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구갑우 교수
주제: 동북아 국제정치 읽기

“존 레논 노래 <이매진>(Imagine) 다들 아시죠? 이 노래에서 그는 무엇이 없는 세계를 염원하고 있나요?”

구갑우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가 질문하자 몇몇 학생들의 입이 달싹달싹 움직인다. “Imagine there's no heaven~”(천국이 없다고 상상하라)로 시작되는 가사를 읊조리는 듯하더니 한 명씩 대답하기 시작했다.

“천국이요.” “소유 없고 국가 없는 세상.” “전쟁 없는 세상?”

천국ㆍ국가ㆍ종교ㆍ소유가 없는 세상을 노래한 <이매진>에서 구 교수가 주목한 것은 ‘국가 없는 세상’이었다. 그가 물었다.

“각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의 사회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국제정치학에서는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하는 그룹과 ‘no’라고 답하는 그룹이 오래 전부터 대립해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강의 중인 구갑우 교수. ⓒ이재덕

전자는 칸트와 그의 후예다. 이미 200여년 전에 칸트는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안했고 ‘보편적인 세계시민’의 등장을 희망했다. 자유주의자로 불리는 이들은 인간의 이타성을 강조하며 유엔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끊임없이 이를 개혁하려고 노력한다.

후자는 케네스 월츠로 대표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국제정치의 본질이 힘(power)이라고 믿는 이들은 인간의 본질이 ‘이기심’이라고 본다. 이들은 자유주의자의 생각을 ‘순진한 발상’으로 치부한다.

천안함 사건 뒤 나타난 동북아 안보딜레마

▲<국제정치이론>을 저술한 현실주의의 거두 케네스 월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건 대부분 현실주의자의 생각이다. 월츠의 저작 <국제정치이론>은 현대 국제정치학의 교과서인 양 여겨진다. 월츠에 따르면 국제정치에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극대화에 힘쓴다. 협력에 기반한 세계정부는 만들어질 수 없다. 국제정치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강대국이 몇 개 있느냐에 달렸다. 한 개면 단극체제, 두 개면 양극, 세 개 이상이면 다극체제라고 부른다. 구 교수는 “이런 생각이 우리의 인식 틀을 장악하고 있다”며 현실주의의 인식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실주의적 틀에서는 한국과 같은 작은 국가들은 국제정치의 행위자가 아닙니다. 작은 국가는 살기 위해 줄을 서야 합니다. 바로 한미동맹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저변에 깔린 생각이죠. 작은 국가는 자구책에 한계가 있으므로 동맹을 맺는 방식으로 외부에서 힘을 빌려오고, 한편으론 군비를 증강하는 등 내부의 힘을 기릅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A란 국가가 외부와 동맹을 체결하고 군비를 증강한다면 B란 이웃국가도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이는 다시 A국가의 안보에 위협으로 작용한다. 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시도가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현실주의자의 생각은 ‘안보딜레마’를 낳는다.   

구 교수는 작년 3월 천안함 사건 전후로 동북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야말로 전형적인 안보딜레마가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은 미국과, 북한은 중국과 동맹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일본도 천안함 파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를 이동시키려던 하토야마 총리는 ‘북한위협론’을 빌미로 자신의 공약을 철회했다.

“지난해 7월과 9월 한미합동군사작전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핵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의 참여 여부였습니다.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했죠. ‘서해에 조지워싱턴호가 오는 것은 일본의 야스쿠니 참배보다 더 파괴력이 크다’고 얘기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사이 김정일은 창춘,지린,투먼 개발과 관련해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북-중 관계를 공고히 합니다. 이어 9월에는 중국이 항공모함킬러라고 불리는 미사일을 서해상에 배치했죠.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중국 나름의 대응인 셈입니다. 전형적인 안보딜레마의 모습이죠.”

국제적 협력시스템이 순진한 발상?

▲강의 중인 구갑우 교수. ⓒ이재덕
국제정치를 힘의 논리로 설명하는 현실주의자에게 국가 간 협력시스템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최근 중국과 미국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는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한-미-일과 북-중-러가 새로운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냉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 돈을 빌려주는 채권국이다. 중국과 미국은 갈등하는 가운데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냉전과는 다른 경제적 합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협력시스템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세 가지 종류의 자유주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커머셜 리버럴리즘(Commercial Liberalism)입니다. 국가간 경제적 관계가 높아질수록 평화가 진행된다는 것이죠. 바로 개성공단을 만들 때 문제인식입니다. 두번째는 공화주의적 리버럴리즘(Republican Liberalism)으로 한 국가가 민주화하면 할수록 국제평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북한 인권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하죠. 마지막은 제도적 리버럴리즘(Institutional Liberalism)으로 국제제도를 만들수록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입니다. 남북정상회담, 6자회담 등을 만들어 제도화하자는 것이 이에 속합니다.”

이런 협력관계를 쌓아가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북관계가 대표적이다. 남쪽의 지원에 조응하는 북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거나,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군사적 충돌이나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등은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변수가 된다. 북한에 대한 지원에 대해 종종 ‘북한 퍼주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구 교수는 이런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개성공단에서 협력사업을 해 이익이 0에서 100으로 늘었다고 합시다. 자유주의자들은 100이 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죠. 이를 7:3으로 배분해 북이 7을 가져갔다면 현실주의자들은 이를 ‘퍼주기’라고 말합니다”

상호주의에 대한 시각차도 크다. 현실주의자들은 남쪽에서 쌀을 주면 북쪽은 거기에 상응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 교수는 이를 ‘엄격한 상호주의’적 논리라고 설명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상호주의를 포괄적으로 해석한다. 

“엄격한 상호주의적 교환 외에도 다른 형태의 교환방식이 있습니다. 선물교환이 대표적이죠. 선물은 즉석에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사이에 시간이 걸립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가치의 선물을 줄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는 유형의 자산을 줬는데 저쪽은 무형의 자산을 줬다면요? 우리가 북에 쌀을 지원한 뒤에 북이 조선인민군을 2km후방으로 배치했다면 이는 교환이 될 수 있지 않나요?”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주의와 현실주의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인 셈이다. 그는 “사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에서 패러다임 논쟁은 승부가 안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회과학에서 패러다임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패러다임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구 교수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류는 이타적인 면과 이기적인 면을 모두 보이고 있죠. 하지만 교과서는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이기적인 인간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죠. 이것이 담론의 효과입니다. 어렸을 때 무엇을 배우며 크는지, 어떤 책을 보며 자라느냐에 따라 사람들 생각은 달라집니다. 따라서 담론을 생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반전과 평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비틀즈의 앨범 <The Beatles, Yesterday and Today>.

베트남전이 시작된 1966년 여름, 비틀즈는 반전과 평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발표된 음반이 <예스터데이>가 수록된 앨범으로 유명한 <비틀즈, 어제와 오늘>(The Beatles, Yesterday and Today). 핏물이 배어있는 생고기와 머리 잘린 아기인형 표지로 이 앨범은 <도살자 표지>(Butcher Cover)라고도 불렸다. 섬뜩한 표지를 사용했다는 비난의 목소리에 존 레논은 “베트남 상황만큼이나 적절한 것이죠”라고 답한다. <이매진>의 마지막 구절에서 존 레논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겁니다.”

1980년 그는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와 평화에 대한 메시지는 그의 노래를 읊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구 교수는 “한반도 평화의 길은 결국 이기적 인간을 어떻게 이타적 인간으로 전환시켜 협력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생고기 덩어리와 머리 잘린 인형을 보며 존 레논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 존 레논의 <Imagine> 듣기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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