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문사철특강] 장승구 교수
주제① 선비문화의 재인식

선과 악의 유교적 이분법, 대화 아닌 투쟁 부추겨

“<대물> 드라마에서처럼 한국인들은 고현정(서혜림 역)같은 착한 사람이 대통령 돼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선과 악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장승구 세명대 교수(동양철학)는 “세상을 선과 악, 이익과 불이익, 강함과 약함 등 다양한 도식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선과 악의 도덕적 도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여전히 권선징악의 교훈이 담긴 드라마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양사상의 이해> <정약용과 실천의 철학>을 저술하는 등 동양철학에 밝은 장승구 교수는 “한국 선비문화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며 “취하고 버릴 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힘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연 중인 장승구 교수.  ⓒ 정혜아

“내 마음 속에 군자와 소인이 모두 있어요. 우리나라 유교가 세상을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투쟁을 일으킵니다.”

장 교수는 “유교에서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어 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며 “소인은 군자에게 설득 받는 위치가 되기 때문에 대화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군자와 소인, 선과 악이란 도식에서는 대화가 아닌 투쟁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힘들 것이라고 장 교수는 내다봤다.

다수를 소외층으로 만든 과도한 권력지향성

그는 우리 유교의 과도한 권력지향성도 한계로 지적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권력을 갖지 못한 다수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학자들이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정치권의 유혹을 받는다”며 “한 벼슬 해야만 존중해주는 관존민비 사상이 권력지향적 풍조를 낳았다”고 꼬집었다.

“권력은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수 권력층이 아닌 다수는 불행해집니다. 다수가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권력을 숭배하는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인생 패배자로 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장 교수는 유교의 이상지향적 사고도 실용적 사고를 부족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념만 추구하다보니 실용성이 약한 게 치명적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실학이 나오게 됐죠. 선비들은 체면 때문에 일하지 않고 교양만 내세웠는데, 조선이 가난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경제와 군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념만 강해서 침략에 무기력하게 당한 것도 유교문화 코드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가치에 대한 존중이 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동기를 중시하는 심정윤리는 발달했으나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윤리가 약한 것도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교문화의 유산”이라고 진단했다.

부모 3년상 치르겠다고 의병장 사퇴

“한말 한 의병장은 의병을 모아 서울로 진격해야 하는 총책임자인데도 부모상을 당하자 3년상 치르는 것을 자식의 도리로 여겼어요. 결국 그 의병장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넘기고 3년상을 치르러 떠났습니다.”

물론 유교문화가 우리사회에 부정적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유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유교를 아직도 지고한 가치로서 되살려야 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역시 유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반면 우리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지요. 유교가 반폭력 평화주의, 생명존중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것도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토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3세계 국가에 비해 민주주의가 빠르게 정착했죠.”

장 교수는 유교문화에 다양한 빛과 힘이 있다고 말했다. 지식과 교육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는데, 현재 지식산업의 기반을 이룬 것은 유교의 영향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한자를 받아들임으로써 복잡한 개념적 사고의 틀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폭력을 싫어하고, 말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통이 있는 것도 유교적 틀”이라고 말했다. 최고 수준의 문화에 대한 열망, 가족 가치를 중시하는 것 등도 모두 유교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  장승구 교수가 학생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정혜아

한·중·일을 전혀 다른 나라로 만든 유교

같은 유교를 받아들이더라도 한·중·일 세 나라의 유교 모습은 매우 다르다. 장 교수는 중국의 유상(儒商)을 들어 비교했다. 유상이란 상업에 종사하는 선비를 일컫는다. 중국의 유교에는 상업과 결부된 유상이 많이 나타났다. 그만큼 유교를 다양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17세기 일본에서 유학이 발달하면서 일본은 충성을 중시하는 무사도를 정립하게 된다. 상도덕에도 유교가 영향을 주게 된다.

장 교수는 “일본의 유교는 상도덕이나 무사도에 영향을 주고, 중국도 유교가 여러 사상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며 상업과 함께 다양하게 발달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만 상업을 천하게 여겨 예학과 관련한 철학이 유독 발달했다”고 말했다.

“중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상업과 유교가 따로 노는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유교가 현실성 있게 발달하면서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는데 우리나라는 예와 관련한 유교가 발달했어요. 사실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재산분배도 남녀에게 같이 하고, 제사도 같이 모시며 우리 전통을 따랐는데, 예학이 정립된 조선 중기 이후는 모든 것이 유교식으로 바뀌었어요.”

세상은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매우 다르다. 학교에서 보는 세상, 시장에서 보는 세상, 전쟁터에서 보는 세상, 정치판에서 보는 세상의 모습이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서 세상을 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법가는 정치판에서, 공자는 학교에서, 관자는 시장에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 등이 완역한 <관자>는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 곧 관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관자는 춘추전국시대의 경세가로, 유교가 현실감이 없다고 보고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하여 정치‧경제‧사회를 이끌 방법론을 제시했다. 

▲  유교 독점적 사고를 경계하면서도 좋은 전통은 살려야 한다고 말하는 장승구 교수.  ⓒ 정혜아

“공자의 유교사상은 학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기에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나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관자는 현실정치를 다루기 때문에 현실성이 매우 높죠. 우리나라에서는 관자를 배척한 채 논어를 열심히 읽혔습니다. 사실 중국에서 유교는 여러 사상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반면 조선에서는 유교가 독점적 위치에 있어요. 한국에는 오랜 기간 주자학만이 지배해온 거죠. 우리나라 사상의 컬러가 단순해진 이유입니다.”

유교에는 민주주의 자양분 많아

그러나 장 교수는 우리 유교문화에는 걷어내야 할 어두운 그늘도 많지만 오늘에 되살려야 할 전통도 많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덮여있는 유교문화의 긍정적‧부정적 요소들을 분명히 드러내고 인식할 때 한계의 극복이나 전통의 계승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원래 유교는 교육과 대화를 중시하고 문치주의를 표방할 뿐 아니라 인간생명을 존중하고 민본주의를 강조하는 등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와주는 자양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유교는 방대한 복합체이고 주자학과 달리 양명학에는 인간을 평등하게 보는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교는 아직도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사상적 바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교는 아직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미완성품입니다.”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학기 <문사철특강>은 도종환, 김진석, 한홍구, 이권우, 이주헌, 장승구 선생님이 맡았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를, 강의를 함께 들은 담당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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