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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세습만 있는 건 아니다
[단비발언대]
2011년 02월 02일 (수) 11:21:30 홍윤정 기자 jetaime2u@naver.com

   

▲ 홍윤정 기자

 

"소음같지만 한번 들어보소." 호주의 유명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는 우연히 ‘무형문화재 82호’ 김석출의 장구 연주를 듣게 된다. 바커는 김석출의 에너지 넘치는 즉흥연주에 충격을 받는다.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은 김석출을 만나기 위해 17번 한국을 방문한 바커와 생의 마지막 굿판에서 장구를 잡은 김석출, 그 둘의 교감을 줄거리로 한다. 김석출은 이제는 보기 힘든 ‘세습’무당이었다. 어려서부터 굿판 심부름을 하다가 아홉 살에 정식 무당이 되어 평생을 무속인으로 살았다.

김석출 같은 세습무는 여러 기예를 어려서부터 전수하게 되니 신내림 무당, 곧‘강신무’보다 굿의 예술성이 뛰어난 편이다. 그들의 굿에는 고대부터 전해진 우리 고유성이 담겨있다. 그래서 진도 씻김굿 보유자 박병천은 자기 나이가 1,800세라 했다. 세습무 오진수는 자신이 11대째 세습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현재 세습무는 20명도 안 된다. 세습무가 되려면 어려서부터 부모가 굿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며 무당으로 자라야 한다.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방식의 직업 전수는 현 세대에게 버거울 수밖에 없다. ‘학습무’라 해서 스스로 배움을 찾아 무당의 길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가 주는 산지식을 얻기는 어렵다. 이처럼 세습에 긴 시간이 걸리는 다른 직업들 역시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단번에 익힐 수 없는 장인정신, 온몸으로 익숙해져야 하는 직업 기술을 체득하려는 사람이 드문 까닭이다.

세습무뿐 아니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세습은 지금도 있어야 한다. 이런 세습은 문화를 보전하거나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원시 종교가 사라진 나라가 많은데도 한국에서 무속신앙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세습 덕분이다. ‘무속인은 천하다’는 의식에서 벗어나 자기 가문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컸기에 가능했다. 원조 비법을 금방 배워서 문을 연 프랜차이즈 식당보다는 대를 이어 운영해온 식당이 같은 이유로 더 큰 신뢰를 받는다.

반면 ‘인스턴트 세습’은 유해하다. 돈과 권력 등은 물려주는 데 큰 노력과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쉽고 빠르게 세습된다.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 삼성 같은 재벌그룹의 경영권 세습,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보여준 고위직 세습 등 사례들이 널려있다. 이는 공정 경쟁을 저해하여 타인의 의욕을 꺾는 백해무익한 존재다.

조선시대에도 음서제가 존재했으나, 제대로 된 관직을 맡기 위해서는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다. 음서의 ‘蔭'이라는 말에서 노력 없는 세습을 부끄러워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반대이다. 유명환 전 장관뿐 아니라 이런 일이 예전부터 계속 있어왔다는 보도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습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인스턴트 세습’은 유해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기도 어렵다. 세습무는 1,800년을 이어오면서 몇 대인지 헤아리기도 어렵지만, 세습으로 이어진 부자는 3대를 가지 못한다. 팍스 로마나 시기에는 능력을 갖춘 양자를 후계자 삼아 80여년간 번영을 누렸지만 친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번영도 끝났다.

결국 세습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어떤 세습인지가 관건이다. 한국인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세습무’의 예술성을 발견한 외국 연주가처럼 지속가능한 세습을 발견할 줄 아는 안목, 우리에게 해로운 ‘인스턴트 세습’을 부끄러워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모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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