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전용휘

▲ 전용휘
L백화점 사장실은 건물 꼭대기 층에 있다. 그런데 사장은 출근 때 엘리베이터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건물을 둘러보며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한다. 그것은 출근 때마다 직접 매장을 둘러보며 보완•개선해야 할 부분을 꼼꼼히 따지려는 의도가 아니다. 단지 사장은 최단거리로 인간을 수직으로 나르는 그 편리한 공간이 무서워 피하려는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김주원 이야기다. 그는 폐소공포증 환자다.

장소의 개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폐소공포증의 반대편에 광장공포증이 있다. 광장공포증을 가진 이들은 영화관이나 놀이동산처럼 사람이 밀집된 곳에서 어지러움, 흉부통증, 호흡곤란, 발한, 발열 등과 함께 극도의 불안 증상을 보인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폐소공포증과 광장공포증의 요인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환자들은 발을 딛고 있는 그 장소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포의 상황을 가정하곤 끝내 그것을 현실로 믿게 된다. 특정 공간은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감정이 발생한다. 그 감정들 중 하나가 공포심이다.

인간은 공간에 대한 공포 증상인 고소공포증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 한강대교에서 자살하려던 중년 사내가 소동 끝에 제 발로 내려왔다거나 번지 점프 때 비명소리를 지르는 원인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다. 고소공포증 역시 공간에 대한 인간의 상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추락하는 아득함에 대한 상상. 몸이 떨어져 지면에 부딪치면 다치거나 죽거나......

한국 사회는 추락 위험이 있는 사회다. 우리 사회에는 건설현장에서 볼 수 있는 푸른색 추락 방지 안전망이 거의 없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도 지금까지 14명이나 죽었다. 남의 사건이 언제 나의 사건이 될지 모른다. 상상 속에서 내 것, 네 것 할 것 없는 추락한 육신들과 그 주위로 잔인하게 흩날린 잔여물들은 어젯밤 꿈보다 더 생생하다. 두려움에 직면한 우리네 사는 모습은 추락 방지에 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청년들은 스스로 꿈을 갖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미 거대하고 안전한 기업조직의 일원이 될까 궁리한다. 신혼 부부들에게 아이는 사치가 된 지 오래다. 아이들은 미래의 행복이라는 허상을 잡기 위해 뛰어놀 현재의 행복마저 차압당한다.

아찔한 높이의 대교 건설 현장인부에게 두렵지 않냐고 물어본다. 70~80년대 산업역군들은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더 이상 희생이 미덕이 아닌 시대라 조금 더 솔직해졌다. 그는 몇 초를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한다. “무섭죠, 근데 처음 일 시작했을 때보단 낫습니다. 그 때처럼 무서우면 이 일 못해요.” 이 교각에서 저 교각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정해진 와이어에 안전고리를 옮겨 거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나마 의지할 것이 있기에 떨어질 걱정이 덜하단다. 그의 상상 속에서 안전고리는 그렇게 작용한다.

추락이 두렵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이 그리 높진 않지만, 그런데도 떨어진다면 다치고 아플 것이 확실하고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넘어지지 않는 그런 단단함에 의지하고 싶어한다. 애초엔 다들 낡은 질서에 부딪치며 삶의 신명을 풀어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을 터이다. 이제는 그것이 차분해져서 그저 법과 도덕에 거스르지 않으며 조용히 살기로 했다. 그러면 고도는 낮아질 텐데 추락의 두려움은 매한가지다. 속도가 문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빨리빨리 문화’에서 헤어나지 못해 속전속결이 곧 효율로 평가되는 일생을 살아간다. 안전을 확보할 만한 공간과 시간은 늘 부족하다. 국가가 공정을 관리한다는 4대강 공사현장에서도 14명이나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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