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최하나

▲최하나
소설가 김연수는 김천역 앞 뉴욕제과점에서 자랐다. 어린 그의 눈에 빵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과정은 생경함 그 자체였단다.

“전등을 끄고 쓰레기를 내놓고 가게문을 잠근 다음 흔들어보는 그 과정이 참 좋았어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빵집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토대로 과정의 중요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소설 쓰는 과정 자체에 모든 것이 있다는 그의 믿음은 그렇게 빵집에서부터 자라났으리라 짐작해본다.

빵이 진열대에 오르기까지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발효’다. 밀가루 반죽이 뚝딱하고 빵이 되는 줄 알았던 아이들에게 ‘발효’는 낯선 단어이자 쉬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어떤 현명한 어른은 발효를 가리켜, 균을 활성화해 맛있는 빵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빵은 원래부터 그저 빵이 아니라 숙성하고 부풀어 오르는 과정이 있었기에 빵이라는 진리를 말이다.

우리는 곧잘 상상한다. 모든 일이 뚝딱, 한 방에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한 방을 꿈꾼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그것이 상상 속에서만 신나게 진행되는 일임을 깨닫는다. 인생엔 굴곡이 있음을 체험하며 어른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회는 한 방을 강요한다. 결과로써 평가받고, 상품으로써 매력을 뽐내야 인정받는다. 여기서 종종 빵이 가르쳐 주었던 진리, 발효는 생략된다. 숙성되는 과정, 균이 활성화하는 시간을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무력한 개인은 다시 좌절한다.

상황이 이러니 아이들도 과정의 즐거움을 잃어간다. 방송반 활동을 막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왜 방송반 활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이 기가 막히다. 입학사정관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한다. 방송을 만드는 활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대답하는 아이에게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발효를 말하는 현명한 어른이 줄어든 탓일까? 직접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보다 해설지에 적힌 모범답안을 외우기 바쁜 아이들에게 결과주의는 이미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바라는 효율성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오늘도 빵집 어느 한 편에서는 발효를 기다리는 반죽들이 줄지어 있을 것이다. 빵집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우리는 속도에 중독되어 과정을 잃은 사회에서 부단히 애쓰며 살아간다. 미처 소화되지 않은 음식과 지식, 마음을 모두 짐처럼 가진 채 뛰고 걷기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기다림의 미학을 깨닫기 위해 겪어야 했던 ‘성장통’을 추월한 ‘생략통’이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조급함만 얻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데 조급함은 좋은 기질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성숙할 시간을 갖고 과정의 공백을 차곡차곡 메워야 할 텐데...... 세상은 거꾸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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