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500회 맞은 <100분토론> 진행자 장악력 아쉬워

'토론종결자'들이 모인 500회 특집이었다. 지난 24일 밤 '대한민국의 희망'이란 주제로 진행된 <MBC 100분토론>에는 문화평론가 진중권, 전원책 변호사, 경제평론가 박경철,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인명진 갈릴리교회 담임목사, 배우 김여진이 패널로 나와 ‘화려한 라인업’을 뽐냈다. 김여진 씨 외에는 대부분 이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로‘불꽃 토론’을 펼쳤던 논객들이다.

 ▲ MBC100분 토론 홈페이지. ⓒ MBC

‘논박(論駁)'이 빠진 '갑을(甲乙)'의 만남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오늘, 대한민국 희망을 말한다'는 제목 아래 고물가와 실업, 부실한 사회안전망, 불신 사회를 두루 진단하겠다고 시작한 토론은 치열한 ‘갑론을박’대신  정돈된 ‘촌평’들을 들려주었을 뿐이었다. 하나의 쟁점을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한 채 논객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는 데 그쳤다. 주제 자체가 추상적이었던 탓도 있고, 진행자가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사회자 박광온 MBC 논설위원. ⓒ MBC 홈페이지 
사회자인 박광온 MBC 논설위원은 패널들의 논의가 ‘옆길’로 샜을 때 즉각 개입해서 바로잡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날 청년실업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 패널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로 빠졌을 때, 박 위원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보다 못한 김여진 씨가 “청년들이 왜 희망을 못 가지나가 지금의 주제라고 생각한다”며 교통정리를 할 정도였다. 박 위원은 지난 1월 27일 전세난을 주제로 한 방송에서도 중구난방으로 초점을 잃은 토론을 정리하지 못해 김진애 민주당 의원이 “전세난 대책에 집중하자”고 ‘의사진행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 위원에 대한 아쉬움은 그에 앞선 역대 진행자들이 워낙 발군의 실력을 보였기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졌다. 지난해 5월 권재홍 앵커의 자리를 이어받은 박 위원은 이 프로그램의 5대 사회자다. 고 정운영, 유시민, 손석희 등 상대적으로 장수한 3명의 진행자는 워낙 장악력이 강했고,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특히 거의 8년 간 <100분토론>을 이끌며 탁월한 진행 솜씨와 균형 감각을 보여준 손석희 교수(성신여대)는 ‘대한민국 TV토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0분토론>은 1999년 10월 21일 '무엇이 언론개혁인가'를 주제로 첫 방송을 한 이래 TV토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 때까지 고작 1~2% 였던 TV토론의 시청률을 5% 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지식층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토론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2008년 12월 18일 방송된 400회 특집(‘대한민국을 말하다’)은 심야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7.5%(TNS미디어코리아 수도권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6시간 7분이라는‘최장시간’기록을 세웠던 2003년 5월 8일의 ‘정치 개혁 대토론-한국 정치의 새로운 비전을 열자’를 비롯, ‘광우병 파동과 촛불정국’ ‘미네르바 구속파문’ ‘디워, 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 ‘2007 대선 후보 토론’ ‘종교인 과세논란’ 등 수많은 논쟁들이 시청자를 TV 앞으로 바싹 끌어 당겼다. 

시원하게 지르는 논객 ‘토론 스타’로 부상

<100분토론>은 또 적지 않은 ‘토론 스타’를 배출했다. 500회에 출연한 인물들이 대표적.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를 인정사정없이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던 ‘진보 독설가’ 진중권씨는 이날 토론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군대 미필에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는 분을 국민들이 뽑아준 건 경제 때문이었는데 그 약속이 무너졌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건희 회장도 정부가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라고 했는데 국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재수강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어 청중의 폭소를 이끌었다.  

▲ MBC <100분 토론> 500회 특집 "오늘, 대한민국 희망을 말한다" 방송장면(위), 논객으로 출연한 배우 김여진(아래).ⓒ MBC 화면 캡쳐

‘군 가산점제 찬성’발언으로 일부 남성 네티즌 사이에서 ‘전 거성(巨星)’으로 추앙받기도 했던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 불신이 심해진 것은 여야 할 것 없이 지도자들이 원칙 없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했다.

배우 김여진은 이날 특집에서 현실적인 문제제기로 시청자의 호응을 얻어‘토론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한 학기에 750만 원까지 하는 대학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지적한 뒤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또 "젊은이들의 꿈이 대기업 입사 따위가 되는 건 반대"라며 “청소노동자로 일해도 경제력이 보장될 만큼 복지가 확충되어야 사람들이 꿈꾸고 상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청자 게시판 등에는‘개념 발언’이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오미영 교수는 저서 <토론 대 TV토론>에서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와 같은 물리적 공간을 대신할 공론장이 필요한데 TV토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500회를 넘어선 <100분토론>이 앞으로 더 분발해서 우리 사회의 ‘아고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많은 시청자들이 기대감을 안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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