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 등에 근본대책 없이 ‘대출 쓰라’는 정부
[두런두런경제] 홍기빈 제정임의 경제뉴스 따라잡기

홍기빈(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정부가 전세난 해소를 위해서 지난 1월 13일과 2월 11일에 잇달아 대책을 내놓았는데, 시장에선 별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최근 두 차례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세값 상승세가 23개월째 지속됐는데, 우선은 전세대책이 너무 늦게 나와 실기한 측면 있는데다 내용도 문제의 핵심을 비껴갔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1.13과 2.11대책은 재개발재건축 분산을 통한 이주수요 조절, 민간임대사업자 세제지원을 통한 임대공급 확대 등과 함께 전세자금 대출을 늘려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중 민간임대주택공급을 늘리는 방안 등은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인데다 임대로 돌릴 수 있는 미분양아파트가 중대형 위주라 서민층 전세난해소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대출 지원은 결국 뛰는 전세값을 빚으로 막으라는 얘기여서 사실상 서민가계의 부담을 더 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대책은 여윳돈 있는 사람에겐 ‘이 기회에 집 많이 사서 임대사업 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고, 세입자엔 ‘빚내서 전세값 올려주라’는 신호를 보내서 전세값과 집값의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가계부채 늘어나는 현실 외면한 전세대책

홍: 전세자금 대출을 늘려주는 것과 함께 주택매매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조치를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하죠? 

제: 네. 정부 내에서도 반대가 있어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국토해양부가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는 3월 말로 만료되는 DTI완화조치를 주택매매활성화를 위해 더 연장하는 방안입니다. 시민단체에서는 ‘빚내서 집 사게 하는 게 무슨 전세대책이냐’고 비판하지만 국토부는 “집을 살 사람들이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 앉으면서 전세난이 악화되고 있으니 비싼 전세값에 좀 더 보태 집을 사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비싼 집값과 전세값은 그대로 두고 서민들이 빚을 잔뜩 내 주거 문제를 해결하라는 얘기여서 서민경제를 압박하고 안 그래도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홍: 정부 내에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DTI완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 때문이겠죠?

제: 그렇습니다. 지난해 4·4분기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770조 원입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가계부채가 그동안 계속 늘어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지경인데, 이번에 ‘빚 늘리는 전세대책’에다 DTI 규제완화까지 더 연장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계부채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가계부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380조 원으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데, DTI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지난해 8.29대책 이후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지난 14일 낸 보고서에서 “국내총생산(GDP)대비 가계부채비율이 매우 높은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건전성 측면에서 DTI 규제완화조치 연장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홍: 사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어제 오늘 나온 게 아닌데,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부동산대책이나 서민대책이 대부분 ‘빚을 더 많이 내서 쓰라’는 방향이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8.29대책을 포함해 그동안 나온 정부의 부동산경기부양 대책의 골자가 주택담보대출을 더 많이 받아 집을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서민생활안정 대책도 햇살론, 희망홀씨대출 등 저금리 대출을 대폭 늘려주는 방향이었죠. 여기다 신용카드회사들도 저신용자에게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고 카드론을 쓰게 하는 등 ‘대출확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물론 은행문턱이 거의 막혀있는 서민들에게 금융접근 기회를 넓혀 주는 것은 한편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고용불안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 만연하고,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경제현실에 대한 근본 처방 없이 ‘당장의 곤란을 대출받아 해결하라’는 정책은 결국 서민가정에 갚기 어려운 빚 부담만 늘려 가계 파탄과 금융 불안을 부르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중소형의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근본적 전세대책 세워야

홍: 이렇게 가계부채가 쌓이는 상황에서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지 않겠습니까?

제: 그렇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월에는 기준금리를 2.75%에서 동결했지만, 현재 물가오름세가 워낙 심각한 상황이라 내달이든, 그 다음달이든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적정한 금리수준을 4%로 권고한 일이 있는데, 향후 1~2년 내에 이 수준까지 기준금리가 올라간다면 지난 2~3년간 2대%의 저금리 환경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이론적으로 2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은 대책 없이 가계대출을 늘릴 때가 아니라 줄이는 쪽으로 총력을 경주할 때임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홍: 그렇다면 ‘빚 권하는 대책’이 아닌 근본적 전세대책은 어떤 것일까요.

제: 현재의 전세난은 ‘뉴타운’ 개발 등 재개발재건축으로 사라진 주택이 많은 데 반해 거기서 나온 세입자들이 들어갈 만한 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다는 것 등 공급부족 문제와 집값이 서민 등 실수요자가 사기에 여전히 너무 비싸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큰돈을 갖지 못한 서민가족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임대주택, 특히 중소형의 장기공공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는 게 중요합니다. 일부 보도를 보면 정부가 지난 98년 이후 짓기로 한 국민임대주택물량 중 실제 지어진 것은 44%밖에 없는데 정부는 다 지어진 것으로 잡고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동안의 주택정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겠습니까. 한편으로 그동안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억지로 떠받쳐온 집값도 현실적으로 하향 안정되게 놔두어야할 것입니다. 그래야 실수요자중심의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전세값 안정을 유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주거빈민층을 위한 임대료보조와 임대료상한제 도입 등 제도적인 대책도 함께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는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방송 내용은 2월 16일 <손에 잡히는 경제>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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