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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 평화와 지배의 두 얼굴
[미디어 비평] 기호학적 관점에서 본 영화 '어벤져스'의 영웅들
2015년 12월 02일 (수) 23:14:23 최지영 기자 thrunetsun@naver.com

‘리벤지(Revenge)’와 ‘어벤지(avenge)’는 둘 다 ‘복수하다’는 뜻이다. ‘리벤지’는 개인적인 원한을 동기로 하는 보복을 의미하지만 ‘어벤지’는 사회적 당위성을 가진 복수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마블 코믹스 <어벤져스(Avengers)> 캐릭터들은 정의구현이라는 당위성을 가진 복수자들로 그려진다. 수용자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받아들인다.

마블 코믹스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자회사인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출판 부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만화책 출판사다. 캡틴 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맨, 엑스맨, 판타스틱 포, 고스트 라이더, 가이언즈 오브 갤럭시 등의 캐릭터로 전 세계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콘텐츠는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악당들과 맞서 싸워 평화를 되찾는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캐릭터 모두가 미국인 혹은 신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마블 영웅물의 정점에는 <어벤져스>가 있다. 어벤져스는 마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팀 이름이다. 주요 팀원으로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등이 있다. 이 콘텐츠는 만화책에 이어 TV시리즈, 영화로까지 제작됐다. 전 세계에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어 그 영향력 또한 상당하다. 미국의 문화 콘텐츠 파워를 보여주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의 문화적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어벤져스>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 영화 <어벤져스> 속 영웅에는 미국식 패권주의 담론이 담겨있다. © <어벤져스> 스틸 이미지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지배로 세계의 평화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팍스(Pax)’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한다. 로마가 피정복 민족들을 지배하던 것을 가리켜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한 것에서 기원한다. 영화 <어벤져스>에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문화적 제국주의 패러다임이 곳곳에 담겨있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이에 대적하는 악당들의 캐릭터를 기호학적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미국식 지배담론을 읽어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는 약한 젊은이 스티브 로저스의 분신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실험용 혈청을 맞고 완전한 인간의 정점으로 강화된 인간이다. 성조기를 모티프로 한 복장을 하고 어떤 무기로도 파괴되지 않는 방패로 무장했다. 강력한 애국심을 가진 인물로 그려져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인기가 떨어졌으나, 어벤져스로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는 어벤져스 팀의 리더이자, ‘미국 그 자체가 세계 질서의 리더다’라는 메시지를 표상한다. 그의 복장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강력한 애국심을 함축하고, 파괴되지 않는 방패는 미국의 완벽한 미사일 방어체제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정의, 우정, 의리 등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일어나지도 않은 싸움을 이기려 들면 죄 없는 사람들이 다쳐”라든지, 비속어를 쓰는 아이언맨에게 “고운 말 써야지”라며 나무란다.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를 만든 조 사이먼과 잭 커비는 “자유, 정의, 애국의 표상이 될 수 있는 슈퍼 히어로를 만들고자” 캡틴 아메리카를 창조했다고 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절대적 선의 기준이 미국’이라는 미국식 패권주의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아이언맨’은 ‘미국은 첨단 과학의 결정체’라는 기의를 담고 있다. ‘토니 스타크’는 백만장자이자 무기 발명가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만든 무기로 심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만, 명석한 두뇌와 막강한 자본력으로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세계를 지킬 첨단 강화슈트를 제작한다. 토니 스타크는 이 슈트를 입고 아이언맨이라 불리며, 중동 테러집단과 맞선다. 테러, 범죄 집단 격퇴를 위해 최첨단 군사력으로 응징해 평화를 수호하는 미국의 평화 패러다임이 아이언맨에 그대로 담겨있다. 홀로 있을 때와 어벤져스의 팀원일 때 그의 모습이 약간은 다르게 그려지는데, 여기서도 흥미로운 기의를 포착할 수 있다. 평소에 그는 천방지축에 지독한 개인주의자다. 어벤져스 팀 내에서도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캡틴 아메리카’의 제재와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도 보인다. 국가를 향한 애국심은 자본, 과학, 권력 등 어떠한 요소보다 앞선다는 기의를 읽을 수 있다.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을 모티프로 탄생한 영웅이다. 고대 게르만족의 신으로 던지기만 하면 반드시 적을 쓰러뜨린다는 ‘묠니르’라는 철퇴를 휘두른다. <어벤져스>에서도 ‘묠니르’로 번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천둥의 신으로 그려진다. <어벤져스> 내에서 유일한 신이지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인간영웅과 함께 팀을 이룬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등 인간영웅의 도움을 받아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등 나약한 모습이 비춰지기도 한다. 이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적 사고라는 미국식 세계관에다 신이 미국 영웅들과 함께 싸운다는 기표는 ‘신이 미국과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다. 미국의 폭력과 전쟁 등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벤져스에 대적하는 악당은 다양하다. 외계 종족인 치타우리족, 토르의 동생인 로키,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 울트론 등이 있다. 영원한 에너지원인 큐브를 차지해 인류를 지배하겠다는 공통의 목적을 공유한다. 기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어벤져스 연재 시점이 냉전시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 군비확산 경쟁을 벌이던 시기다. 이런 점에서 큐브를 핵무기로 비유한다면 어벤져스라는 미국 축과 악당인 소련 혹은 반미세력 축의 대치가 이 영화의 기본 갈등구조라고 볼 수 있다. 승리는 당연히 어벤져스의 차지다. ‘미국의 지배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기의의 당위성을 확고히 한다.

여기서 울트론은 흥미로운 존재다. 아이언맨의 실수로 불완전한 뇌파를 물려받은 울트론은 최첨단 인공지능의 결과물이다. 그는 지구에 축적된 모든 자료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지구의 적은 ‘인간’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가 어벤져스와 대적한 이유, 인간을 멸종시키려 했던 이유는 바로 지구를 인간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울트론은 악의 근원이지만, 우주와 지구의 입장에서 울트론은 영웅일지도 모른다. ‘울트론이 진정한 악인가?’하는 점에서 색다른 기의가 함축된 캐릭터다.

미국의 문화 콘텐츠사업은 우주항공, 군수산업 못지않게 거대한 국가전략산업 중 하나다. 미국 콘텐츠가 세계 미디어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정치, 경제적 패권뿐 아니라 문화적 패권까지 장악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사고는 세계인들의 인식체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상생과 공존으로 달성되는 평화가 아닌 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어벤져스>의 슈퍼 히어로는 세계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인가,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첨병인가.


편집 : 유수빈 기자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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