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화재 겁나지만 가족과 살 수 있는 마지막 공간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2부] ⑥ 비닐하우스 마을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해. 바로 요 앞까지 싹 탔거든.”

이순례(가명·77·여)씨는 뇌병변장애로 불편한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시력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고 몸서리를 쳤다. 지난해 11월 28일 새벽, 서울 서초3동 산160번지 일대 ‘산청마을’에 난 불로 비닐하우스 54가구 중 21가구가 타버린 사고를 떠올린 것이다.

이 마을에 사는 이모(51)씨가 사람들이 상대해 주지 않는 데 앙심을 품고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마을 주민 120명 중 52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판자벽과 비닐, 떡솜 등으로 지어진 가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동네는 일단 불이 났다하면 이웃으로 번지는 게 시간문제였다. 마른 낙엽들이 수북한 지붕위로 전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집 사이론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미로’가 있을 뿐 소방도로는 전혀 없다. 
 

 ▲지난해 11월 산청마을에 불이나 비닐하우스촌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김영아

이 씨 할머니는 다행히 화를 면했지만 사고 후 늘 불안하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에도 기자에게 “무슨 냄새가 나지 않느냐”며 연탄보일러를 확인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 전기줄, 환기구 등이 옆집과 얽혀 있어 불이라도 나면 옆집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 김영아
이 씨의 연탄보일러는 문 안쪽에 어른 무릎만한 높이로 자리 잡고 있었다. 보일러 옆엔 십여 장의 검은 연탄이 삼단 높이로 종이상자에 담겨 있고, 그 위로는 흰색 ‘세탁소 옷걸이’에 빨래들이 대롱대롱 걸려 있다. 보일러 옆엔 적갈색의 큰 김장용 고무통이 있는데, 이 씨는 벽에 매달린 수도꼭지에서 이 통에 물을 받아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한다.

지난 2007년 이 집에 들어 온 이 씨는 지지난해까지만 해도 보일러 없는 ‘냉골’에서 전기장판만 켜고 겨울을 났다고 한다. 옷을 세 벌씩 껴입어도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겨울이 무서워 지난해엔 있는 돈을 다 털어 연탄보일러를 들였다. 보일러 값이 30만 원, 방바닥까지 파이프를 설치하는 데 150만 원이나 들었다고 한다. 겨울을 나려면 한 장에 800원하는 연탄이 하루 4~6장 필요한데, 다행히 서초구청에서 연탄을 가구당 4백 장씩 지원해줘 한 시름 덜었다고 한다. 이 지원이 없으면 가구당 월 수십만 원이 들어, 동네 사람들 생활비 대부분을 난방비로 써야 한다. 

고마운 연탄보일러지만 이씨는 늘 불안하다. 불이 날까 걱정이고, 연탄가스가 스며들까봐 걱정이다. 이씨의 근심은 연탄에 의존하는 산청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근심이기도 하다. 일부 가구는 액화가스(LPG) 보일러를 설치했는데, 높은 데 있는 산청마을까진 가스 배달을 해주지 않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부분 재래식 공동화장실 사용

몸이 불편한 이 씨에겐 화장실 가는 것도 큰일이다. 산청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10칸짜리 공동화장실을 쓴다.

“나는 바께스(양동이)에 볼 일을 보고 사나흘에 한번 씩 화장실에 버려. 그런데 그걸 버리러 가다가 벌써 세 번이나 넘어졌어. 그래서 오른쪽 무릎은 펴지도 못해.”

이 씨가 쓰는 화장실은 서리풀 공원 등산로에 있는데 한 손에 지팡이, 다른 손에는 양동이를 들고 가는 게 중노동이다. 인터뷰 내내 이 씨는 잘 펴지지 않는 무릎을 주물렀다. 그러면서 “하꼬방(판잣집)이니까 옆 집 소리도 다 들린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중국 만주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씨는 6.25 직전 서울로 온 뒤 결혼해서 2남 4녀를 뒀지만 1972년 남편과 사별한 뒤 내내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식당 일을 하며 아이들을 길렀지만 힘에 부쳐 둘째 아들은 부잣집에 양자로 보냈고, 출가한 나머지 자녀들도 대부분 어려운 처지라 2003년 무렵부터 북한산 언저리에서 혼자 개를 키우며 살았다. 그러다 건강이 많이 나빠지면서 혼자 이 마을로 들어왔다. 수입이 없는 이씨는 인근 복지시설에서 갖다 주는 쌀과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1급 장애인이라 약값은 정부에서 지원한다.

▲ 산청마을의 공용화장실. ⓒ김영아

이 씨를 포함한 산청마을 가구주의 대부분은 50대 이상 중노년층이다. 마을을 찾았던 지난해 12월 4일, 화재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주민들은 컨테이너로 된 마을회관과 빈 집 등에 임시로 기거하며 비닐하우스를 새로 지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엔 장애물이 많았다. 주민 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진규(51)씨는 “마을 입구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건축 자재 반입을 못하게 하고 중장비 출입도 못하게 막아 잔해를 치울 수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산청마을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서초구청 공원녹지과 직원들은 강경한 입장이었다. 한 직원은 “이 사람들은 재개발하면 이득 보려고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라며 “무허가 판잣집이고 사유지여서 주민들이 건물을 짓도록 허락하는 건 건축법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청소부, 고물장사, 경비원, 택시기사, 파출부 등으로 일하며 수년에서 수십 년씩 여기 살아온 주민들을 어떻게 재개발 이득을 보러 들어온 사람으로 보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여기 사는 걸 비밀로 하고 몰래 학교 다녀요.”

불이 나기 전에도 산청마을 사람들은 설움이 많았다.

“우리가 이웃 간에 다투거나, 소리라도 크게 내면 인근 아파트 사람들이 문을 열고 ‘거지들아 조용히 해’라고 외쳐. 그래서 우리는 더 조심하며 살았지.”

▲ 아파트와 마주하고 있는 산청마을 비닐하우스촌.ⓒ 김영아

이 마을에서 30년을 살았다는 김점례(가명․65·여) 씨는 여기 사는 걸 친척들에게 비밀로 한다.

“우유와 요구르트 배달, 청소를 하며 아들 셋을 키웠어. 남편은 경비로 일하지. 아들들이 학원에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어.”

김씨는 아들, 손주까지 3대가 여기 사는 게 몹시 부끄럽다고 했다.

“나가고 싶지. 그런데 뼈 빠지게 벌어 빚 갚고, 자식들 먹이니까 돈이 없네. 그리고 자식들이 결혼한다는데 어떻게 해. 돈을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어. 없는 살림인데 막내며느리가 여기 와서 같이 사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

이 마을에는 대학생 3명, 고등학생 4명, 중학생 2명, 초등학생 1명, 유치원생도 1명 산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 마을에 산다는 것을 대부분 학교에서 비밀로 한다. 한 여고생의 말.

“애들한테는 여기 사는 걸 비밀로 하고 몰래 학교를 다녀요. 애들이 학원을 다 다니니까 나도 안 갈 순 없어서 제일 싼 곳을 찾아서 다니죠.”

산청마을엔 우편함도 딱 하나다. 산 160번지에 1호부터 54호까지 있지만 배달부가 모든 우편물을 우편함 하나에 두고 간다. 주민들은 ‘이런 것도 차별하나’ 불평하면서도 각자의 우편물을 챙겨 가는 데 익숙하다.

서울에만 약 5000여 가구 비닐하우스 마을에 살아

이런 비닐하우스 마을은 서울, 경기 곳곳에 있다. 공식 집계는 없지만 서울에만 5000여 가구가 비닐하우스 마을에 사는 것으로 ‘진보복덕방’ 등 주거운동 시민단체들이 추산하고 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비닐하우스촌은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이다. 개발 예정지에 삼천여 세대가 가건물을 짓고 산다. 지하철 개포역에서 구룡마을까지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십분 넘게 달린 뒤 다시 십 분 정도 어두컴컴한 지하도와 인적 드문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마을 입구엔 고철수집상이 세워 둔 큰 철판이 경계 벽처럼 자리하고 있다. 집들은 산기슭에서부터 위쪽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고 꼬불꼬불한 논두렁 같은 길이 사람 하나 겨우 다닐 너비로 무질서하게 나 있다.

▲  구룡마을에 가려면 마을버스에서 내려 십 분 정도 어두컴컴한 지하도와 인적 드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유라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가장 싸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찾아 왔다고 말한다. 지난 2008년을 기준으로 600만 원에서 700만 원 정도면 비닐하우스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집은 샀지만 토지를 무단 점유한 무허가 건물이라 법적 소유권은 인정받지 못한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등록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여기서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은 아는 사람 집에 단순동거인으로 이름을 올려 학교 배정을 받았다.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꼬맹이도 한참 걸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녔다.
 
이 마을에는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다. 수도요금을 내는 대신 지하수를 파서 먹는다. 마을의 재래식 화장실은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전기도 정상적으로 들어오지 않아 일종의 불법도선을 했다. 지금은 한국전력에서 마을 전체에 전기료를 매기고 도선을 묵인해준다. 허술한 전기 도선 때문에 누전으로 불이 나는 일이 많다는 게 이 마을 사람들에겐 가장 큰 공포 중 하나다.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에도 비닐하우스촌이 있다.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춘수(54·여)씨 집도 비닐하우스다. 판자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방과 거실로 함께 쓰는 공간이 나온다. 보통 키의 성인 남자가 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하고, 울퉁불퉁한 바닥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조그만 창 아래 작은 싱크대가 있는데, 수도는 따로 바닥에 설치돼 있다. 수도꼭지 아래로 물을 받아 놓은 적갈색 김장용 고무통이 있고, 형광오렌지색 바가지가 동동 떠 있다. 바로 그 앞에 낡은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어 거실 분위기를 낸다. 하지만 흙냄새와 시멘트 냄새, 멀리서 풍겨오는 퇴비냄새가 거실의 ‘안락함’을 방해한다.

▲ 구룡마을의 비닐하우스. ⓒ 유라

이 마을은 위치탐색기(내비게이션)에 주소를 넣어도 ‘없는 주소’라고 나온다. 인근 버스정류장에선 몇 시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가로등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밤엔 몹시 어두웠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화훼용 비닐하우스처럼 보이는 집들 사이로 수북이 쌓인 쓰레기 더미만이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주민연합’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씨는 “개발에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80년대 청계천 개발할 때 사당으로 밀려났고, 나는 거기서 여기까지 밀려왔지요.”

‘진보복덕방’ 이원호 사무국장은 이런 비닐하우스촌을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라고 말한다. 달동네에서 전·월세살이조차 하기 힘든 가족들이 밀리고 밀려 ‘집 아닌 집’에 정착한 것이며 기초 생활의 불편과 화재의 위험까지도 기꺼이 끌어안고 살아가는 곳이란 얘기다.  

‘보상 바라고 들어온 사람들’로 눈총  받는 비닐하우스 주민들 

그러나 비닐하우스 주민들은 ‘개발비 보상을 바라고 일부러 들어온 사람들’이란 눈총까지  받고 있다. 삼천 세대가 넘는 구룡마을의 경우엔 실제로 고급승용차를 가진 ‘꾼’ 들이 재개발 보상을 노리고 뒤늦게 들어 온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런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오갈 데 없어 들어온 자신들을 의심하는 눈길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구룡마을의 경우 총 27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 및 저층형 타운하우스 설립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주민들 가운데는 이주금으로 나오는 1400만원과 정부가 알선해주는 낮은 이자의 융자금 8000 만원을 받아 나가자는 사람도 있고, 개발계획에 반대하며 그대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로 있다. 안 나가겠다는 사람들은 융자금을 2년 단위로 갱신하다 결국 갚아야 하는데, 자신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아 융자금 갚을 형편이 된다면 애초에 비닐하우스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닐하우스 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체비지 변상금’이 쌓여있다. 정부 땅을 무단 점거하고 산 데 대한 벌금이 매년 쌓이는 것이다. 구룡마을의 경우 연체료까지 붙어 가구당 칠팔천만 원씩 되는 변상금이 쌓여 있는데, 이를 갚을 수 있는 주민은 없다. 정부도 주민들 사정을 감안해 강제 징수를 하지 않고 매년 고지서만 보내고 있지만 주민들이 보상금이라도 받아 비닐하우스를 나가는 순간 바로 압류 등의 법적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은 체비지 변상금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비닐하우스 이주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청마을, 구룡마을 등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소원은 ‘현실적인 임대아파트를 얻는 것’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해 수십만 원씩 내야하는 곳 말고, 기초수급자 등 각 가구의 소득수준에서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제공됐으면 하는 것이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주민연합’ 김한수 대표는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기회가 있어도 비싼 보증금과 이주비, 관리비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며 “임대료가 소득수준에 맞게 책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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