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문사철특강] 이권우 도서평론가
주제① 이 시대에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리영희와 에드가 스노우는 무엇으로 남았나?

▲ 생전의 리영희 선생과 에드가 스노우

“책 쓰는 언론인이 되십시오. 신문사 데스크들 얘기를 들어보면 인터뷰나 서평 같은 깊이 있는 글을 맡겼을 때 제대로 써내는 기자는 열에 하나 정도라고 합니다. 꾸준히 책을 읽으며 공부하지 않은 결과죠. 하지만 책 쓰는 기자는 다릅니다. 책을 쓰기 위해 우선 많이 읽게 되죠. 이들은 새로운 관점과 흐름에 굉장히 민감하고 스스로 공부해 자기를 성장시켜 나갑니다.”

도서평론가로서 대한민국의 ‘책벌레’로 꼽히는 이권우 평론가는 ‘책을 많이 읽으라’는 식상한 말 대신 ‘책 쓰는 언론인’이 되라며 말머리를 꺼냈다. 책 쓰는 언론인은 ‘직업’으로 요구되는 능력을 넘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시대를 관통하는 ‘지식인’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인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로 리영희 선생을 꼽았다. 리영희 선생은 평범한 외신기자로 출발했지만 생전에 전집이 출간될 정도의 ‘사상적 은사’로 성장했다. 그런 변화는 끊임없는 독서와 자기 공부 덕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우 또한 좋은 예다. 그는 주식투자로 돈을 벌어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중국 땅을 밟은 기자였다. 그러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하며 사상적 깊이를 더해갔다. 그의 저작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 공산당혁명을 현미경처럼 관찰하고 그 의미를 해석해낸 역작이다. 깊이 있는 저널리스트의 글은 한 시대의 상징이 되고 훗날 그 시대를 복구해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 글을 써내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 강연 중인 이권우 도서평론가. ⓒ 곽영신

고전(古典) 읽기는 고전(苦戰)일 수밖에 없지만...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이권우 평론가는 ‘고전’부터 시작하라고 권했다. 고전이란 무엇일까? 철학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누구나 제목을 알고 있지만 정작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다.

“좌파라고 자처하는 사람 중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너무 어렵고 지루하기 때문이죠. 다들 고전(古典)을 읽으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쉬운 것만이 미덕은 아닙니다. 설명하거나 해석할 때, 더 이상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유가 워낙 깊고 방대하기 때문이죠. 배우는 사람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읽고 여러 사람의 해설을 참고해야 합니다.”

그는 고전을 ‘세월의 담금질을 이겨낸 지식의 고갱이’란 말로 정의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고전목록 자체를 거부하고 옛 지식과 사상의 권위를 모두 부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고전목록을 작성하면서 개입된 서구중심 사상이라든가, 남성중심성, 시기의 편중성, 정치․문화의식의 편향성은 경계해야지요. 하지만 여러 시대를 지나면서 살아남은 필독 고전목록은 존재합니다. 이 목록을 통해 내 지식 은하계를 다른 은하계와 연결해 끊임없이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 강연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 곽영신

고전을 읽어야 새로운 사유 가능

그는 최근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고 말했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고전 서양철학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가령 책에 소개된, ‘살인자가 와서 친구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을 때 알려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얘기다. 따라서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은 이 이야기가 생소하지 않고 저자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논의를 펴고 있는지 맥락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논리도 고전에 뿌리를 박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자유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기본서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사상은 이 고전 자유주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이러한 맥락을 알고 있으면, 정치, 사회, 문화, 경제를 모두 포괄한 전통적 자유에서 경제적 자유만을 추출해 극대화한 신자유주의를 비판할 수 있게 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상, 유행하는 조류는 전부 고전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을 알아야 현재를 더 잘 이해하고 다음 시대를 여는 새로운 사상을 창조할 수 있죠. 고전은 새로운 사유와 상상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마중물 한 바가지와 같습니다.”

그에 따르면 세상은 반복된다. ‘사건’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세계 역사의 면면을 보면 내부 세밀한 부분은 새로운 형태지만, 큰 틀은 익히 보아왔던 것이다.

중년들 동양철학 붐은 ‘삶의 전쟁’ 치르고 있기 때문

▲ 2010년 중국에서 제작된 영화 <공자> 포스터
“최근 40대 중년 남성에게 동양철학 강의가 인기를 얻고 있죠. 공자나 맹자가 활동한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시기였고 수많은 사상가들의 논쟁을 통해 사상이 영글어 간 시기였습니다. 삶의 배경이 싸움터였고 이론 또한 싸움을 통해 형성해 간 거죠. 한 마디로 정글 시대였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와 똑같지 않습니까? 현재 중년 남성에게 동양철학이 메시지를 갖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바로 정글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철학은 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수신(修身)’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오늘날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 사회는 자신의 삶과 가족, 집단을 지키기 위해 살벌하게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던 춘추천국시대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이처럼 현재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새로운 것 같지만 과거에 인간이 겪었던 일이고, 고전은 그 문제와 씨름한 지적 분투가 담겨 있는 책이다. 고전은 우리로 하여금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보게 한다. 이렇게 앞서 고민한 지성을 끌어안음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문제를 빨리 이해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언론인 또한 사건 자체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근본적인 구조성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현대사회에서 동양철학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영복의 <강의>는 유학의 관계성 이슈 되살린 것

▲ 이권우 도서평론가의 강연모습. ⓒ 곽영신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는 유학의 기본정신인 관계성 문제를 다룹니다. 서구사상은 존재론적이고 동양은 관계론적인데 새로운 세상을 열 힘은 관계성 회복에 있다는 거죠. <논어>의 ‘오륜’이 바로 다섯 가지 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적 존재는 그 무엇과의 관계 속에 놓여있다고 보고, 그 관계를 어떻게 잘 유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동양철학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공자님 말씀이라 하면 책상물림, 조선을 멸망시킨 원인으로만 얘기하지만, 이처럼 고전은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동양철학이 현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재해석 될 수 있는지 활발히 연구될 필요가 있습니다.”

동양철학을 강조하며 그가 추천한 책은 다음 열 권이다. <논어> <맹자> <도덕경> <장자> <묵자> <대학> <중용> <한비자> <순자> <주역>. 거기에 주자와 왕양명, 두 명의 사상을 추가했다. 이 정도 읽어놓으면 나중에 논설위원이 돼도 정치 사안에 대해 구조적 이해를 곁들인 논평을 쓸 수 있다고 호언했다. 특히 세계패권이 중국으로 넘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철학과 통치관을 알아야 향후 세계질서를 이해할 수 있단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영화 예고편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랍니다. 몇 십 초 안에 승부를 거는 데 능한 거죠. 최근 글 쓰는 경향도 인터넷과 미디어에 익숙한 탓인지 흐름이 짧고 인상 위주의 핵심적인 글쓰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주제를 집요하게 물고 나가는 고전을 통해 긴 호흡으로 사유하고 글 쓰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고전은 논리의 집적(集積)이므로 앞부분이나 인상적인 몇 부분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련하게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다른 흐름을 익히고 배워놔야 새 시대의 새로운 요구가 있을 때 적응할 수 있게 되겠죠.”

‘쓸모없음’의 가치

책벌레인 그도 고전을 면치 못한 책이 있다고 한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책을 다시 읽기 위해 서문을 보는데 예전에 읽었던 것이 기억나면서 푸코의 사상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처럼 한 번 읽어놓으면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니 일단 미련하게 읽어보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쓸모 없음의 가치’를 강조했다. 고전을 읽어서 무엇을 얻기를 바라거나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목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책 읽기고, 고전 읽기다.

“현대사회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철학•문화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 과학적으로는 동물행동학을 기초로 한 ‘이기적 유전자론’의 세계입니다. 이 사상들이 80년대 후 얽히고설켜서 현대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이론적 망이 되었죠. 그러나 최근 이러한 망이 찢겨 나가고 있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듯이 가득 차니까 기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대안을 찾을 때가 왔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60만권 이상 팔리는 것은 ‘정의’라는 화두에 대해 국민적인 관심이 있다는 증거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경제 관련 책인데도 몇 십만 권 나가고 있는 것 역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대중에게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 체제는 구조적 모순으로 몰락하고 있으며, 대중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체제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새 세상을 여는 새로운 이론 체계는 역시 고전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장자> 첫 부분은 ‘곤(鯤)’이라는 물고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곤은 원래 물고기 뱃속의 알이라는 뜻이지만 장자는 곤의 크기를 몇 천리나 되는 상상의 물고기로 묘사하죠. 곤이 변하여 새가 되면 ‘붕(鵬)’이라 합니다. 붕의 크기도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고 하늘만큼 큰 연못인 천지(天地)를 날아다니죠. 결국 이 이야기는 작은 존재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본질적 변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권우 평론가는 강의 도중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물고기 알에 불과한 우리에게 붕이 되는 야심을 가지라는 걸까? 그렇게 되는 방법은 역시 ‘고전 읽기’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문사철특강>은 도종환, 김진석, 한홍구, 이권우, 이주헌, 장승구 선생님이 맡았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를, 강의를 함께 들은 담당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동안 <단비뉴스>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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