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나] 인터넷 과도한 규제 대신 시민의 지혜 믿어보자

▲ 정혜승(다음 대외협력실장)
초등학생 아들은 주말에 종종 친구들과 게임을 한다. 주중에는 '게임 불가'인데 '직딩맘'이 종일 감시할 처지는 아니니까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 다만 요즘 아이들이 좀 바쁜가. 학교에, 학원에 숙제까지 하려면 몰래 게임할 시간도 많지 않을게다. 그렇다면 주말에 게임만 하냐고? 물론 아니다. 사내아이들은 게임에 몰입하다가도 답답한지 곧잘 나가서 뛰어논다.
 
아이의 게임에 너무 관대한 걸까. 하지만 아들을 핑계로 온갖 게임기를 사들이는 게임마니아 아빠를 둔 처지다. 그도 가끔 게임에 몰입하지만 멀쩡한(!) 사회인으로 잘 살고 있다. 아빠가 아이를 위해 '좋은 게임'을 골라줄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 세대에서 게임은 새로운 문화이며 기회와 가능성이란 생각에 무조건 막을 수가 없다. 이것저것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디지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혹 아이가 멋진 게임 개발자로 자랄 가능성은 없을까.

실상 게임은 가장 유망한 콘텐츠 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시장은 작년 1110억 달러(약 121조원) 규모에서 2014년 1430억 달러(약 156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외 게임 업체 도전도 흥미롭다. 국내 1위 넥슨의 경우, 매출 7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두는 수출역군이다. 창업한지 5년 된 미국 징가의 작년 매출은 1조 원. 매달 전 세계 2억 명이 징가의 게임을 즐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게임의 '순기능'에 눈을 돌려야 보일 뿐이다. 한국에서 게임은 사회악이다. 아이를 굶겨죽이고 부모를 해치는 온갖 패륜 흉악 범죄들이 게임중독 탓이다. 실상 게임으로 도피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현실의 구조적 암울함 등도 문제가 됐을 법 한데, 다른 정신병리학적 문제도 있을 법 한데, 무조건 게임 탓이다. 이처럼 '역기능'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 국가가 가만있을 수 없다. 부모가 '룰'을 만들어 관리해야 할 아이들의 게임에 정부가 나섰다. 심야게임 금지 개정안을 낸 청소년보호법은 '신데렐라법'이라는 별명을 얻고 논란에 싸였다.

대상과 범위가 애매한 역기능 규제

다양한 사회 현상의 '역기능'에 대해 대책을 세우고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런데 어디까지 국민을 보호할 것인지, 국민은 어디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할지 때로 의문은 꼬리를 문다. 온갖 중독과 몰입에서 국민을 지켜주려면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술, 담배를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이나 마카오, 싱가폴 정부는 왜 국민을 보호 않고 중독성 높은 도박 리조트를 계속 늘리고 있는 것일까. 또 일각에서는 '인터넷 중독'을 우려하는데 대체 그 폐해는 무엇일까. 현대인으로서 아침부터 밤까지 인터넷과 더불어 사니 중독은 맞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역기능'에 대한 과한 걱정, 지나친 보호는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가정교육과 학교의 공교육을 통해 아이의 게임 생활을 지도하는 대신 국가가 법으로 규제할 경우,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 기업들은 어찌할 것인가. 규제의 실효성은 줄어들고 역차별 논란은 불가피하다. 이 같은 문제는 게임 뿐 아니라 쏟아지는 다양한 '역기능' 대책마다 우려되고 있다.

일본의 방사능 사태와 관련, 유언비어가 퍼져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도록 최근 경찰이 나섰다. 이른바 미네르바 사태와 관련, 설혹 허위 사실을 유포해도 인터넷은 신속한 정정,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처벌은 위헌이라는 작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 유언비어 단속에 대한 의지는 강력하다. 마땅한 법 조항이 없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스토커 처벌 규정인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나 문언 등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끔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보도됐다. 실제 스토커 처벌에서도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이 조항이 유언비어 처벌에 맞는지 여부는 넘어가자.

정부가 유언비어라는 인터넷의 '역기능'만 바라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했듯, 인터넷에서는 유언비어가 나돌아도 빠르게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의외로(?) 똑똑한 네티즌들은 유언비어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무턱대고 믿지 않는다. 신속하게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고 더 많은 정보를 검색해 서로 들이민다.

디지털 순기능 바탕으로 혁신적 해법 모색해야

광우병 사태나 천안함 사태 등도 유언비어 차단에만 집중하는 대신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고 나누는 인터넷의 '순기능'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특히 소통이 더 빨라지고 넓어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인터넷이 집단지성으로 도약하도록 순기능을 더 키울 방법을 찾는 것이 낫지 않을까. 더불어 유언비어로 오해받을 정당한 비판과 의혹 제기는 없을지도 따져봐야 한다. 일본인들은 정부 설명만 믿고 원전 사태에 대한 의혹 제기를 초기에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사이버 보안과 관련, 전 세계 유례없이 강력한 보호 조치가 등장하는 것도 우려가 지나치게 컸던 탓이다. 정부는 디도스(DDos) 사태와 관련, '악성 프로그램 확산 방지 등에 관한 법률', 일명 '좀비PC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더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아무 의심 없이 각종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습관을 부른 ‘액티브X’를 퇴출시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좀비PC법은 좀 센 탓이다.

백신 등 보안프로그램 설치를 정부가 인터넷 사업자 등을 통해 이용자에게 강제하는 것이 적절한가. 일괄적으로 같은 보안 프로그램을 모든 국민이 사용한다면 오히려 한꺼번에 뚫릴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는 않을까. 백신 업데이트가 잘 안됐다는 이유로 인터넷 접속을 제한한다면 이용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과도한 개입이 아닐까.

실상 공인인증제도나 제한적 본인확인제도 그 자체의 긍정적 가능성에도 불구, 세계 유일하게 정부가 강제하는 법적 의무가 되면서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차라리 정부가 이 같은 역기능들에 대해 조금 덜 걱정하고, 국민을 믿어보면 어떨까. 인터넷 이용자 스스로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안전한 금융거래를 제공하는 서비스, 익명이든 실명이든 좋은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와 지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 교육하고 지원하는 정책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기술이 급변하는 IT 분야에서 세계 유례없는 규제들을 계속 만들어 가기보다 디지털 순기능에서 혁신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필 IT 분야에서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 사례가 진부할 정도로 종종 언급되는 것도 아이러니다. 19세기 자동차 등장으로 교통사고라는 '역기능'에 부딪친 영국 정부는 강력한 규제로 대응했다.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통행인에게 경고를 해야 했고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마차보다 빠르지 않아야 했다. 영국은 이후 미국, 독일 등에게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내줬으며 사실상 관련 산업이 무너졌다. 국민을 보호하고, 마차 등 다른 산업을 보호하고자 했던 영국 정부의 고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과보호는 때로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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