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박상훈 대표
주제① 한국의 지역주의

“한국 지역주의의 핵심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갈등이다. 지역주의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다. 유권자는 지역감정에 이끌려 투표한다. 지역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인데요. 모두 동의하나요?”

<만들어진 현실> <정치의 발견> 등의 저자이자 '후마니타스'의 대표인 박상훈 씨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후마니타스’는 라틴어로 ‘인문학’이란 뜻 그대로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다. 신에 관한 학문에 대비되는 개념이 ‘후마니타스’란다. 박 대표 또한 강의 내내 사람에 대한 고민과 믿음을 드러냈다.

▲강의 중인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 ⓒ김승태

'혁명이 다가 아니다.' '정치란 원래 명쾌하게 설명하긴 힘들다.' '정치에 있어 극복이란 없다, 부작용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박 대표는 이런 식의 사유와 실천을 요구하고 합리적 태도를 강조한다. 박 대표는 ‘한국의 지역주의를 이해하는 방법’을 주제로 강의하면서도 그렇게 접근했다. 무비판적 태도로 수용해 온 지역주의 담론은 사회경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산물이었음을 말하고자 했다.

왜 호남이었나?

박 대표는 호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시절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도시화가 진행됐다. 주요 산업도시였던 서울과 부산 등에는 많은 농촌인구가 유입됐다. 서울로 유입된 지역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호남의 하층민들이었다. 산업도시 서울에서는 생존과 정착, 취업, 소득을 둘러싼 하층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의 다툼이 잦았다. 산업화와 동시에 진행된 서울․경기와 호남의 갈등이었다. 호남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영․호남 갈등이 부각됐을까? 박 대표는 1971년 선거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진행된 '호남 박해'에 대해 이야기했다.

“71년 대선 결과가 영·호남 지역주의가 드러난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DJ가 부산, 대구에서 가장 표를 많이 늘렸습니다. 그것도 대구에선 상대 후보 윤보선 씨보다 8% 이상 표를 많이 얻었죠. 다음이 서울입니다. 도시에서 교육받은 중산층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건데 이는 당시 정치권을 둘러싼 주요 관심사가 지역은 아니란 것이죠"

▲박상훈 대표와 강의듣는 학생들. ⓒ김승태

그때까지만 해도 선거에서 지역주의는 심각하지 않았다. 대선이 끝나고 상황은 달라졌다. 500억에 가까운 선거자금을 투입해 부정선거를 치렀음에도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 박 대통령이 불안감을 느끼고 '선거를 통해선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유신체제 구축에 들어간 것이다. 이어 유신을 향한 비판의식의 분열과 체제의 정당화를 위해 '망국적 지역갈등'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호남이 선택됐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지배의 본능이란 자신을 향한 불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71년 선거가 끝나고 나타난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지역주의적 선거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호남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편견을 위한 사례를 집중적․선택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고, 자신들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들을 부각시켰다. 역사는 정치적으로 재창조됐다.

박 대표는 저서 <만들어진 현실>에서 박정희 정권이 반호남주의를 만들어 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1960년을 거치면서 호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만들어졌고, 둘째는 1971년 선거에서 박정희의 경쟁 후보가 호남 출신 김대중이었다는 사실이다.

필요에 의해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현실’

▲박상훈 대표의 저서 <만들어진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가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을 자주 썼다. 정치란 사람 사는 세상의 질서를 논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완벽이란 없으며 고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그래서 90년 3당 합당을 지역갈등의 심화로 보는 시각에도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비록 3당이 합쳐진 민자당에 DJ가 제외되며 호남이 정치적으로 소외됐지만,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정당이 92년 선거에서 과반수 표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주의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따져보면 지역주의에 의한 폐해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고 그에 따라 움직일 만큼 국민들이 비이성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갤럽조사에 따르면 선거에서 국민들이 표를 던졌던 기준은 민주화, 정치개혁 등이었다. 지역은 13위였고, 교통이 12위였다. 심지어 심리학자들 조사결과에는 호남에 대한 편견이 가장 적은 지역으로 부산과 경남으로 나와 있었다.

언론에서 종종 '뿌리 깊은 지역갈등'이란 표현을 쓴다. 그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다. 그러나 한국의 지역주의는 오래된 지역정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사람들의 정치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태도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박 대표는 에릭 홉스봄의 <전통의 발명>을 인용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스코틀랜드인의 민족정체성을 나타낸다는 킬트, 백파이프 등은 당연히 까마득한 고대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그것들은 실제 매우 근대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문화가 옛날부터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 많아요. 필요하다면 옛날 것이 각색되기도 하는 거죠.”

한국의 지역주의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정치적으로 재창조됐다는 것이다.

지역주의, 나쁘기만 한가?

박 대표는 “지역주의가 과연 나쁘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면서 또 하나 편견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어떤 선거제도도 모든 지역에서 비슷하게 표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정당 간 차이가 줄면 어느 나라든 지역적 차이가 늘어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요. 중요한 것은 왜 지역 갈등 구조가 생기게 됐는지를 이해하는 겁니다.”

정당 간 차이가 적고 정당과 정치인들의 뚜렷한 정치철학이 부재하는 현실에서 지역 간 거리는 멀어진다. 지역주의만이 표를 나눠가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지역주의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며 영국 예를 들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경우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지역주의로 결속했다. 영국은 1997년 노동당 집권 이후 인구 500만명의 스코틀랜드, 290만 명의 웨일즈, 168만 명의 북아일랜드에 각각 민주적 지역정부를 설치해 중앙통제 완화와 전략적 지역발전 등 많은 효과를 거뒀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 지역주의가 나타나는 양상은 중앙집권의 배분체계 속 이권다툼이었다. 정치권 상층부의 주류는 영남 출신이었고 현대사를 거치며 호남은 엘리트 사회에서 배제됐고 개발에서도 밀려났다.

"제가 보기엔 하층계급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어느 한 공동체에서 이지메 대상이 되는 것이 더 괴로워요. 사람이 어떤 소속에서부터 배제될 때 받는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죠. 지역이라는 이유로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말 틀린 겁니다."

그렇다면 왜? 정치인과 언론인은 왜?

▲강의 중인 박상훈 대표. ⓒ김승태
80년과 87년의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조선일보의 역할이 커졌던 때다. 그리고 5공과 노태우 정부가 들어설 때다. 칼럼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거해봐야 영호남이 갈라지기만 할 테니까 새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야당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이용해서 정치를 해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칼럼이 실린 때는 1980년 5.18 직전이며 비슷한 구도는 87년에 재등장한다.

또한 '김대중 칼럼'에서는 "3김이라고 하는 지역 지배 엘리트가 유권자의 지역감정을 자극해서 지역할거주의를 만들고 있다, 지역주의는 출신지역이 동일한 후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전근대적 의식형태다, 3김은 유권자의 지역주의를 볼모로 한국정치를 망치고 있다, 이들을 퇴출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탈지역주의 의식 개혁도 필요하며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것이 지역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면, 국민들은 힘을 잃는다. 민주주의는 해봐야 지역 간에 싸움만 나고 정치엘리트들만 배불리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광주에서 비극이 왜 일어났고 그것에 대한 비판의식은 사라진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비판의식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알리바이 담론, 지역주의

박 대표는 소위 진보세력도 똑같았다고 비판한다. 92년 민중당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거에 완벽히 패배한 뒤 정치인들이 대규모로 이동했다. 민중당 엘리트들은 지금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으로 이동했다. 이념이 완전히 상반된 당으로 이동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했다. 결국 그들의 말은 "지역할거주의 때문에 진보정치의 공간이 없고, 지역할거주의를 일단 깨야 하기 때문에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우는 김영삼 정권에 참여하겠다"로 통일됐다.

한국 정치 구조가 이렇기에, 본인들의 정치 행동을 앞뒤 동일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것의 알리바이 담론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지역주의다. 박 대표는 기자가 이런 배경 이해 없이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베껴 쓰기'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담화에서 지역주의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의 문제점을 여러 번 지적했다. 이러한 지역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석패율제 등으로 선거제도를 개선하려 한다. 박 대표는 10석도 안 되는 변화로 바뀌리라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런 선거제도 개선으로 바뀌는 것은 없어요. 사람들 가슴 속에 새겨진 지역감정도 없앨 수 없어요. 다만, 그것이 덜 표출되고 보다 큰 통합을 위해 사회가 돌아가도록 노력해야죠. 누구보다 정치인이 그래야죠. 요즘 보다시피 그들은 선거 때만 지역주의를 이용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지배적 담론에 갇혀있기보다 한국정치의 담론 구조가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지역주의를 통해서 한국사회를 봐야지, 그 틀 안에 함몰돼 지역주의를 비판하면 안 됩니다. 정치에서 ‘극복’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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