다. 최근 진경준 게이트를 시작으로 현직 부장판사가 기업인 동창과 이어온 끈끈한 인연이 밝혀준 진실은 무엇일까? 사법 권력의 실체가 돈이라는 점이다. ‘제4부’로 불리는 언론권력도 돈에서 나온다. 현대 언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언론은 자본의 영향력을 사회의 다른 분야로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사실상 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 돈을 견제할 다른 권력은 없어 보인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던 전 대통령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1인 1표’로 선출된 정부가 ‘1원 1표’로 굴러가는 시장에 밀린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는 고삐 풀린 말처럼 내달린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헌법에 ‘경제 민주화’와 ‘자본권력 남용 통제’를 명시했지만, 정치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실현한다며 설치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운명이 현실을 잘 보여준다. 동반성장위원회가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이냐”며 깎아내렸다. 이후 위원회는 종이호랑이에 머물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심각한 격차,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민주화 실패의 성적표로 고스란히 남았다.

사람과 돈의 잘못된 관계에서 비극이 싹튼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사회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던 청년은 ‘효율성’을 앞세운 혹독한 노동 환경 속에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사고가 꼬리를 물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경제민주화의 참 의미를 살리는 해답으로, 최근 서울시가 구상중인 ‘노동이사제’가 관심을 모은다.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자본 권력의 일부를 나눠주는 제도다. 건실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에서 헌법에 명시하며 이미 성공을 거뒀다. ‘돈은 최고의 하인이지만 최악의 주인’이라는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촌철살인. 목줄을 쥔 주인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개가 최악의 주인 노릇하는 세상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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