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남다리 대장간
도구를 사용하는 손은 인류와 다른 종을 구분 짓는다. 그런 도구를 만드는 주체 또한 손이다. 밥을 먹고 힘을 내는 ‘밥심’의 근원이 농부의 노력(勞力)이라면 농기구의 효용은 대장장이의 완력(腕力)과 수완(手腕)에서 나온 것이다. 굽은 낫과 괭이, 날 선 칼, 갈라진 쇠스랑, 어디 하나 대장장이의 힘과 솜씨가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솜씨는 손에서 손으로 전수된다. 도구의 탄생에서 손은 곧 어머니다.
지금 우리는 수(手)공업이라는 말조차 어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손은 더 이상 도구의 유일한 근원이 아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기계의 효율성은 모두의 수고를 덜어주었지만, 불안감이 그 자리를 메웠다. 불안은 ‘어머니를 잊은 존재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이치에서 비롯됐으리라. 세월의 속절없음 앞에서도 한 가지에만 얽매이는 것은 모두 어머니를 닮았다. 척박한 현실과 상관없이 고집스레 ‘낳는 행위’를 이어온 장인의 손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이 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조선 후기 관영수공업체계가 붕괴하면서 야장(冶匠)들은 단조 철기를 제작하는 각 지역 대장간으로 옮겨간다. 야장은 철기 제작과 관련된 기술 중에서도 단조를 전문으로 하는 장인을 말한다. 단조는 금속재료를 기계적으로 두들기는 작업 유형이다. 20세기 초반, 서양 근대 기술을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으로 단조기, 기계식 풀무 등 새로운 생산도구가 대장간으로 도입되어 협업에 의한 작업 방식이 와해했다. 그 결과로 대장 1인에 의한 생산 방식이 정착했다. 중앙에 앉아 달궈진 쇠를 집게로 잡고 망치로 두들기는 야장과 양 옆의 메질꾼, 뒤쪽의 풀무꾼이 함께 어우러진 전통 대장간의 모습은 김득신의 풍속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산업사회에서 철 생산은 국가적 산업으로 관리·육성된 반면, 전통 장인들의 철기 제작 수공예 기술은 도태됐다. 농기구 제작이 중심인 이들의 작업은 농경사회에서 큰 몫을 담당해왔으면서도 쉽게 외면당했다. 전통 대장간의 장인들은 값싼 중국산 농기구의 범람과 현대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꾸준히 지역 농촌사회를 위해 일해왔다. 주조된 중국산 농기구가 수입되지만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농기구 제작과 수선은 여전히 현지 대장간의 몫이다.
어느 틈에 70대 이상이 된 장인들이 사라지면 더는 이 땅에서 전통 철기 문화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들의 멸종을 걱정하는 것은 지역 농민뿐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대다수 도시인은 대장간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연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라지는 자리들이 남기는 여운이 곧 역사이고 인간이 문화를 이어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야장들 중 설용술(83) 옹에게 주목했던 이유는 하나다. ‘고집’이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그의 대장간에는 더 이상 드나드는 손님도 배우고자 찾아오는 후계자도 없다. “내 대에서 끊어질 것 같다”는 야장의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지난 2년 사이 그에게 3차례 뇌졸중이 찾아왔다. 후유증으로 많은 기억의 조각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매주 장날이면 ‘남다리 대장간’에서는 그가 만든 도구가 나란히 나와 데려갈 주인을 기다린다. 손이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하고 보여주고 증명하는 셈이다.
현재는 수익도 없는 이 일을 60년이 넘도록 놓지 않고 있는 장인의 존재는 현 세태와 딴판이다. 대장간에서 목격한 유통기한 지난 달력, 죽은 벽시계, 잃어버린 청력은 여전히 과거를 사는 장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보이는 극단적 대조와 손에 새겨진 산고(産苦)는 말한다. 14살부터 쇠메를 잡았던 소년의 손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에 어떻게 변해갔는가? 휘고, 데이고, 굳어버린 대장장이의 손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손이 낳은 것은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 사진을 찍고 글을 쓴 하상윤은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으로 고려대 재학중 교내 커뮤니케이션팀에서 학생사진기자로 활동했다. 고려대 교내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한겨레신문 ‘사진마을’에서 ‘이달의 사진가’로 뽑혀 사진이 실리고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한겨레> ‘이달의 사진가’ 수상작 ‘하루 중에’ 바로가기
단비뉴스 지역농촌팀 하상윤입니다.
항상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