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세상을 바꾸는 뮤지컬’ 꿈꾸는 이지선 씨

▲ 인터뷰 중인 이지선씨. ⓒ 김수진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더 냉정한 현실 인식 아닐까요? 다 포기하고 산다고 재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난달 19일 서울 안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지선 씨(26·뮤지컬 작곡가 지망생)는 학창시절 소위 ‘엄친딸’로 불리던 자신이 어쩌다 지금의 ‘날라리’가 되었는지 조곤조곤 털어놓았다. 고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해까지 공연제작사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생활을 꾸리지만, ‘보통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멋진 뮤지컬을 무대에 올릴 날을 꿈꾸며 씩씩하게 산다.  

다른 작곡가 지망생에 비해 그는 조건이 좋지 않다. 피아노는 어린 시절 학원에서 배웠던 ‘체르니 30번 수준’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때 바이올린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여파로 형편이 어려워져 금방 접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연주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무척 부럽다.

“바이올린을 배웠을 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중학생일 때 언니가 작곡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니까 굉장히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지레 겁을 먹었어요. 모범적으로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공연 보고 사람을 움직이는 '문화의 힘' 절감

그는 성적표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딸이었다. 고등학교는 외국어고로 갔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삶은 더 팍팍해졌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혼란스러움은 계속 됐다. 딱히 뭘 하고 싶은지 몰라 ‘무난해 보이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춤동아리인 ‘몸짓패’ 활동을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공부는 질렸고 그냥 춤추는 게 좋아 찾아갔던 ‘몸짓패’에서 ‘열사가 전사에게’라는 곡에 맞춰 춤 연습을 하다가 사회성 짙은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반전 집회에도 찾아다니고 학생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

▲ 이지선씨가 2009년 예술계열대학생 공동행동 사전행사로 시청광장에서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 ⓒ 이지선

2006년 경기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투쟁 때문에 평택 예술인 마을에 갔을 때 그들이 그려놓은 벽화에서 감동을 받았다.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평택, 들이 운다’ 문화제에서 임정희 씨 등의 공연을 보고 ‘사람을 움직이는 문화의 힘'을 실감했다. ‘이런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고, 공연 기획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게 됐다.

공연 ‘기획’에서 작곡으로 관심을 돌린 것은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빨래’의 제작사에서 일했던 게 계기가 됐다.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를 밝고 희망적으로 만들어 주는 ‘음악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그 후 한국대학생문화연대(한문연)의 음악캠프에서 ‘요새 젊은 것들은!’이란 뮤지컬을 직접 만들고 대학로에서 공연까지 했습니다. 반응은 좋았지만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그래서 전문성을 쌓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어요.” 

'보통 사람의 이야기' 담은 뮤지컬 만들고 싶어

그는 뮤지컬 ‘빨래’의 작곡가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으며 한국종합예술학교(한예종) 입학을 준비 중이다. 빙빙 돌아서 결국 하고 싶은 음악을 시작했지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린 부분은 늘 마음에 걸린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빠가 ‘우리 집에 별이 하나 떴다. 나는 그 별만 보고 산다’며 기뻐하셨어요. 그런데 그 별이 점점 까매지고 있어요(웃음). 부모님은 당연히 안정된 것을 바라시죠. 회사에 들어갔을 때 굉장히 좋아하셨고요.”

▲ 이지선씨가 용산참사 추모 문화제에서 몸짓 공연을 하고 있다.ⓒ 이지선

공연제작사를 그만 두고 음악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아직 직접 말씀드리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왠지 잘 하는 것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힘들다’는 얘길 못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대화가 줄어 안타깝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피아노 연습할 공간이 없어, 다니던 대학의 기숙사 피아노실에서 연습을 하는데 너무 추웠다. 피아노를 치면서 “춥다, 춥다, 춥다”를 연발하게 되더란다. 손가락은 점점 굳어가고…. 한 교회에서 피아노 연습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침 일찍 갔더니 문이 닫혀있거나 교회 행사 때문에 발길을 돌린 일도 있다. 이런 저런 일이 겹쳐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시작한 뮤지컬이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잘 풀려서 예술계 중고교를 졸업했다면 가슴 속에 이런 생각들이 가득 차진 않았을 것 같다. 학생운동, 문화운동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던 것들을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 인터뷰중인 이지선씨. ⓒ 김수진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그게 드러나지 않잖아요. 2008년 촛불 때 배웠던 것 중 하나가 ‘나만 이렇게 어렵게 사는 게 아니구나’하는 거예요.어떤 분이 광장에 나와서 ‘나는 대리운전 기사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다들 박수를 치더라고요. 나만 힘든 줄 알면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걸 알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잖아요.”

뮤지컬은 환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지만 이 씨가 만들고 싶은 뮤지컬은 사람들에게 ‘견딜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주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는 제대로 된 작품이 20년 뒤에나 나올 수도 있겠지만 조급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일을 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에 도서관에서 혼자 경제학을 공부할 때는 차가운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는데, 음악을 공부하니 참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이자 ‘좋은 일’에 몰입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이지선 씨. 그가 언제쯤 어떤 작품을 무대에 올릴지 기대하게 된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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