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밀어주고 끌어주며 정책 공정성 해치는 그들만의 리그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우리보다 몇 백 년 앞서 민주주의를 실험해 온 미국에서도 공복(公僕)의 지위를 자기 잇속 챙기는 자리로 이용하는 관료의 문제는 늘 골칫거리였다. 그리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2007년 무렵 터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는 월스트리트와 밀착한 금융관료들이 파생상품 등과 관련한 규제를 '시장이 원하는 대로' 마구 풀어준 탓이 컸다.

빌 클린턴 대통령 때의 로버트 루빈, 조지 부시 정부의 행크 폴슨 등은 거대 금융사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에서 재무부장관으로 변신, 월가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펼친 대표적 인물들이다.

지난 2008년 우리나라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뒤에도 이렇게 업계와 정부를 오가는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의 폐해가 있었다. 미국의 축산, 도축업이 불법이민자들을 주로 착취하는 대표적 저임금, 비위생 산업이 된 데는 업계 요구에 따라 온갖 규제를 풀어준 농무부 정책 탓이 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농무부의 요직을 차지한 축산, 육우수출업계 출신 로비스트들의 활약이 있었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런 회전문 인사와 로비 등을 통해 정부와 정치권이 재계 입김에 좌우되는 현실에 대해 '금권정치(金權政治, Plutocracy)의 시대'라며 탄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008년 취임하자마자 첫 행정명령을 통해 "재계 인사가 고위 공직자가 되고, 공직자가 다시 재계의 로비스트가 되는 탐욕의 회전문을 닫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의 개혁 작업은 만만치 않은 반발에 부닥치고 있지만, 워싱턴의 로비스트 수가 크게 줄어드는 등 가시적 성과도 있다고 한다.

저축은행들의 비리를 계기로 국내에선 '모피아(Mofia)'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옛날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및 금융위원회)의 영문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에 이탈리아 폭력조직 마피아(Mafia)를 붙인 이 이름은 전현직 금융관료들의 이너서클(배타적 모임)을 말한다. 조폭처럼 똘똘 뭉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비꼬아 부르는 이름이다. 금융감독원 출신들이 저축은행 감사로 가서 경영감시 대신 '부조리의 방패'가 된 것은 모피아가 은행 증권 보험 등 더 큰 회사들에 투하한 '낙하산'의 행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모피아 인사들이 금융사나 대기업, 법무회사나 회계법인 등에 몸담고 있다가 장·차관 등 요직에 다시 기용되는 회전문 관행 역시 정책의 공정성을 흔든다. 물론 민간에 나간 금융관료 모두가 로비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리고 현직에 있는 후배들은 그 선배가 언제 상관으로 돌아올지 모르니 부탁을 무시하지 못한다. 이 관계를 잘 아는 대기업 등은 '거물'을 고문으로 영입한 법무회사에 정책 관련 '해결사' 역을 맡기고, 돈벌이가 쏠쏠한 법무회사들은 거액의 자문료로 '거물'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도 이런 폐해를 잘 알았기 때문에 집권 초기에 개혁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현장실무에 능통하고 조직력이 뛰어난 모피아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개혁 세력'을 2년 여 만에 축출했다. 모피아에 대한 불신이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 후 얼마가지 않아 그들을 요직에 전진 배치했다.

저축은행 비리를 계기로 금융 뿐 아니라 정부 전반에 걸쳐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 '전관예우(前官禮遇)'에 대한 개혁 요구가 높지만, 법무회사에 몸담았던 전직 차관이 또 장관으로 지명된 걸 보면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는 허탈감이 커진다. 아무리 법망을 촘촘히 짜도, 인사권자가 이를 무겁게 여기지 않으면 구멍이 숭숭 나게 마련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전문'을 막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공직은 국민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봉사하는 자리이지, 자신이나 친구, 기업고객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나라의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  이 칼럼은 국제신문 5월 24일자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