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김두식 교수
주제② 나의 글쓰기: 이야기로 푸는 인권

‘신정아·상하이 스캔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제가 형법 강의를 시작하면 이중에 절반 이상은 15분내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이 듭니다.”

그러나 그 말은 엄살이었다. 그는 앞서 형법 강의를 할 때도 그랬지만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는 이야기꾼이었다. 김두식 교수(경북대 로스쿨)는 그런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글로 옮겨 많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전문필자이기도 하다. 두 번째 주제 ‘나의 글쓰기: 이야기로 푸는 인권’은 흔히 말하는 ‘상하이 스캔들’의 원인을 짚어보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 이야기하듯 강연을 하고 있는 김두식 교수. ⓒ 주상돈

“한국사회에서는 사랑을 불태워야 할 20대 중후반까지 벽에 ‘여자는 죽음이다’라고 써놓고, 머리 처박고 공부해야 성공합니다.”

그는 공부만 강요되는 분위기에서 욕망을 해소하지 못한 한국의 성공한 남자들은 사랑 또한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도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한번도 강요한 적이 없고 늘 내 뜻을 존중해주셨다’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뒤돌아보면 결정적으로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을 때 어머니가 ‘두식아, 이건 네가 꼭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 내 마음을 접은 적이 많았죠.”

그는 자기 어머니 얘기를 들려주며 한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사실상 아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 지배 아래 자란 한국의 남성들은 평생을 ‘모범생으로, 말 잘 듣는 아들로, 착한 남편, 좋은 아빠’로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반려자를 찾는 일까지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 이쯤 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누르고 감춘다고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애늙은이 같은, 속이 텅 빈 사람에게 어느 여성이 다가와 ‘괜찮아요, 손잡는다고 죽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갑자기 손을 잡으면 거의 예외 없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변양균·신정아 사건도 다르지 않아요. 너무나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소년이 집안 반대에 부딪혀 고위공무원이 됐지만 이루지 못한 꿈은 살아있었죠.”

‘상하이 스캔들’도 욕망을 억눌러온 사람들이 ‘안전한’ 일탈의 기회 앞에 맥없이 무너진 사건이라고 김 교수는 요약했다. 외무고시, 행정고시, 사법고시 출신의 엘리트 중년들이 중국여성에게 빠진 것은 ‘완벽한 일탈의 기회’로 믿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에서 예쁜 중국여성과 벌이는 로맨스, 사실이 알려지면 함께 무너질 테니 염려도 없었다.

 ▲일명 '상하이스캔들'과 사건의 주인공 덩 씨만을 좇는 언론

일탈을 꿈꾸는 자를 감시하는 사냥꾼들

“10대, 20대에 건강하게 풀어야 할 욕망을 풀지 못한 사람들이 일탈을 하거나 과도한 사냥꾼의 지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모습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누가 혹시 행복한가’, ‘누가 규범을 어기고 있는가’를 쫓아다니죠.”

일탈의 기회조차 오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파고든다. 번뜩이는 눈으로 나는 하지 못한, 불타는 인생을 즐기는 일탈자들을 감시한다. 과도한 관심은 타인의 삶을 간섭하고 통제하려 든다. 김두식 교수는 이 모든 것이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언젠가 서울의 학회에 가면서 동료교수 차를 몰아보았는데 고속도로에서 오르막길을 달리면서도 밟는 대로 쫙 올라가더라고요. 내 차는 조심조심 순차적으로 밟아줘야 하는데......, 갑자기 내 차가 초라해 보여 처남에게 주고 좋은 차로 바꾼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바꿨지만......”

프랑스의 문화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도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은 날 때부터 이웃이 소유한 것을 욕망하는 경향이 있다. 욕망은 언제나 타인에게서 온다. 이웃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된다.'

“욕망이라는 것은 남이 가진 것을 보기 전에는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요. 늘 모방욕망이 문제입니다. 방해가 있으면 욕망이 더 강해지고 서로의 욕망을 보면서 욕망은 점점 더 커집니다. 문제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단이 늘 제한되어 있어 경쟁이 생긴다는 거죠. 결국 증오와 폭력이 발생합니다.”

모두가 열등감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지만......

“서울대생은 열등감 없을 것 같죠? 서울대생은 4학년 때 고시 붙은 애들에 대한 열등감, 변호사 가는 애들은 검사 가는 애들에 대한 열등감, 검사 가는 애들은 판사 가는 애들에 대한 열등감, 판사들은 초임을 서울로 받은 애들에 대한 열등감, 서울 발령받은 사람은 초임을 서울중앙지법 받은 사람에 대한 열등감, 서울중앙지법 발령받은 사람은 1등으로 발령 받은 사람에 대한 열등감, 1등으로 발령받은 사람은 얼굴이 못생긴 열등감 등등으로 가득 차 있어요. 심각하죠.”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열등감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회전체가 거대한 정신병원’이라고 표현했다.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지만 열등감은 어떤 몸부림을 쳐도 해소되지 않는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폭력을 만들고 욕망과 폭력이 점점 심화하면 언젠가 사회 전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이르게 된다. 이때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폭력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해소돼야 하고, 다 모인 곳에서 피를 보고 불태우는 것을 보며 다같이 극도의 폭력을 실현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안정감을 찾아간다’는 지라르의 설명은 언뜻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희생양의 사례는 곳곳에 존재한다.

예수는 희생양이 됨으로써 사회가 안정되는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한 존재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나를 끝으로 더 이상 폭력을 행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내어줌으로써 새로운 욕망을 보여줬다. 곧 ‘하나님 닮기’라는 새로운 욕망을 통해 폭력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한국사회는 극도의 경쟁 때문에 폭력성이 극에 달했다.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핑계로 극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를 방관하고 폭력에 노출된 개인을 보호하지 못한다. 개인은 각자 욕망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가의 ‘고상한 폭력’이 사적 보복을 키운다

그러면 일탈을 감행하거나 사냥꾼으로 변한 개인들은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으면 되나? 지난해 하반기 개봉한 세 편의 한국 영화, 곧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김 교수는 ‘사적 보복’이라는 키워드를 읽어낸다. 개인에게 벌어진 일에 국가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자, 국민이 직접 나선다는 것이다. 

그는 사적 보복 말고도 사회안전망에 관심이 없는 현 정권의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공익광고 <조심조심 코리아> 캠페인을 들었다.

▲ '조심조심 코리아' 캠페인의 한 장면.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세금을 들여 만든 공익광고가 근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뭐냐? 네가 조심하면 사고가 안 난다는 거예요. 국민 여러분만 조심하면 산업현장에서도, 집에서도 사고가 안 난다는 거죠. 그건 달리 얘기하면 사고는 네 책임이고 국가는 책임이 없기 때문에, 죽고 싶지 않으면 네가 알아서 하라는 얘기죠.”

그는 이어 지난 8월, 20억원의 재산과 연금이 있는데도 노후대책으로 쪽방을 마련했다는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후보자를 예로 들며, “후보자 자신도 못 믿는 국가 시스템을 자신이 운영하려 한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왜 우리는 정부를 불신하고, 각자 살 길을 찾게 됐나? 김 교수는 이번 정부를 이끌고 가는 거대한 기조는 ‘예의를 차리는 고상함’이라며, 거기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가령 조용한 교회에서 아이가 울자 설교는 중단되고, 결국 아이 엄마가 자리를 뜨도록 만드는 것은 교회의 ‘고상한 폭력’에 해당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법과 질서의 구현도 ‘예의를 지키라’는 말로 대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원장이 진정인의 호소를 외면하면서 “예의만 지켜주면 무슨 이야기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는데, 거기도 내용보다 형식을 우선시하는 정부의 ‘고상한 폭력’이 드러난다. 

“아무리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공동체인 학교라도 고상하게 얘기해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요. 벽보를 붙이거나 퍼포먼스를 해야죠. 의견표명을 하려면 예의를 지킬 수 없는 게 학교예요.”

국가가 부족한 사회안전망보다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국민과 정부 사이에 신뢰가 사라졌고, 대신 사적 보복을 해주는 ‘옆집 아저씨’가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이코 살인범보다 더 흉악한 국가 폭력

“사적 보복을 이야기하는 영화나 사회 분위기가 갖는 위험성은 국가 폭력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는 거죠. 최근 사이코패스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실은 우리 주변에 사이코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우리가 잘 설명 안 되는 사람한테 낙인을 찍어놓고 ‘그 사람 절대 안 된다’라고 얘기하는 거지.”

억울한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와 정의로운 응징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둘 가운데 한국에는 압도적으로 후자가 많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한국 드라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검사인데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징입니다. 마패를 가진 사람, 누구나 잡아가둘 수 있는 검사라는 응징자에 우리를 동일시하는 거죠. 결국 사적 보복을 정당화하고 국가 폭력에 침묵하는 흐름이 형성되는 겁니다.”

그는 “오늘 하루 자신을 불륜에 빠진 남녀로 생각하고 돌아다녀보라”는 엉뚱한 제안도 했다. 그러면 거리에 수없이 많은 감시 카메라에 노출되기 때문에 가족은 여러분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중앙정부’는 다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일거수일투족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사회에서 정보기관이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은 쉽다며 국가 폭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은 사이코패스 한 사람에 의한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죠. 20세기 개인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 몇 건인지 모르지만 국가 폭력에 희생된 숫자는 대략 1억 9천만 명 정도 된다고 해요. 괴물 같은 어떤 살인범도 괴물로 변한 국가와는 경쟁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영화와 드라마를 소재로 쉽게 풀어 쓴 인권 이야기, <불편해도 괜찮아> 표지.
김 교수는 영화로 인권을 얘기한 저서,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언급한 ‘르완다 사태’를 예로 들었다. 그는 “80일간 100만 명 정도 죽었을 때 ‘100만 명이 죽었구나’가 아니라, 한 명을 죽인 사건이 100만개나 있는 것”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일기를 쓰고 옆집 친구와 웃던 한 사람이 죽었는데 제대로 기록을 만들면 두꺼운 책이 될 수 있는 인생이 100만명이나 사라진 것”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이며 가해자가 되기 쉬운 존재인지 ‘밀그램 실험’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다른 사람에게 전기쇼크를 주라고 명령했는데 실험참여자의 66% 이상은 치사량에 이르는 전압까지 수치를 올렸다”며 “우리는 권위에 승복하는 데 익숙하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힘이 필요한 시대

그는 “불이 났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모르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가만히 있다가 죽는 게 인간”이라며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기보다 죽음을 택하는 약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기에 이제 ‘내러티브가 중요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남자들이 폭탄주를 마시는 것도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죠. 저는 근본적으로 이야기의 힘을 믿고 또 이야기를 하고 싶어 책을 씁니다. 법학자들이 사형제도를 폐지하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형제도의 폐해를 결정적으로 널리 알린 건 공지영의 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한 권이었어요.”

“이야기의 힘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하는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인제 국회의원의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는지를 물었다. ‘이인제’라는 이름을 듣고 머리에서 생각나는 이야기는 없지만 ‘노무현’은 압도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인이 되려고 한다면 자기 이야기가 있고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짧게라도 SNS를 이용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습관을 들일 것을 부탁했다.

“앞으로 고난과 역경이 다가온다면 ‘드디어 나에게 이야깃거리가 생기는구나’ 하고 여기세요.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가요?”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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