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노조 파업에 정부·언론 사용자 편들기 유감
[두런두런경제] 홍기빈 제정임의 경제뉴스 따라잡기

홍기빈(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파업 중이던 유성기업에 어제(24일) 경찰이 투입돼 노조원들을 해산시켰습니다. 우리나라의 노사정(勞使政), 즉 노조 사용자 정부 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는데요, 우선 파업의 쟁점이 뭐였습니까?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한 마디로 ‘밤엔 잠을 좀 자게 해달라’는 요구라고 하겠습니다. 유성기업 근로자들은 현재 주야 2교대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간조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간조는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근무하는데, 보통 잔업을 2시간씩 하니까 밤을 새고 아침 8시에 일이 끝날 때가 많답니다. 그런데 번갈아 야간 근무를 하다보면 수면부족과 주의력 결핍 등으로 사고와 건강 이상이 많이 생긴다고 하는 군요. 그래서 선진국 자동차업계에선 주야교대가 거의 다 없어졌는데, 우리나라는 완성차와 부품업계 대부분이 아직 주야교대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성기업 노조는 야간근무에 잔업 등 노동 강도가 세지면서 지난 1년 반 동안 아산공장 350여 노조원 중 5명이 과로 등으로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철야근무를 없애고 아침 6시 반부터 밤 12시까지 2교대로 일하는 주간 2교대를 하고, 시급으로 받는 보수를 월급제로 바꿔달라고 요구를 한 것입니다. 

홍: 언뜻 들으면 그리 어려운 요구가 아닌 것 같고, 철야 근무를 없애면 오히려 생산성이 향상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합의가 안됐을까요?

제: 유성기업 노사는 원래 지난 2009년 단협에서 이 주간2교대제를 2011년, 즉 올해 1월부터 시행한다는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다만 근로시간이 줄면서 생산량과 임금이 줄어드는 문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놓고 최근 여러 차례 노사협의를 했는데, 회사 측이 제대로 대화에 임하지 않았다는 게 노조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노조는 노동부에 조정을 신청했지만 결렬되면서 파업을 결의했는데, 회사가 즉각 직장폐쇄로 맞서 상황이 악화됐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회사가 원청업체인 현대차의 눈치를 보느라 노사협의를 회피하고 주간 2교대제 합의 이행을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측의 직장 폐쇄, 정부의 파업 진압.. 노동자들의 권리는 어디에?

홍: 현대차와 유성기업이 원청 하청 관계에 있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인데, 왜 유성기업 노사협의에 현대차의 눈치를 본다는 것인가요? 

제: 네, 지금 주간 2교대제와 완전월급제 도입은 현대차를 포함한 완성차업계와 전체 부품업계에서도 노사간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만일 유성기업이 먼저 주간2교대제를 도입하면 곧 있을 현대차 노사협상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현대차 측이 개입해서 이를 막았다는 게 유성기업 노조의 주장입니다. 유성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이와 관련해서 유성기업을 방문한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차에서 ‘현대차가 먼저 주간2교대를 시행하기 전에는 유성이 노사합의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차 개입에 대해 당국의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물론 현대차는 이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홍: 유성기업 파업과 관련해서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이 “연봉 7000만원을 받는 노조가 파업하면 국민이 납득하겠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논란을 빚기도 했는데, 맞는 말입니까? 

제: 최장관이 자동차업계 경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런 발언을 했죠. 우선은 연봉 7000만원이 아니라 1억원이 넘는 근로자라도 사측의 부당한 행위가 있다면 단체행동으로 맞설 수 있는 게 우리 헌법과 노동법상의 권리입니다. 민주국가의 장관이 할 얘기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더구나 유성기업 근로자의 평균 보수는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16년 근속에 해당하는 5천7백만 원 수준으로 나와 있습니다. 노조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30년 가까이 근속한 노동자가 주야 10시간씩 풀타임으로 일하고 주말특근까지 다 했을 때 7000만원 정도 받고, 대다수 근로자는 월급 기준으로 3백만 원 내외를 집에 가져간다고 합니다.     

홍: 한편으로 정부가 파업 1주일 만에 서둘러 경찰력을 투입한 배경도 궁금한데요.   

제: 유성기업 노조는 절차를 거쳐 정당한 파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측이 직장폐쇄를 한 상황에서 작업장을 점거한 것은 불법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더 중요한 요소는 유성기업의 파업이 완성차 전체의 생산차질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성기업이 생산하는 피스톤링은 엔진의 필수부품으로 현대차 물량의 80%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이 피스톤링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현대차 일부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됐고, 앞으로 한국GM등도 생산차질이 우려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노사간에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야할 문제를 정부가 성급하게 사용자편을 들어 경찰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쌍용차사태에 이어 또 하나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흑자 행진 속 '단가후려치기' 납품업체 착취 아닌가 

홍: 약간 다른 논점이긴 합니다만, 현대차는 최근 사상 최대의 흑자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데 납품업체인 유성기업은 3년 연속 적자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왜 그럴까요?  

제: 몇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우선 현대차가 너무 납품단가를 후려쳐서 수지가 안 맞아 영업적자를 냈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이익을 독식하고 납품업체를 착취했다는 설명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약간 다른 분석도 있더군요. 유성이 조금이라도 흑자를 내면 현대차가 납품 단가를 더 깎기 때문에, 이른바 ‘재무제표 마사지’ 즉 조작을 해서 서류상 적자를 만들었다는 관측도 증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유성기업은 몇 개 자회사가 있는데, 이들 기업과 합친 연결재무제표로는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100억 원 이상 났습니다. 자회사간 거래를 통해 본사의 영업이익을 서류상 적자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있는 것이죠. 어쨌든 사상 최대 흑자행진 중인 자동차대기업과 ‘단가후려치기’로 고민하는 납품업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부품 하나만 공급이 안 돼도 생산라인이 멈추게 되는 자동차회사가 납품업체와의 ‘상생’을 진심으로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홍: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번 파업에 대해 ‘연봉 7000만 원 귀족 노조’ ‘하루 천억 원 생산차질’ ‘자동차업계 마비를 노린 알박기 파업’등 노조 비난 일색의 기사를 쏟아내 너무 편파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요.   

제: 일부 신문들이 광고주인 기업들을 많이 의식해서인지 노사관계의 쟁점을 공정하게 다루기보다 사용자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기사를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파업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연봉을 많이 받는 노조의 파업은 부도덕한 것이라는 편견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또 본격적으로 생산차질이 발생하기도 전에 회사 측의 과장된 전망을 그대로 받아 적어 ‘총 몇 조원 손실’ 하는 식으로 노조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노사관계를 위해 양쪽의 입장을 함께 다루는, 보다 균형 잡힌 보도가 아쉽습니다.  


* 이 기사는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손에 잡히는 경제> 5월 25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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