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남다리 대장간

▲ 설용술 장인의 손은 휘고 데이고 굳어 있다. 손은 삶의 궤적을 드러낸다. 그는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목장갑을 벗지 않는다. ⓒ 하상윤

도구를 사용하는 손은 인류와 다른 종을 구분 짓는다. 그런 도구를 만드는 주체 또한 손이다. 밥을 먹고 힘을 내는 ‘밥심’의 근원이 농부의 노력(勞力)이라면 농기구의 효용은 대장장이의 완력(腕力)과 수완(手腕)에서 나온 것이다. 굽은 낫과 괭이, 날 선 칼, 갈라진 쇠스랑, 어디 하나 대장장이의 힘과 솜씨가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솜씨는 손에서 손으로 전수된다. 도구의 탄생에서 손은 곧 어머니다.

지금 우리는 수(手)공업이라는 말조차 어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손은 더 이상 도구의 유일한 근원이 아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기계의 효율성은 모두의 수고를 덜어주었지만, 불안감이 그 자리를 메웠다. 불안은 ‘어머니를 잊은 존재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이치에서 비롯됐으리라. 세월의 속절없음 앞에서도 한 가지에만 얽매이는 것은 모두 어머니를 닮았다. 척박한 현실과 상관없이 고집스레 ‘낳는 행위’를 이어온 장인의 손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이 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 설 장인이 도끼날을 벼리고 있다. 불똥이 얼굴로 튀었지만 그는 줄곧 도끼를 응시한다. ⓒ 하상윤

조선 후기 관영수공업체계가 붕괴하면서 야장(冶匠)들은 단조 철기를 제작하는 각 지역 대장간으로 옮겨간다. 야장은 철기 제작과 관련된 기술 중에서도 단조를 전문으로 하는 장인을 말한다. 단조는 금속재료를 기계적으로 두들기는 작업 유형이다. 20세기 초반, 서양 근대 기술을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으로 단조기, 기계식 풀무 등 새로운 생산도구가 대장간으로 도입되어 협업에 의한 작업 방식이 와해했다. 그 결과로 대장 1인에 의한 생산 방식이 정착했다. 중앙에 앉아 달궈진 쇠를 집게로 잡고 망치로 두들기는 야장과 양 옆의 메질꾼, 뒤쪽의 풀무꾼이 함께 어우러진 전통 대장간의 모습은 김득신의 풍속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산업사회에서 철 생산은 국가적 산업으로 관리·육성된 반면, 전통 장인들의 철기 제작 수공예 기술은 도태됐다. 농기구 제작이 중심인 이들의 작업은 농경사회에서 큰 몫을 담당해왔으면서도 쉽게 외면당했다. 전통 대장간의 장인들은 값싼 중국산 농기구의 범람과 현대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꾸준히 지역 농촌사회를 위해 일해왔다. 주조된 중국산 농기구가 수입되지만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농기구 제작과 수선은 여전히 현지 대장간의 몫이다.

어느 틈에 70대 이상이 된 장인들이 사라지면 더는 이 땅에서 전통 철기 문화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들의 멸종을 걱정하는 것은 지역 농민뿐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대다수 도시인은 대장간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연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라지는 자리들이 남기는 여운이 곧 역사이고 인간이 문화를 이어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야장들 중 설용술(83) 옹에게 주목했던 이유는 하나다. ‘고집’이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그의 대장간에는 더 이상 드나드는 손님도 배우고자 찾아오는 후계자도 없다. “내 대에서 끊어질 것 같다”는 야장의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지난 2년 사이 그에게 3차례 뇌졸중이 찾아왔다. 후유증으로 많은 기억의 조각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매주 장날이면 ‘남다리 대장간’에서는 그가 만든 도구가 나란히 나와 데려갈 주인을 기다린다. 손이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하고 보여주고 증명하는 셈이다.

현재는 수익도 없는 이 일을 60년이 넘도록 놓지 않고 있는 장인의 존재는 현 세태와 딴판이다. 대장간에서 목격한 유통기한 지난 달력, 죽은 벽시계, 잃어버린 청력은 여전히 과거를 사는 장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보이는 극단적 대조와 손에 새겨진 산고(産苦)는 말한다. 14살부터 쇠메를 잡았던 소년의 손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에 어떻게 변해갔는가? 휘고, 데이고, 굳어버린 대장장이의 손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손이 낳은 것은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 설 장인이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힘에 부쳐 타다 걷다를 반복한다. 그의 자전거 바퀴에도 공기가 빠져있다. ⓒ 하상윤
▲ 온종일 봄비가 땅을 적셨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야장 설용술 옹이 운영하는 남다리 대장간은 보은군 죽전리, 보청천 합수부 둔치 아래 있다. ⓒ 하상윤
▲ 대장간에서 4월은 대목이다. 그러나 이날 수선 주문이 두 건 있었을 뿐, 장인은 종일 어떤 연장도 새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 하상윤
▲ 남다리 대장간은 장날(1일·6일장)에 문을 연다. 농번기의 시작을 알리는 4월인데도 농기구를 다루는 대장간의 화덕이 써늘하다. ⓒ 하상윤
▲ 설 장인은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청력이 약하다. 그저 손님의 입 모양으로 말뜻을 짐작한다. 한 고객이 수선비용을 낼 수 없다며 항의하자 어이없어 하고 있다. ⓒ 하상윤
▲ 둑방 아래 자리한 남다리 대장간 앞으로는 좀처럼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다. 장인은 의자에 앉아 인기척이 있을 때마다 위를 올려다본다. ⓒ 하상윤
▲ 텅텅대는 단조기의 요란한 소리에 금세 귀가 먹먹해진다. 청력이 약한 장인은 수화기를 귀에 밀착하고 "여보시요"만 반복한다. ⓒ 하상윤
▲ 팔순을 넘긴 장인은 평생 대장간을 벗어난 적이 없다. 지난 5월 15일에도 문을 열었지만 오후 내내 한 명도 그를 찾지 않았다. ⓒ 하상윤
▲ 장인이 괭이를 만들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기계주조로 대량생산된 값싼 농기구가 보급되었지만, 단조방식으로만 제작 가능한 도구가 있다. ⓒ 하상윤
▲ 기계가 장인의 노동을 대신한다 해도 결국 질 좋은 도구를 제작하는 것은 뛰어난 장인의 수공(手工)으로만 가능하다. 장인의 얼굴 주름은 쇠메를 내리치는 결정적 순간의 합이다. ⓒ 하상윤
▲ 대장간에서 이루어지는 철기 제작 공정의 대부분이 고된 육체노동이다. 쇠메질 대여섯 번에 장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는 모루에 기대어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 하상윤
▲ 종일 봄비가 내리던 날, 장인은 처마 밑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의자는 기울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 하상윤
▲ 부인 구광래(76)씨가 대장간 입구에 앉아 장인과 우유를 나눠 마시고 있다. 구씨도 20여년 전 청각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보청기가 없으면 둘은 대화가 어렵다. ⓒ 하상윤
▲ 장인이 퇴근하기 전 뒷문을 내다보고 있다. 문 밖 텃밭에는 파 삼사십 포기가 자라고 있다. 울타리 밖으로 통하는 길은 없다. ⓒ 하상윤
▲ 망가진 자물쇠는 잡아당기면 열리지만 그래도 귀가할 때는 대장간 문을 잠근다. ⓒ 하상윤
▲ 장인이 남다리를 건너고 있다. 남다리를 넘었더니 시장이 나왔고 사람이 살고 있었다. ⓒ 하상윤

* 사진을 찍고 글을 쓴 하상윤은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으로 고려대 재학중 교내 커뮤니케이션팀에서 학생사진기자로 활동했다. 고려대 교내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한겨레신문 ‘사진마을’에서 ‘이달의 사진가’로 뽑혀 사진이 실리고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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