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문사철특강> 이주헌 미술평론가
주제① 미술로 보는 창의력의 세계

착시는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축복

▲ 동심원들이 나선처럼 보이는 착시그림.
“이 그림을 잘 보세요. 원이 어떻게 보입니까? 나선으로 보이죠? 자, 그럼 손가락을 그림에 대고 원 하나를 따라 쭉 그려보세요. 어때요? 빙글빙글 돌아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원이 그려지죠? 동심원들을 모아놓은 그림입니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흥미로운 착시그림을 보여주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이 그림이 그냥 원이 아니라 나선으로 보이는 것은 배경의 간섭효과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배경의 띠들은 휘어지면서 뻗어 나온다. 이에 따라 원도 원심력의 힘을 받아 계속 뻗어 나온다는 착각을 하게 돼 나선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 눈은 이처럼 한계가 있어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죠.” 
             
눈은 객관적이고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한계가 오히려 축복이라고 그는 말했다.

“미술이라는 예술은 기본적으로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입니다. 착시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미술이 탄생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인간의 시각적 한계는 저주가 아니죠. 사람에게 창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축복입니다.”

   ▲ 미술에 나타난 창의력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이주헌 미술평론가. ⓒ이태희

“미술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예술? 그림?”

학생들은 침묵했다. 이 질문에 대해 특이한 답변을 한 사람이 있단다. 피카소. 그가 살았던 시대의 화가들은 신이 완성한 자연질서를 완벽하게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을 예술가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피카소는 이러한 사명을 어기고 자기 나름의 질서를 캔버스 위에 새롭게 창조했다. 그의 전위적인 그림을 본 한 관객은 이상한 그림이라고 화를 내면서 피카소를 찾아가 '미술이 뭐냐'고 물었다.

“미술은 돈입니다.”

피카소는 ‘미술이 돈’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마오쩌둥이 한 말과 굉장히 유사하다. 그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실제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허울 좋은 명분이나 윤리보다 무력, 군사력, 정치력과 같은 하드파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이 바로 돈이다. 피카소는 예술이라는 근엄한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미술은 곧 돈이라고 얘기함으로써 미술의 힘을 긍정한 것이다.

   ▲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피카소는 ‘미술은 돈’이라고 얘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주헌 평론가는 피카소가 20대 초반에 그린 <파이프를 든 소년>을 보여주며 가격이 얼마였는지 짐작해보라고 했다. 자그마치 1억 400만 달러. 요즘 환율로 따지면 1,200억원이다. 피카소가 입체파 화법을 개발해 대단한 명성을 얻기 전에 그린 것인데도 이처럼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이다. 학생들은 돈의 액수를 듣고 ‘미술이 돈’이라는 말에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피카소만큼 특이한 답변을 한 사람이 또 있다.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 선생이다. 그는 “예술은 사기 중에도 고등 사기”라고 말했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창조적인 업적은 사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상식의 틀에 갇혀서 보면 창조적인 세계가 안 보이고 사기처럼 보이죠. 그래서 미술은 창의력의 세계라고 할 수 있어요.”
  
놀이 + 몰입 + 연상 → 창조

그는 창조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다.

 “미래를 새로이 개척하는 건 우리를 아주 행복하게 해줍니다. 소유라는 건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한 사람을 위한 것이죠. 그런데 창조는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본인만 행복한 게 아니라 남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남들도 행복하고 이를 통해 나는 더 행복해지니 소유하는 것보다 창조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죠.”

창조를 잘 하려면 몰입해야 한다. 그는 사람이 깊은 몰입에 빠질 때 가장 행복하며 그때 창의력이 발산된다고 말했다. 몰입의 시간을 가지면 의식하는 자신을 떨쳐버릴 수 있다. 잃어버렸던 본인의 기질과 성질을 만날 수 있고, 자신의 근원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남과 달라지기 위해 취해야 할 좋은 방법은 ‘나다워지는 것’이기에,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다 오리지널하게 되면 저절로 창조적인 사람이 된다.

“여러분은 놀이를 잘 즐기고 있나요? 사람은 놀 때 가장 몰입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세요. 미친 듯이 뛰어 놀지 않습니까? 이럴 때 사람은 진짜 완전한 인간이고, 영혼과 찰나가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객관과 주관, 개인과 우주 등 모든 게 통일되어 있어서죠.”

그는 열심히 즐기고 놀아야 인간의 잠재적인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예술을 창조한 화가의 그림이 있다. 김재홍의 작품, <시집가는 날>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절벽을 그린 풍경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을 90도 돌려보면 전통혼례의 신부를 연상하게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이 작품은 동강이 수몰된다는 말을 듣고 가서 그린 그림이다. 무조건적 개발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한 방법으로 보여주는 창의성이 돋보인다.

▲ 김재홍의 <시집가는 날>(왼쪽), 이 그림을 90도 돌리면 신부의 모습이 보인다(오른쪽).

“창조란 다른 게 아닙니다. 연상과 발견입니다.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연상력이 뛰어납니다. 인간은 언어적으로 사유할 뿐 아니라 이미지에 의존해서도 사유하기 때문이죠. 이미지는 시각적인 것 뿐 아니라 청각적인 것, 촉각적인 것 등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가 있어요. 낯선 냄새나 처음 만져보는 표면 등의 감각 경험을 하면 무수한 이미지가 쌓이고 엄청난 정보가 됩니다.”

피카소 작품, <개코원숭이 어미와 새끼>를 보면 연상과 발견에 의한 창조가 돋보인다. 어미원숭이 머리는 장난감 자동차로, 목은 샐러드 보울, 몸은 항아리, 꼬리는 셔터문 손잡이 등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 피카소의 <개코원숭이 어미와 새끼>.

          ▲ 최정현의 <네티즌1>.

 

 

 

 

 

 

 

 

 

최정현의 <네티즌1> 또한 이런 기발한 연상력이 작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터넷 세상을 풍자한 작품으로 쥐들이 뱀을 잡아 먹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만들 때 썼던 재료가 기막히다. 쥐를 마우스로 만들고, 뱀은 키보드로 만들었다. 키보드의 배열 패턴과 뱀의 비늘 패턴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이 이미지 매칭이다. 이처럼 연상은 논리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이미지가 유사하거나 상황 또는 사건이 유사한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파괴는 곧 창조

마크 퀸의 <self>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함과 놀라움을 주는 작품이다.

“자화상을 영어로 하면 뭐죠? ‘self-portrait’죠. 하지만 작가는 작품명을 <self>로 지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재료의 문제였어요. 자신의 피를 5년간 모아서 만들었죠. 모은 피를 냉동처리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기존의 예술 관념을 파괴하고 창조한 거죠.”
 

       ▲ 마크 퀸의 <self>.
이 작품은 냉동고 안에 보관되고 전시된다. '피' 같은 액체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깬 창조적 작품이다.

만조니의 <Merda d'artista>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재료로 만든 작품이다. 바로 예술가의 똥을 통조림에 넣은 것이다. 만조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화장실을 갈 때마다 저울을 들고 가서 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똥을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했지만 작품이 발표되자 다 팔렸다. 똥 30그램  들어있는 통조림은 금 30그램 가격이었다.

“우리는 파괴가 흔히 무질서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파괴에도 반드시 질서가 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창조됐나를 생각해 보세요. 그 파괴의 법칙이 무질서로 끝났나요? 창조의 법칙이 됐죠!”

그랬다. 파괴의 결 안에는 창조의 결이 있었다. 파괴가 곧 창조이고 창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파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놀이, 몰입, 연상, 그리고 파괴와 같은 창조적인 활동이 우리의 답답한 교육과 사회에서는 먼 일처럼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예술인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미술이 더욱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언론인의 책임이 무겁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는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 ⓒ이태희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문사철특강>은 도종환, 김진석, 한홍구, 이권우, 이주헌, 장승구 선생님이 맡았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를, 강의를 함께 들은 담당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동안 <단비뉴스>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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