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언론인들의 수다] “서바이벌 열풍, 이의 있습니다!”

엠넷(Mnet)의 가수 뽑기 프로젝트 <수퍼스타 K>를 시작으로 최근 방송에서 홍수를 이루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실기경쟁 살아남기) 프로그램들은 한편으로 재미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드는 구석들이 있다. 일반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감동과 재미를 준다는 이들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에서 기자와 피디(PD)가 되기 위한 전문과정을 밟으면서 <단비뉴스>의 학생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곽영신, 김수진, 송지혜, 이슬기, 주상돈 씨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에 대해 ‘수다를 떨어보자’고 모였다. 지난 5일 충북 제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내 <단비뉴스>의 방송스튜디오에서 김지영 박경현 진희정 기자가 이들의 좌담을 영상에 담았다.   

주상돈(이하 주): 지난주 티브이엔(tvN)에서 하는 <오페라스타>봤어? 기성가수들이 나와서 오페라를 부르더라. 그것도 서바이벌 포맷의 프로그램인 것 같았어.

곽영신(이하 곽): 그것도 서바이벌?

주: 응. 요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너무 많지 않아?

모두들: 맞아! 맞아!

   
▲ 김수진. ⓒ 안세희
김수진(이하 김): 그래도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에서 <슈퍼스타K(슈스케)>만 한 것이 없어. 제일 재밌었어. 사람들도 제일 많이 봤던 것 같고. 우리도 지금 구직자 입장에서 경쟁하고있기 때문에 사실 힘들잖아. 근데 <슈스케>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 얘기, 우리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위로가 됐어. 이런 요소 때문에 사람들이 <슈스케>를 많이 봤던 것 같아.

주: 그런데 난 조금 불편하기도 했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나와 가까운 사람이 꿈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드는 건,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요즘 개천에서 용 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잖아. 물론 희망을 주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게 심해지면 일종의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까.

경쟁 더욱 치열해지는 사회 분위기 반영

송지혜(이하 송):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결국 자기 능력으로 어떻게든 스스로 1등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이잖아. 난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게 사회적인 분위기, 특히 현 정권의 성격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전전 정권에서는 공익과 재미를 동시에 잡는다고 해서 스펀지, 느낌표와 같은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고 그 다음 정권에서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유행했어. 근데 이제는 흥밋거리를 찾아 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고 있어. 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연대는 할 수 없고 무조건 혼자 일어서야 하는 현실에 약간의 감동만 더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 경쟁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 정권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 이슬기. ⓒ 안세희
이슬기(이하 이): 나도 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것은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에는 동의해. 하지만 그것만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을 설명할 순 없는 것 같아. 프로듀서는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기에 어떤 프로그램이 굉장히 인기를 끌면 그와 비슷한 포맷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향이 있거든. 예전에 한국방송(KBS) <스펀지>가 유행하니까 그와 비슷한 ‘인포테인먼트(정보+엔터테인먼트)’ 형식의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이나, 서울방송(SBS) <패밀리가 떴다>가 인기가 많아지니 KBS <1박2일>이 생긴 것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해. 이번에도 <슈스케>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니까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앞 다투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라 생각해. PD는 한 프로그램이 유행하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때 그 장르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그 것이 PD의 숙명 같아.

주: 물론 유행을 타는 것은 맞는 말 같아. 근데 어느 정도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곽: 난 시청자들이 그러한 프로그램을 찾는 것은 대중들에게 어떤 욕구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어떻게 보면 ‘경쟁이 치열한 현실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그러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까지 봐야하나, 이를 보고 즐길 수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대중들은 그것을 보면서 즐겨. 대중에게 경쟁이 어떤 치열함이나 고통이 아니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내면화된 무엇이라는 것이지. 심지어 이제는 그것을 즐기는 수준까지 나아가게 된 거지.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사디스트(가학증환자)라 할 수 있지 않나.(웃음)

   
▲ 현재 방영중이거나 과거 방영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김: (웃음)오빠가 말한 것 같이 표현할 수도 있고, 시청자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참가자들에게 자신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 같아.

스토리가 ‘스펙’이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주: 예전에 일간스포츠가 큐티비(Qtv)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자를 뽑았어. 얼마 전엔 아리랑국제방송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보도기자를 뽑겠다고 했고, 문화방송의 김영희 프로듀서도 아나운서를 뽑는 <신입사원>이 반응이 좋으면 프로듀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뽑을 거라고 얘기한 바 있어. 이젠 언론사 입사를 원하는 우리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모른 척만 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우리도 서바이벌 프로그램 속에 참가해야만 할 것 같은데 너(지혜)는 참가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 송지혜. ⓒ 안세희
송: 절망스러운 사실이지만 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해도 안 되지 않을까.(웃음) 어차피 1등이 안 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데 나는 노래하는 곳에 나가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사연도 그렇게 구구절절하지 않아. 난 중‧서민층에 엄마, 아빠도 다 살아계시잖아.(웃음) 그렇다고 기자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기엔 내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거기에 나오는 애들은 다들 잘났더라고. 난 사연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하고 어중간한 입장이야. 때문에 오히려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원서를 넣어 입사하는 것이 지금의 내 현실에는 더 맞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주: 지혜가 말한 것처럼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어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안 될 것 같아'라는 의견이 있잖아. 이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사연도 하나의 스펙(자격조건)인건가? 이러다 봉사활동 하듯이 사연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야?

이: 그래서 스펙보다 스토리란 얘기가 있잖아. 스토리 있는 사람 없어?

김: 난 문화방송 <신입사원>에 나갔었어. 꼭 ‘아나운서가 되겠다’란 생각으로 나간 것은 아니야.(웃음) 공중파에서 20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 물론 내가 20대의 대변자는 아니야. 하지만 현재의 청년들이 느끼는 것을 내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얘기하고 싶었어. 비록 1차에서 떨어져 방송에도 3초만 나오고 원하던 기회를 잡진 못했지만.(웃음) 근데 방송을 보니깐 내 스토리 정도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 <신입사원>에 나온 사람들 중 절반은 원래 아나운서가 꿈이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람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지금도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인 것 같더라고.

이: 특이한 사람이 많았구나.

김: 응. 근데 그러면서도 유학을 준비하던 20세 남자가 ‘그냥 오늘 할 일이 없어서 나왔다’던데 1차에 붙어서 씁쓸하기도 했어.(웃음)

송: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평가) 기준이 너무 모호하지 않아?

   
▲ 주상돈. ⓒ 안세희
주: 난 제작자가 감동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시청자가 서바이벌 참가자들을 평가하는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해. 개인에게는 모두 다 감동적인 사연인데 제작자가 어떻게 살리느냐,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거지. 때론 감동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근데 제작자가 계속 감동만을 추구하다보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시청자가 원하는 감동의 수준도 점점 높아질 것이고 결국 제작자들이 생산하는 감동의 수준도 커져야만 하겠지. 이러다보면 무한감동이 되어야 할 거야.

아나운서·피디를 서바이벌로 뽑아도 될까

이: 프로듀서가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생겨도 난 안 나갈 것 같아. 우선 지금은 프로듀서가 되길 원하지만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나중에 다른 것이 되고 싶을 수도 있잖아. 아나운서가 되고 싶을 수도 있고, 탤런트가 되고 싶을 수도 있고.(웃음) 만약 내가 프로듀서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갔다고 생각해봐. ‘난 정말 어려서부터 피디를 하고 싶었다’는 것을 어필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1등이 되지 못하고 떨어졌어. 그리고 1년 후에 ‘피디는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고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 아나운서를 지원한 곳에서 '난 너를 프로그램에서 봤다. 너 프로듀서 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냐'고 하면 어떡해. 난 프로듀서가 되지도 않았는데 프로그램에 나간 것만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가수나 탤런트 같은 경우는 자기가 노출되면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구직자 같은 경우는 방송에 이용당하는 것이지. 구직자들을 위해 프로그램이 생긴 것 같진 않아.

주: 맞아. 그럴 수 있지.

   
▲ 곽영신. ⓒ 안세희
곽: 나도 지원 안 할 것 같아. 어느 회사에 입사하든지 신입사원이 되는 과정은 서바이벌 하는 것이라 생각해. 다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이를 엔터테인먼트화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 근데 난 내 경쟁이나 절박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흥밋거리로 던져진다는 것이 조금 버겁고 부담스러울 것 같아. 물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해. 기존의 진입장벽이 워낙 공고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워낙 패쇄적이기 때문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 같아. 가수는 어리고 춤 잘 추고 예쁜 사람들만 될 수 있고, 아나운서도 젊고 학벌 좋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만 되잖아. 근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 그런 사람들이 폐쇄적인 시스템을 뚫기 위해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 같아.

이: 그것을 장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 스펙을 갖추지 못했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활짝 열어주니까. 바늘구멍이라도 기회는 기회니까.(웃음)

곽: 응. 그것이 좋은 점일 수도 있어. 근데 난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데 이점은 건드리지 않고 몇 개의 탈출구만 가지고 시스템의 문제를 무마하려는 것 같아서 불편해.

경쟁을 넘어 협력하는 모습에서 감동 물씬

   
▲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에 관해 이야기하는 <단비뉴스> 기자 (왼쪽부터) 송지혜, 이슬기, 주상돈, 김수진, 곽영신. ⓒ 김지영
주: 우리도 곧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겠지? 그때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을 외면할 순 없을 거야. 그렇다면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접근해야 할까?

곽: 우선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만들 프로그램과 그렇지 않을 프로그램을 구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서 가수, 연예인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은 서바이벌 형식을 통해 일반인에게 기회를 주니까 좋다고 생각해. 그러나 <신입사원>이나 아리랑국제방송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처럼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구직자의 절박함을 장삿속으로 이용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김: 경쟁 자체가 현실이긴 해. 그러나 프로그램 자체에서 이를 뛰어넘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뭔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협력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프로그램에 녹여내면 더 좋은 프로가 되지 않을까.

이: 예전부터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었잖아. 온 스타일(On Style)의 <도전슈퍼모델>은 인기도 있었고. 근데 <슈스케>가 유난히 크게 성공한 이유는 수진이가 말한 것(협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해. 물론 <슈스케> 탑 11엔 미친 듯이 경쟁해서 올라왔어. 그렇지만 탑 11에서는 팀별로 나눠 ‘팀끼리 얼마나 협력해서 과제를 수행하는가’, 즉 하모니를 굉장히 중요하게 봤거든. 난 팀원끼리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감동했고 이 때문에 <슈스케>가 히트를 쳤다고 생각해. 뒤를 이어 나온 위대한 탄생도 같아. 멘토와 출연자간의 끈끈한 정과 이를 통해 발전해 가는 참가자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훈훈해 질 수 있었어. 내가 만약 제작자가 된다면 경쟁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지만 정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지 않을까.

송: 난 슬기가 말한 그 ‘훈훈함’이라는 것이 정말 양날의 칼 같아. 어떻게 보면 편집과정에서 거품이 낄 수도 있고, 감동에 선정성이 더해지는 것 일 수도 있어. 그래서 난 일반인을 방송에 내보낼 때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요즘 20대는 안 그래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아. 20대를 ‘청년실업’ ‘이태백’ ‘88만원 세대’라고 하잖아. 조그만 웅덩이 하나에 올챙이 몇 십만 마리가 살고 있는 것 같아. 근데 거기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것 봐라, 그래도 우린 여기서 아름답게 서로 핥아 주면서 살고 있지 않냐'라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방송할 필요가 없는 대기업도 케이블과 손을 잡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더라. 20대들을 계속 ‘경쟁이 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력하는 성실함’으로 포장하니까 난 약간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