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제천·단양 지역구 총선 기획] ⑤ 지역민의 바람

지역 4선 송광호 전 의원이 비리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제천·단양의 호랑이’가 사라졌다. 빈자리에 예비후보 12인이 출마해 경쟁이 과열되자, 충청북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곳을 특별단속지역으로 지정했다. 진통 끝에 여야 3당이 후보를 공천한 뒤 본격 레이스가 시작됐다. 새누리당 권석창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후삼 후보, 국민의당 김대부 후보는 민심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단비뉴스>는 총선 후보들의 공약 분석, 후보별 심층 탐구, 지역민의 바람을 5회의 시리즈로 보도한다. (편집자)

제천·단양 20대 총선 후보 공약 분석
새누리당 권석창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후삼 후보
국민의당 김대부 후보
⑤ 지역민의 바람

제천 시내가 선거 열기로 물들었다. 공식 선거유세가 허용된 지난달 31일부터, 제천 중앙시장 한복판에 있는 신화당약국 맞은편에서는 각 당의 선거유세가 펼쳐졌다. 그때마다 거리는 정당 옷을 차려입은 선본원들에 의해 색색으로 변했다. <단비뉴스>에서는 선거유세 기간에 제천 시내를 찾은 스무 명의 시민들을 인터뷰했다. 시민들의 마음을 물들인 후보는 과연 누구일까?  

후보자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 

생업이 바빴던 탓일까. 적지 않은 제천 시민들이 총선 정보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인터뷰한 20명의 시민 중 11명은 지역구 후보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거부한 대다수 시민 역시 “선거에 대해 전혀 몰라서 해 줄 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민규(가명·60대) 씨는 투표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당연하다”고 답했으나, 누가 후보로 나오는지는 몰랐다. 양정윤(24) 씨는 “개인적인 일로 바빠 선거에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다”고 밝혔다. 제천 시내를 분주히 오가는 시민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같은 정치 무관심은 정치권이 자초한 면도 있다. 이서진(가명·40대) 씨는 더 이상 선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갈수록 사는 것도 힘들고, 정치인들 하는 행동도 마음에 안 들어 일부러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한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계기가 된 구체적인 사건도 있다. 이씨는 버스 노선과 관련해 제천시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 “공약만 하고 당선되면 ‘나 언제 봤냐’ 이런 식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고 나니까 투표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세명대에 다니는 아들을 둔 이씨는 누구보다도 제천이 잘 되길 바라지만, 예전처럼 이웃들과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 이서진(가명) 씨는 “갈수록 사는 것도 힘들고, 정치인들 하는 행동도 마음에 안 들어 일부러 관심을 안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 임국정

제천 중앙 시장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우점득(71) 씨도 “시의원, 시장에게 도로 정비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말을 안 들어준다”며 길이 울퉁불퉁해서 다칠 위험이 있다. 관광객도 많이 오고, 제천 시민들도 시장을 보는 곳인데 제천시에서 먼저 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라며 하소연했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은 종종 투표 거부로까지 이어졌다. 중앙 시장에서 사업하는 문광열(32) 씨는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선거 유세가 반갑지 않다. “공약을 확실히 실천하겠다고 말해봤자 지금뿐이지, 조금 지나면 들어가 버릴 게 뻔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정확히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주장만 있다.” 그는 선거 공약을 찾아보지 않았다. 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씨는 “시의 일을 책임지는 시장이면 몰라도, 국회의원은 정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천시 투표율은 53.8%였다. 전국 평균투표율 54.2%를 밑도는 수준이다.

▲ 문광열(32) 씨는 “정치인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황두현

“청년 밀어주겠다는 후보가 있으면 뽑겠다”

그렇다면 제천 시민들이 원하는 정책은 뭘까? 공통적으로 감지된 키워드는 ‘지역발전’이었다. 인터뷰에 응답한 시민의 4분의 1은 ‘지역발전’을 제천의 중점과제로 꼽았다. 청년들은 제천시 전반의 시설 복구가 지역발전을 위해 시급하다고 말한다. 홍지원(23) 씨는 세명대 쪽 시설이 낙후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시 예산을 낭비하지 않는 후보"를 뽑고 싶다. "예산 낭비하지 않고 외부 시설 관리에도 신경 써 줬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제천 시내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경석(21) 씨는 "중앙시장이 너무 낙후돼 손님들 발길이 끊겼다"며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있는 낡은 건물들을 정비하고, 더 개방적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석씨는 출마자들의 이름을 아직 모르지만, "청년들을 밀어주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후보가 있다면 뽑겠다고 전했다.

▲ 김경석(21) 씨는 “청년들을 밀어주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후보가 있다면 뽑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임국정

지역 발전의 핵심을 일자리 문제로 보는 시민도 있었다. 이춘임(70) 씨는 “제천이 활성화 돼서 우리도 일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며 “지금 제천에는 공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밭일이나 하는데, 그것도 사람이 많으니 자리도 없고...공장이 있으면 우리 같은 노인들도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인구 감소에 대한 걱정도 컸다. 조명희(60) 씨가 후보자를 뽑을 때 기준으로 삼는 요소는 “지역 발전”이다. 제천 인구가 줄고 있는 이유가 낙후된 지역 경제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제천 토박이인 명희씨는 “지역 인구가 너무 줄고 있어 걱정이다. 이걸 좀 많이 늘려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제천 시민들과의 인터뷰. ⓒ 구민수

제천 인구 4분의 1, 노인 표심은 새누리로

한편 고령층 시민들의 경우 보수층으로 집결하는 세대별 투표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천시는 노인 인구가 4분의 1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제천 시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기철(가명·72) 씨는 “새누리도, 더민주도 싸움만 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것 같아 투표하기 싫다”면서도 “만약 투표를 한다면 새누리당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을 더불어민주당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노인 9명 중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스로를 새누리당 지지자라고 밝혔다.

노점상을 운영하는 김창순(76) 씨는 “누가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1번만 찍으면 된다”고 밝혔다.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창순씨는 “대통령 말을 안 듣는” 국회의원들이 “나쁘다”고 이야기했다. 강창학(74) 씨는 “여야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는 “통일이 될 때까지는 새누리당에서 집권해서, 국가가 싸우지 않고 한길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천시의 한 택시기사는 “제천시는 노인인구가 많아서 여당이 강세라며 야당에서 ‘강력한 후보’가 오지 않는 한 판세가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창순(76) 씨는 “누가 나오든지, 1번만 찍으면 된다”고 말했다. ⓒ 임국정

‘한 표’의 의미는 정치인에 거는 ‘신뢰’  

후보자에 대한 바람이 다양하게 갈렸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였다. 예비 당선자에게 가장 바라는 점을 묻자, 이준희(가명·38) 씨는 “공약만 하고 막상 당선되면 예산이 없다, 정부에서 안 된다더라, 이렇게 말뿐인 경우가 많아 실망스럽다”며 “실현 어려운 공약을 과도하게 내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동구(68) 씨도 제천 시민으로서 가장 원하는 공약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꼭 그런 건 없고, 후보들이 낸 공약에 대해서는 당선이 되고 나서 꼭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답했다.

▲ 김현기씨는 “진실만 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 황두현

아직 지지후보가 없는 김현기(23) 씨는 “진짜 진실만 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생각이다. 그 역시 원하는 공약을 묻는 질문에 “그런 건 따로 없고, 그냥 지키기만 해주면 다 좋을 것 같다. 좋은 것 말해봤자 안 지킬 테니까”라고 답했다. 전임 국회의원이 비리로 구속된 사실을 안다고 답한 그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을 가려낼 기준은 마땅치 않다. 현기 씨만 해도 투표일이 닥치면 공약을 보고 선택하게 될 예정이다. 현기씨에게 투표를 하는 건 정치인에게 신뢰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임자 같은 일이 다시 안 생기길 바랄 뿐이다. 믿음이란 게 그런게 아니냐.”


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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