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발생한 허원근 일병의 사망을 두고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부를 확정짓지 못한 사건

1984년 4월 2일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원근 일병은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가슴과 머리에 3발을 쏴서 자살하기 어려운 점, 현장 사진에 피가 거의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타살된 뒤 시신이 옮겨졌다는 의혹이 짙었지만 군은 자살로 결론 냈다. 이후 이 사건의 결론은 여러 차례 뒤집혔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당시 중대원 전모씨가 “술에 취한 하사관이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내무반에서 허 일병을 쏴서 죽였다”고 진술한 것이 근거였다. 하지만 의문사위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부터 특별조사단을 꾸린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전씨를 제외한 다른 중대원 모두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내밀었다. 그러나 2004년 2기 의문사위가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고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9월 10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31년간 고통을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허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타살인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타살이라고 볼 만한 증거와 타살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만으로는 타살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허 일병이 스스로 소총 3발을 발사해 자살했다고 단정하고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수집할 수 있는 현장의 단서에 대한 군 수사기관의 조사와 부검 등이 철저하고 면밀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로써 국가기관에서 3번의 자살, 3번의 타살 판정을 받은 ‘허원근 일병 사건’이 자살ㆍ타살 여부를 확정하지 못하고 미궁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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