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교육] ③ 대안

5점 만점에 3.1점과 2.8점. 현 수습기자 교육제도(사스마와리)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기자들이 매긴 점수다. 수우미양가로 치면 각각 ‘양’과 ‘가’에 해당할 정도로 수습기자 교육제도에 대한 평가는 낮다. 실제로 각 회사에서 인정받는 중견기자 상당수가 ‘사스마와리’를 경험하지 않았다며 수습기자 교육제도의 효용성이 낮다는 응답도 있었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어떤 식으로 수습기자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단비뉴스>는 주관식 설문조사를 통해 수습기자 교육제도의 대안에 대해 물어봤다. 총 105개 응답 중 무응답을 뺀 나머지 82개 답변을 정리했다.

기자 설문조사 “잠 안 재우기 등 악습 없애길”

가장 많이 등장한 의견은 ‘제도 개선’이다. 84개 답변 중 43개가 제도 개선 관련 답변이다. 제도 개선을 외친 이들의 주장을 짧게 요약하자면 ‘악습 없애기’다. 이들은 대체로 현행 수습기자 교육제도가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 악습을 없애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서술했다.

없어져야 할 악습 1순위는 ‘부족한 수면시간’이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4.5%가 매일 4시간 미만 수면을 취했다. 응답자들은 ‘잠을 6시간 이상 보장’하며 ‘잠을 더 자게 하고 일하는 시간에 더 효율적으로 교육’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굳이 잠을 안 재우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 밖의 의견으로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는 ‘하리꼬미’ 대신 출퇴근 시간 보장 ▲한 달 150~200만원 나오는 택시비 지원 ▲추가 근로수당과 취재비 지급 등이 제시됐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함께 인권 침해적 요소도 악습으로 지적됐다. 응답자들은 ‘이유 없이 화내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군대문화’와 ‘성희롱성 발언’, ‘선배들의 폭언과 폭설’ 등을 없애 수습기자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업무지시가 돼야지 학대를 위한 지시는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 밖의 의견으로는 ▲수습기자 기간 탐사보도 기사를 쓰게 하자 ▲교육•첨삭과 피드백에 집중하자 ▲불법적 정보 취득에 관한 명시적 금지 ▲수습기자와 1진 간 수습교육제도의 명확한 목적 공유 등이 제시됐다.
 

▲ 설문조사 대상자 105명 중 82명이 의미있는 응답을 내놓았다. 그중 53%가 악습을 없애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29%는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다. ⓒ 전광준

‘현행 유지’를 원하는 기자도 5명이 있었는데 ‘기타’ 다음으로 적었다. 이들은 대체로 ‘힘들지만 아직 필요하다’는 논조를 보였다. ‘기자생활이면 한 번씩 거쳐야’ 하며 ‘경찰•검찰 취재요령을 익히는 방식으로선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불합리한 면이 있어 보일 수 있으나 신입기자들 훈련과 교육을 위해 매우 필요’하며 ‘수습기자 취재활동을 보면 과거에 비해 완화돼 가고 있다’며 현 제도를 정당화하는 응답도 나왔다.

현행 수습기자 교육제도 말고 다른 대안을 제시한 기자는 24명이었다. 대안 제시는 크게 회사의 교육 책임을 늘려야 한다는 쪽과 언론재단 등 외부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회사 책임을 강조하는 측은 현재 수습기자 교육제도는 회사가 1진을 맡는 ‘주니어 기자’들에게 교육을 떠맡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1진이 기껏해야 2~3년 차인 상황에서 수습기자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1진의 역량에 따라 수습기자의 역량 또한 결정돼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좋은 1진을 만나면 배우는 게 많지만 바쁘거나 교육에 관심 없는 1진을 만나면 별다른 교육도 못 받는다. 신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키워낸다는 표준적 ‘교육’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언론사 아닌 회사들이 대개 그렇듯 회사측이 일정 부분 수습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교육 등 외부교육 강화를 주장한 응답자도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연간 12~13회, 한 회당 2주(70시간 내외)의 수습기자 기본교육을 실시한다. 주로 기자 정신과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으며 데이터 저널리즘, SNS 활용 취재 등에 관해서도 강의한다. 응답자들은 ‘언론재단교육의 강화’와 함께 ‘언론진흥재단 교육은 현 수습기자 교육제도를 100% 대체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언론재단교육을 공통으로 받고 다른 수습기자 교육 기간은 줄이는 방향으로 전개하자’고 주장했다.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대안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응답자들은 ‘회사가 돈, 시간, 사람 모두 더 투자해야 한다’며 ‘인력 확충이 근본적 대안’이고 ‘부족한 인력 상황에서 신규 채용 인력을 현업에 곧바로 투입시키기 위해 현재와 같은 압축적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몇몇 응답자들은 ‘채용, 취재 부분에서 같이 바뀌어야 한다’며 미국식 견습기자 제도나 일본식으로 중소 언론사 근무 후 경력기자로 입사하는 방식’의 의견을 내놓았다. 수습기자 교육을 3개월 동안 받았다는 한 통신사 기자도 공채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리꼬미나 사스마와리만 대체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은 미봉책이다. 회사 차원에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수습들을 제 역할 하도록 만드는 데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하리꼬미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공채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수습기자 교육제도 또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수습기자 교육제도와 공채 시스템이 어떤 연관이 있기에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미국과 일본식 단점만 본뜬 한국식 공채-교육 제도

공채 제도와 수습기자 교육제도의 관련성을 알기 전 먼저 미국과 일본 언론의 기자 채용 제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한국 언론의 수습기자 교육제도는 일본 언론의 공채 제도와 미국 언론의 회사 업무 적응 교육이 합쳐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에는 한국과 달리 정기적인 공개채용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경력 기자를 수시로 채용한다. 인력이 필요할 때 홈페이지나 지면 등에 공지해 들어온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판단하고 면접을 통해 채용하는 식이다. 미국 언론은 주로 경력 기자를 채용한다. AP와 같이 18개월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는 식이다.

지원자들은 대학 신문사나 지방 언론 혹은 저널리즘스쿨에 들어가 경력을 쌓고 기사를 작성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수시로 또는 지원 시기에 맞춰 대형 언론사에 보낸다. 언론사는 이를 보고 각 기자를 상대로 개별 채용계약을 한다. 경력 기자를 뽑기에 수습기자 교육이 따로 없다. 대신 회사 업무 적응을 위한 교육만 존재한다. 회사 차원의 기자 교육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기자들은 자발적으로 언론 관련 기관에서 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재교육을 받는다.

일본 언론의 채용방식은 한국 공채제도의 모체다. 일제강점기 때 물려받은 일본식 공채제도가 아직까지 통용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일본은 정기적으로 신입기자를 공개 채용한다. 정기적인 시험을 통해 기자를 공개채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일본도 상식, 외국어 성적, 논술, 토론, 면접 등을 봐 신입 기자를 채용한다. 경쟁률도 100:1이 넘는다.

일본 언론은 미국과 달리 경력직 대신 신입기자를 주로 뽑는다. 신입을 공채로 뽑기에 제 몫을 하는 기자로 만들기 위한 교육이 중요시된다. 입사하면 기자나 아나운서 등 직종에 상관없이 한 달간 직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후에는 지방 언론사로 내려 보낸다. 서울 중심으로 취재해 별다른 지국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전국에 지사가 있고 기자수만 3,000명에 이르는 거대 언론사이기에 가능한 구조다.

▲ 일본 NHK 전경. 일본 언론은 공채를 통해 신입을 뽑은 뒤 한 달쯤 신입교육을 실시한다. 기자는 반년, 1년 뒤 추가교육을 받고 2년차부터는 매년 직무교육을 받는다. ⓒ Flicker

기자들은 4~5년간 지방에서 근무하며 치열하게 경쟁해야 도쿄 등 중앙 지국으로 진출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입사 6개월, 1년 후에 추가교육을 받아야 한다. 2년차 이후에는 아예 매년 1회 직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실무능력이 없는 신입을 받는 대신 제대로 된 기자를 만들기 위한 교육이 잘 짜인 셈이다.

한국 언론의 공채 제도는 일본형이지만 그에 맞는 체계적 교육은 없다는 점에서 미국형에 가깝다. 당장 기사를 작성하거나 취재가 어려운 신입기자 위주로 뽑지만 일본과 같이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곧 ‘기자 실무와 상관없는 공채’란 일본 언론의 단점과 ‘회사 차원의 체계적 교육이 따로 없는’ 미국식의 특성을 각각 공채제도와 수습기자 교육으로 한국 언론이 활용하고 있다.

일본식 공채 제도를 통해 뽑힌 신입기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자원과 인력이 없기에 1진기자들에게 ‘떠맡겨’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행 수습기자 교육제도라 할 수 있다. 현행 수습기자 교육제도는 미국과 같이 ‘회사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란 측면도 가지고 있다. ‘회사별로 기자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측면은 인정한다’, ‘표준화 과정이다’, ‘실제 목적은 군기 잡기와 회사 사람 만들기’란 응답이 이를 대변하는 대표적 반응이다.

일본식 공채제도의 폐해는 언론사 입시를 준비하는 ‘언시생’들에게 돌아간다. 이화여대 이재경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공저 <한국 언론의 품격>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공채 준비생들이 1년 이상의 시간을 논술, 작문 등 효용가치가 크지 않은 시험 준비과정에 투자하는 현실에서 오는 사회적 낭비도 시급히 고쳐야 할 비효율적 관행”이라고 서술했다. 또한, 체계적이지 않은 수습교육의 폐해는 고스란히 기자 자신과 독자에게 돌아간다. 기자는 입사 후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발전의 기회를 놓치고 독자는 그로 인해 품질 높은 기사를 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언론사 아닌 저널리즘스쿨 등이 책임져야”

현행 수습기자 교육제도를 낳은 건 취재∙보도 등 실무와 관련 없는 논술∙작문 위주의 공채 시험이다. 실무와 관련 없는 인재를 뽑았는데 일본 언론과 같이 체계적으로 교육할 자원이 없어 단기간 교육을 실시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 침해라는 ‘악습’이다. 실제 ‘비인간적인 건 인정하나 단기간 교육으로는 최상’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많은 기자가 지적했듯이 현 시스템 아래서는 ‘악습’의 제거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언론사는 공채 제도 개선에 관한 고민은커녕 수습기자 교육제도 개선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부 응답자들의 반응이다. 한 응답자는 ‘사실 진지한 고민이나 반성 없이 과거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뿐’이라고 했으며 ‘문제를 정확이 인지하는 것이 우선인데 그조차도 게을리하는 회사가 태반이라고 들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획기적인 대안이 없기에 대부분 회사가 남겨두는 것’이라며 ‘80년대처럼 경찰서 문 뻥 차고 다니던 시절에나 통했던 교육제도를 2015년까지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는 게 한국 언론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응답도 존재했다.

이재경 교수는 언론사들이 공채 제도를 빨리 버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본식 모델을 버리고 상시 채용과 실효성 있는 교육을 전제로 한 미국식 모델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수습기자를 교육하는 일본식 모델로 바꿀 때의 비용과 인력을 비교적 규모가 작은 한국 언론사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 교수는 실효성 있는 교육을 위해 저널리즘스쿨 또한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널리즘스쿨이 늘어나야 언론사가 책임져야 할 교육을 저널리즘스쿨 등 교육기관이 책임지는 미국식 채용제도로 생태계적 전환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채용제도가 바뀌면 지금과 같은 수습기자 교육제도는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서구의 근대성과 합리성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인 언론의 자유에 힘입어 고양돼왔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는 인력 충원∙교육과정부터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측면이 상존해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언론사 수습기자 교육은 인권침해적 과정으로 악명 높다. <단비뉴스>는 수습기자 교육의 실태와 폐해를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편집: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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