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김두식 교수
주제① 기자가 알아야 할 형법의 '쌩기초'

 

▲ 강연 중인 김두식 교수. ⓒ 이지현
수업시간에 역할극을 시키는 로스쿨 교수

‘법학은 무식하게 외워야 하는 거 아니냐?’ ‘법학자는 조문을 다 암기한 사람들이겠지?’ ‘법학’ 하면 ‘고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갖는 생각들이다. 경북대에서 형법을 가르치는 김두식 교수는 “흔히 그렇게들 믿지만, 법학이야말로 사고하는 학문”이라고 운을 뗀 뒤 “법은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하다”고 말했다. 정밀한 이론으로 대립하고 싸우는 여러 사건들을 마주하며,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교수법은 여느 수업과 다른 때가 많다. 그는 가끔 ‘법률가’가 될 학생들에게 연기를 시킨다. 한 조를 이룬 학생들이 어떤 사례를 공연하고 사례에 대한 학설을 설명한다. ‘개괄적 고의’ ‘미필적 고의’ ‘긴급피난’ 등 어려운 법학용어들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체험을 통해 일상과 법의 합일을 이해시키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이라는 불신의 벽을 허물려는 그의 고민과 관련이 깊다.

우리 사회의 법조인 선발 과정만 보면, 법학은 암기과목이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등 정해진 문항에, 정해진 점수가 있다. 각 문항에는 자기 논리 대신 여러 학설을 써야 한다.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법을 연계하면서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없는 대목이 여기에 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가 자기 생각이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이력은 그의 고민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한때 대구에서 살았고 검사 생활을 하면서 일사불란한 조직문화를 맛보기도 했다.

군법무관 시절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을 만난 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평화의 얼굴>을 썼다. 검사 경험을 바탕으로 ‘괴물로 변하기 쉬운 국가와 그 국가를 통제해야 하는 법의 사명’을 설명한 <헌법의 풍경>도 있다. 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도 한국 교회가 지닌 세속주의 단면을 보여주는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까지, 그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에 신랄한 일침을 가해왔다.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다룬 <평화의 얼굴>과 국가와 법의 사명을 다룬 <헌법의 풍경>.

맛 좀 보라고 제기한 <PD수첩> 소송

그는 <PD수첩> 소송을 예로 들어, 언론과 법, 곧 언론현실과 법 적용 사이의 괴리를 설명했다. <PD수첩> 소송은 2008년 MBC가 그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보도하자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장관 등이 형법 제307조를 적용해 제작진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제307조 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때, 판검사는 피의자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를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검찰은 <PD수첩>을 307조 1항 대신 2항으로 기소했다.

제307조 2항: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항은 1항과 달리 ‘허위의’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허위의 사실’로 기소할 경우, 검찰은 ‘허위의’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유죄 입증의 책임은 검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되물었다.

“검찰은 왜 1항 대신 2항으로 기소했을까요? 중하게 처벌하기 위해서? <PD수첩>이 허위의 사실을 방송했다고 검찰이 확신했기 때문에? 혹은 확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일까요?”

김 교수는 그 이유를 “형법 310조의 존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310조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다시 말해, 307조 1항으로 기소할 경우 “<PD수첩>의 보도가 진실이라면, 설령 정운천 전 장관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분명하므로 310조에 의해 처벌한 근거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

“진실한 사실이란, 100% 진실이라기보다 기록한 내용이 진실이거나 적어도 행위자가 그 사실을 진실한 것이라고 믿고, 믿을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정운천 같은 분들의 명예가 언론보도로 훼손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때문에 언론 자유를 잃는 것은 어떤가요?”

▲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 ⓒ 이지현

307조 1항으로 고소하기에는 310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307조 2항에 의해 처벌할 수 있도록 ‘허위의 사실’을 혐의사실로 ‘미리’ 구성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결국 처음에 <PD수첩> 수사를 담당했던 임수빈 검사는 “<PD수첩> 사건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끝으로 검찰에 사표를 냈다. <PD수첩> 수사가 무리였음을 말해주는 사직이었다.

자기검열로 무릎 꿇게 되는 언론과 개인

김 교수는 정연주 전 KBS 사장, 한명숙 전 총리, <PD수첩>으로 이어지는 이명박 정권의 ‘소송걸기’식 시국 대처 방식을 우려했다. 토론이라곤 일절 없이 무조건 소송을 거는 태도는 자연스레 검찰에 반영돼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언론은 자체 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법적 승리가 보장되는 등 무혐의 처리가 된다 하더라도 정연주, 한명숙, 조능희는 개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동안 검찰에 불려나가고, 체포영장을 발부 받는 건 국가 앞에 선 나약한 개인이죠. 이들의 일상은 쪼개지고 피폐해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피곤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검열하게 되겠지요.”

김 교수는 이 때문에 외압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 언론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모든 문제는 언론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며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오류투성이 기사와 취재원을 도구로 생각하는 기자들의 태도는 반드시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을 소홀히 하고 공부하지 않는 일선기자들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다.

“기자들은 권력 감시와 비판, 알 권리 충족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자신감 있으면서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진 기자를 만나고 싶어요.”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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