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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설탕의 지정학
[전문가칼럼] 세명대 자연약재과학과 이평재 교수
2011년 04월 16일 (토) 14:21:07 이평재 pjlee@semyung.ac.kr

   
▲ 이평재 세명대 자연약재과학과 교수
구미호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어디일까? 답은 영국의 리버풀(Liverpool). 간(肝:Liver)으로 채워진 웅덩이를 상상해 보라. 지명의 진짜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지만, 이 도시 이름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덕분에 세계인들에게 익숙하다. 리버풀FC는 2005년에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었을 정도로 명문구단이다. 팬들도 극성맞아 '훌리건' 하면 리버풀 팬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1985년 이탈리아 유벤투스와 벌인 결승전에서는 흥분한 응원단이 이탈리아 응원단을 덮쳐 펜스가 넘어지면서 39명이 깔려죽었다. 박지성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는 프리미어리그 최다우승을 다투는 앙숙이어서 선수 트레이드조차 없다. 

올해 성적은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한 데 견주어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6위를 달릴 정도로 초라하다. 그런데도 문득 리버풀을 떠올리게 된 것은 대학생 때 읽은 얇은 책 때문이다. <다시 보는 세계역사 2>라는 책에서 리버풀은 노예선이 출발하는 항구도시로 소개됐다. 노예선은 리버풀에서 총, 면직물, 장신구 등을 싣고 서아프리카로 출항했다. 이 물품들은 노예와 바꾸는 현물화폐인 셈이다. 배는 다시 노예를 싣고 아메리카 식민지로 향한다. 아메리카는 사탕수수와 면화의 집단재배지였다. 식민지에서 가혹한 노예노동으로 생산한 설탕과 면화는 영국으로 다시 이송된다. 배의 항로가 삼각형으로 그려져 삼각무역이라 불렸는데 이만저만 불공정한 무역이 아니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그런 끔찍한 짓을 해가면서 유럽인들이 설탕생산에 열을 올린 이유였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설탕을 원했을까?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설탕의 단맛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단맛을 선호하게 된 연유를 따져 올라가면 흥미롭다. 단맛은 흔히 말하는 다섯 가지 맛 중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자본주의적인 것 같다. ‘욕망의 맛’이라고 할까? 탐닉의 최고봉에서 즐기는 맛이고 돈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 어릴 때부터 초콜릿, 사탕, 요구르트 같은 것에 집착하는 걸 보면 인간은 단맛을 찾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듯하다.

단맛은 실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맛’이다. 인간의 주식인 곡물은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 단맛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우리 몸의 에너지 공급원이 글루코즈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한 글루코즈를 섭취하는 데 쾌감을 느끼도록 인간이 진화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글루코즈 자체가 아니라 글루코즈가 붙은 이당류인 설탕에 인간이 맛을 들인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곡물은 열심히 씹어야 단맛이 조금 날 뿐이지만 설탕은 입에 넣는 순간 강렬한 단맛이 혀를 사로잡는다. 씹는 데 게으른 인간이 사탕수수를 만났을 때 ‘바로 이거다’ 했을 거다. 그런 설탕이 이젠 지나치게 섭취돼 문제가 되고 있다. 설탕의 과다섭취로 인한 현대병은 너무나 많다. 본능에 욕구를 내맡기는 것은 대개 뒤가 좋지 않다. 앞서 소개한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어느 연극배우가 했다는 말이다.

“이 지옥 같은 도시는 벽돌 하나까지 아프리카인의 피로 이겨져 있지 않은가!”

맨체스터 역시 삼각무역의 수혜도시였다고 한다. 불공정 무역을 통해 ‘동반성장’을 해온 도시 사이에 아직도 축구전쟁을 벌이고 있다니! 그 끈질김 하나만은 경이롭다. 축구도 매우 자본주의적이고 인간 본능에 근접한 운동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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