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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지킨 국가는 국민에게 뭘 했나
[공연] 뮤지컬 ‘영웅’
2015년 05월 22일 (금) 13:27:23 박주현 기자 boooshishi@gmail.com

새벽안개가 자욱한 숲에 자작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다. 나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늘로 길게 뻗어 있다. 한 남자 위로 조명이 쏟아진다.

“내 조국 안에서 살아갈 그 날을 위해 수많은 동지가 타국의 태양 아래 싸우다 자작나무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간절했던 영혼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뜨거운 조국애와 간절함을 담아 저 안중근, 이 한 손가락을 조국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안중근은 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자르며 독립투쟁을 맹세한다.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로 망명한 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삶을 다뤘다. 2009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기를 맞아 무대에 올린 뮤지컬 <영웅>은 2010년 ‘더뮤지컬 어워즈’에서 최우수창작뮤지컬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한국뮤지컬 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올 2월에는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서 공연했다. 2015년부터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생생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 뮤지컬 <영웅> 포스터. ⓒ 에이콤

실제 크기 기차간을 무대 위로

뮤지컬 <영웅>에서 눈길을 확 사로잡는 것은 기차다. 3.5m 실제 크기의 기차간을 관객 눈높이보다 높게 띄워 관객이 둔덕 밑에서 기차를 바라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기차 세트 앞에 투명가림막을 설치하고 자작나무가 뒤로 지나가는 영상을 가림막에 쏴 기차가 실제로 달리는 느낌을 준다. 이토 암살에 실패한 설희가 소복을 휘날리며 원통함을 토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 이토 암살에 실패한 설희가 실제 기차간 크기의 세트에서 소복을 휘날리며 울부짖는다. ⓒ 에이콤

한국인의 정서가 잘 드러난 것도 창작뮤지컬 <영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우덕순과 조도순은 하얼빈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토를 쏘려고 기다렸다. 조도순은 “손 떨지 마시오, 말도 걸지 마시오”라며 우덕순을 다그치지만, 자신도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한다. 우덕순이 아리랑을 흥얼거리자 조도순은 지금이 그럴 때냐며 쏘아붙인다. 우덕순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말한다.

“고향서는 긴장되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쳐유. 아리랑은 집집마다 달라유. 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지멋대로 부르는 구만요. 달라도 다 조선의 아리랑이구만요.”

기쁠 때나 슬플 때 아리랑을 부르며 흥을 돋웠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재치있게 풀어낸다.

친일 논란 벗어났지만, 이토의 회한도 사라져 

뮤지컬 <영웅>은 한때 친일 논란이 일었다. 안중근이 뤼순감옥에 갇혔을 때 죽은 이토 히로부미가 나타나 안중근과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토는 안중근에게 “왜 날 쐈냐”며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동양평화인가”라고 쏘아붙인다. 안중근 의사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이토를 처단했듯이 이토도 일본의 번영을 위해 아시아로 뻗어나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중창은 “운명이 우릴 적으로 만들었으나 삶도 죽음도 조국을 위해 내던진 군인이었음을”이라는 말로 끝난다.

이 대사가 문제가 돼 불매운동까지 벌어지자 주최측은 안중근 의사와 이토가 주고받는 ‘운명’ 부분을 삭제하고 중국 소녀 링링의 죽음을 추가했다. 극의 중심이 안중근에게 집중되고 이토는 저격당하는 역할에 그쳤다. 이토가 왜 조선에 집착하는지, 이상이 무엇인지 그려지지 않아 ‘인간’ 이토를 쏘는 안중근의 고뇌도 드러나지 않는다. 1부에서 이토가 “조선은 젊음을 모두 바친 첫사랑 계집과 같다며 지나보면 아쉽지만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회한에 쌓인 이토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조국은 대체 무엇입니까”

안중근이 죽은 친구의 관을 들고나올 때 관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공연이 끝나고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뻔한 영웅 이야기가 아직 울림이 있는 것은 ‘국가’에 대한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터이다. 안중근 의사는 친구 왕웨이가 죽자 “국가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모진 아픔을 겪어야 하냐”며 절규한다.

   
▲ 안중근 의사는 친구 왕웨이가 죽자 "국가는 무엇이냐"며 운다. ⓒ 에이콤

공연이 열린 4월 18일,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며 시민들과 유가족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경찰은 경복궁 주위로 차벽을 세우고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시위대에게 쐈다. 유가족은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세월호 참사에서 어디 있었느냐며 국가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한날,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은 국가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묻고 세월호 유가족은 국가가 지켜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뮤지컬 <영웅>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5월 31일까지 공연한다.


 

[박주현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지역농촌팀 박주현입니다.
현장과 사람에 예의를 지키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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