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설정 공감 어려운 드라마 <49일>의 출발
[지난주 TV를 보니: 3.14~3.20]

▲ SBS 드라마 <49일> 포스터. ⓒ SBS홈페이지

색다른 드라마 한 편이 선을 보였다. SBS 수목 드라마 <49일>. 이 드라마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깃든다는 ‘빙의’를 소재로 삼고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여자의 몸에,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또 다른 여자의 영혼이 빙의되는 설정이다.

<전설의 고향>이나 <사랑과 영혼(Ghost)>을 통해 그 정도 생과 사의 경계쯤은 우리 시청자들에게 익숙할지 모른다. 하지만 TV의 현대물 드라마 중에 이런 소재는 그리 흔치 않았다. 지난 16일 첫 방송 시청률은 9.6%(AGB닐슨미디어리서치, 수도권 기준), 드라마 전개 방향이 어느 정도 드러난 2회분은 10.8%로 나쁘지 않은 출발을 보였다.  

스케줄 엉킨 죽음, ‘순도 100% 눈물’이 회생 조건
  
여주인공 신지현(남규리 분)은 결혼을 며칠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다. 지현은 죽을 때가 아닌데 죽음을 맞았다. 정해진 대로 진행되어야 하는 인간 생사의 규칙에서 벗어난 경우다. 드라마에서는 이를 ‘엉켜버린 스케줄’로 규정한다. 그 스케줄을 관리하는 현대판 저승사자 ‘스케줄러(정일우 분)’는 그녀에게 “49일 안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으로부터 ‘순도 100% 눈물’을 얻으면 회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 <49일>의 한 장면. ⓒ SBS홈페이지

그래서 지현은 남의 몸을 빌리기로 하는데, 그 대상은 연인의 죽은 이후 무생물처럼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는 여자 송이경(이요원 분)이다. 지현은 송이경의 눈으로 자기 주변 사람들을 들여다본다. ‘세 사람쯤이야!’라고 자신했던 그녀는 살아 있을 때 몰랐던 주변 사람들의 진심과 자신을 둘러싼 잔인한 비밀들을 알게 된다.

신지현에게 주어진 49일은 불교에서 말하는 ‘49재’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상태를 불교에서는 중유(中有)라고 하는데 이 기간이 바로 49일이다. 죽은 이의 가족은 그가 과거의 업을 씻고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49재를 올린다. <49일>은 이 ‘생과 사’의 문제와 우리의 삶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지금 죽음을 취소시킬 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적어도 셋 정도는 되는가라고.

빠른 전개와 흥미진진한 반전엔 눈길
 
1, 2회 방영분에서 <49일>은 거침없이 신지현의 삶의 이면을 드러내며 충격적인 반전을 시도한다. ‘순도 100%의 눈물’로 상징되는 ‘가치 있는 삶’이란 화두를 우리 앞에 들이대는 이야기 전개방식과 속도감이 만만찮다. 빙의된 상태에서 생전엔 알지 못했던 진실들을 목도하고 여주인공은 충격을 받는다. 시청자들도 그녀의 감정에 고스란히 빨려 들었을 것이다. 재현과 편집 등의 기법도 이를 위해 적절히 사용됐다. 약혼자 강민호(배수빈 분)와 절친 신인정(서지혜 분)의 밀회 장면을 초반인 2회에 곧바로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2회 분의 드라마를 보는 동안 여주인공의 분노에 공감은 하되 왜 여주인공이 꼭 회생해야 하는지는 잘 납득되지 않는다. 그 의문은 곧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다시 살아나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하기때문에, 그녀가 꼭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간절함도 생겨나지 않는다.

 ▲ 영화 <슈렉>의 한 장면. ⓒ 드림웍스 홈페이지

<사랑과 영혼>이나 <시크릿 가든>, <슈렉>이나 <미녀와 야수>를 볼 때 그 설정 자체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던가? 피오나 공주가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오도록 관객들은 슈렉의 키스를 다함께 기다렸다. 야수의 마법을 풀어줄 미녀의 진정한 사랑도 역시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지현이 회생할 수 있는 ‘순도 100%의 눈물’을 고대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냥 죽을 시간이 안 된 사람이 죽었으니 억울한 게 아니냐고? 꼬여버린 ‘스케줄’에서 회생의 의미를 찾으라고? 그 ‘억울함’ 만으로는 그녀가 다시 살아나야한다는 필연성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시청자가 고개 끄덕일 만한 이야기 전개 기대

비현실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주 비현실적 설정’에 차라리 우리는 쉽게 빠져들 수 있는지 모른다. 따지기 어려운 영역이니 말이다. 그런데 <49일>의 죽음과 환생 설정은 우리의 주변 이야기에 무리한 상상력을 덧댄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순간적인 사고 때문에 생과 사가 완전히 엇갈리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49일> 속의 비현실은 우리의 실제 현실에 가깝다. 뇌사라는 의학 현상도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 SBS 드라마 <49일> 주인공들. ⓒ SBS홈페이지

현실과 비현실의 거리가 모호한 판타지는 우리를 혼란하게 만든다. <49일>의 환생 설정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그 무엇이 있다. 판타지가 본래 비현실적인 설정과 전제 아래 시작된다 하더라도,  거기 몰입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장치’는 갖춰져야 한다.  <49일>의 1,2회는 판타지의 스토리 설정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시청자들은 주인공 지현이 세 사람에게서 ‘순도 100%의 눈물’을 얻는 감동적인 순간을 기다릴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설득력 있고, 근거가 있어야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다.  앞으로 이어질 후속편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가 담겨 나올지 기다려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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