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김동춘 교수
주제① 기업사회론

'삼성 비판 그만하라'는 협박성 칼럼

“지난 4월17일자 조선일보 경제면에 ‘만일 삼성이 한국을 떠난다면’이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삼성이 한국을 떠나면 일자리를 잃고 세금도 못 걷는다. 즉, 삼성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규제를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더군요. 김광수경제연구소 김 소장은 반박글을 내고 네티즌 사이에서도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삼성 비판 그만하라’ 내용이 일종의 협박성 발언으로 들렸습니다. 이 칼럼은 우리 사회에서 기업과 국민의 관계, 재벌기업과 우리사회의 관계를 잘 표현해주는 하나의 상징적 칼럼입니다.”

▲강의 중인 김동춘 교수. ⓒ서동일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성공회대)는 ‘기업사회론’을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한국사회의 모습은 기업사회’라고 정의했다. 간단히 말해 기업사회는 국민이 아닌 대기업이 주인이 된 사회를 뜻한다. 그는 기업사회의 정확한 개념 설명에 앞서 사회 안에서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기업사회의 단면들을 말해주었다. 

“몇 년 전 청주에 강연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터미널에 내리니까 플래카드 걸려있더군요. ‘기업하기 좋은 도시 청주’. 몇 번이 나오나 택시로 이동하면서 세어 봤더니 줄줄이 6개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OO’. 이는 지방의 중·소 도시에서 기업유치를 위해 흔히 사용하는 캐치프레이즈다. 김동춘 교수는 비단 도시 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20년 전부터 천천히, 외환위기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사회 전반에서 ‘기업모시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기업전직 사태가 한국 기업사회의 가장 어두운 측면이라고 말했다.

'기업 돈벌이'라면 불법도 용인하는 정부 감독기관

▲'기업사회'에 대해 쓴 김동춘 교수의 책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최근 통계를 보면 공공부문 종사자 243명 중 186명이 금융기관과 기업으로 갔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90%가 대기업으로 가죠. 일각에선 ‘이게 왜 나쁘냐, 전문성을 활용하고 좋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맨 몸으로 가지 않는다는 거죠. 국민의 세금으로 얻은 기업 정보를 고스란히 가지고 전직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공적인 목적을 위해 획득한 정보가 사기업을 위해 활용된다? 엽기적인 일이죠.”

김 교수는 공공기관 종사자의 대기업 전직이 당연시되는 사회 풍조 자체가 이미 기업사회의 골이 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전문 인사’가 만연하니 ‘대기업은 미래의 직장’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결과적으로 기업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행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저축은행 사태로 드러난 금감원 등 국가감독기관뿐 아니라 국회와 사법부, 각급 행정부처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앞서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로 청중들의 긴장을 풀어준 뒤 기업사회론의 정의를 제시했다. 그의 저서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에서 처음 내놓은 ‘기업사회’는 크게 두 가지 정의를 가진다. 

“첫 번째 입법, 사법, 행정부가 정의의 원칙, 형평성을 존립의 근거로 삼기보다 ‘어떻게 하면 기업이 돈벌이 하는 데 도움 서비스를 줄까’로 국가운영의 초점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 기업에 대한 관리,ㅡ감독을 포기했거나 사실상 포기하도록 요구받는 사회를 말하죠.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먹고사는 공무원이 공익적 입장에 서지 않고 기업의 반사회적이고 불법적인 행위까지 용납, 용인, 조장하는 사회가 바로 기업사회입니다.”

"나중에 커서 이건희 할아버지처럼 될래요"

▲삼성과 이건희의 경영철학을 연구한 책. CEO는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역할 모델이 되었다.
김 교수는 기업사회의 두 번째 정의로 사회화(socialization)의 측면을 이야기했다. 
 
“모든 사회에서는 따라가고자 하는 모델이 있습니다. 사회화의 모델을 보면 그 사회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자랐을 적에는 ‘군대처럼’이었죠. 학교도 군대처럼, 공장도 회사도 군대처럼! 국기에 대한 경례를 외치고, 회사에서도 상사말 안 들으면 정강이를 차고. 한마디로 그땐 병영사회였죠. 근데 최근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닮고 싶은 사람 1위로 이건희 씨가 나왔습니다. 선호하는 직업으로 CEO가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죠.”

일등, 초일류와 같은 경쟁을 부추기는 용어는 매일 아침 신문 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고 CEO 대통령, CEO 총장, CEO 장관 이라는 말도 유행 된지 오래다. CEO는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역할 모델이 되었다. 김 교수는 CEO가 사회화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기업조직의 운영원리를 모델링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경쟁력, 퇴출, 유연성, 구조조정, 도덕적 해이, 투명성, 고객만족 등 기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이제 모든 조직에서 사용하는 보편적 용어가 됐다. 원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공조직도 ‘기업 따라 배우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거나 실제로 아예 기업처럼 운영된다. 오늘의 대학은 중장기 발전전략 핵심사업 선정 등에서도 경제 전문가의 컨설팅을 반영한다. 김 교수는 ‘기업 따라잡기’에 몰입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상업독재가 군사독재보다 더 무섭다   

그는 강의 중간 안식년으로 미국에 거주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기업의 자본이 방송미디어를 장악하는 것의 폐해를 말해주었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데 꼭 중요장면에서 불쑥 광고가 나와 5분이고 10분이고 잡아먹어 버리는 겁니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까 ‘내가 지금 영화를 보는지, 광고를 보는지’ 나중엔 화가 나서 텔레비전을 때려 부수고 싶었습니다. 미디어가 상업화 했을 때 모습입니다.”  

김 교수는 또한 종합편성채널의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여론의 획일화’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마침 이라크 전쟁이 터졌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나?’ 궁금한 마음에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수십 개의 케이블 채널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라크 학살과 같은, 미군들의 잘못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미디어의 단일한 목소리, 이거야말로 조지오웰의 <1984년>이었습니다. 상업 방송의 천국인 미국에서 저는 ‘상업독재가 군사독재보다 더 무섭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김 교수는 2003년 당시 자신이 겪었던 미국언론 상황이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말머리를 열었던 ‘삼성이 한국을 떠난다면’이라는 칼럼을 다시 언급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이 마치 국민 전체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말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 내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죠. 칼 폴라니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시장 속에 사회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시장은 사회 속에 있어요. 시장은 사회와 국가가 만든 인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 안에서 성장이 가능합니다. 이는 70~80년대 과거가 아닌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럼에도 마치 시장이 국가 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착시효과’지요.”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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