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문사철특강] 김진석 교수
주제② 폭력, 그리고 근본주의와 싸우기

이분법적 근본주의는 논의를 헛돌게 할 뿐

세상은 크고 복잡하기에 이분법으로 구분 짓거나 정의하기 어렵다. 김진석 교수(인하대 철학과)의 문사철특강 두 번째 시간. 김 교수는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분법적 근본주의에 빠져 한국사회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인들부터 그런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근본주의란 하나의 이념으로 세상을 1차원적, 평면적으로 보는 것이라며 폭력에 대한 통념을 사례로 들었다. 흔히 폭력성을 잣대로 사회 문제를 재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폭력과 권력에서 자유로운 포지션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영화 <폭력써클>의 한 장면. ⓒ 태원엔터테인먼트
“과거의 물리적, 독재적, 권위적 폭력에는 모두가 반대하겠죠. 근데 민주주의가 진화할수록 폭력은 합법화, 상징화, 복잡화 합니다.”

예를 들어 감옥이라는 도구로 행해지는 권력에 대해 지식인들이 비판을 하지만 지식 또한 권력의 실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어느 누구도 권력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거대기업이나 대학 문제에 접근할 때도 지식인들이 자기 포지션을 빼놓고 말을 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즉 폭력이나 권력과 순수하게 떨어져있는 포지션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누구도 폭력과 무관한 위치에 있지 않다”

그는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1차원적 대립상태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초월적인 ‘비판적 지식’이 작동할 수 있다는 명제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폭력과 권력이 전혀 없는 상태를 전제하는 것은 좌파적 근본주의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본주의는 어쩌면 도덕적인 것을 더 많이 갖고 있기도 하고....
우파들은 폭력이나 경쟁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좌파들은 다 없애야 한다고 전제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 김진석 교수의 저서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기우뚱한 균형>
김 교수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박노자 교수를 언급했다. 폭력을 완전히 배제한 저항에 대한 그의 설명에는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비폭력을 설정할 수는 있지만 먼저 상대방이 폭력을 쓴다면, 저항과정에서 폭력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총기소지를 다 금지하자’거나 ‘군대를 다 없애자’는 주장에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저는 차라리 평화근본주의는 정치신학이라고 부르는 입장입니다. 어떤 상태에서도 폭력이 없을 순 없습니다. 개인의 믿음으로서는 옳은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폭력을 아예 배제한 설정은 옳지 않다는 겁니다.”

폭력에 대한 무거운 논의가 오갈 때쯤, 김 교수는 남녀관계로 설명을 이어갔다. 과거 페미니스트는 남성들은 폭력적이고 여자는 비폭력적이라는 전제로 접근하곤 했다. 그 이유를 ‘남자들은 군대 갖다 와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남자들도 군대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며칠 전 학생들과 ‘이터널 션샤인’이라는 영화를 봤다며 ‘남녀 차별’에 대해 말했다. 

“예를 들어 남자가 갑자기 키스를 하려고 접근하면 뺨 맞든지 성추행으로 몰리죠. 하지만 여자는 접근해도 됩니다.”

강의실에 학생들의 큰 웃음이 터졌지만, 김 교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남자들은 점점 더 ‘페미닌’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제어하게 되니 그렇죠. 여자들이 적극적이면 미덕이고, 남자들이 그러면 미친놈이라는 거죠.”

모든 전제를 배제하고 급진적 순수성을 갖는 것은 사실의 내면을 정확히 분석하는 데는 위험한 태도다. 김 교수는 “우파는 폭력이나 경쟁을 당연시하기에 위압적인 입장을 갖기 마련이지만, 좌파는 반대급부로 자신도 모르게 도덕주의적, 위선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강연 중인 김진석 교수. ⓒ 김화영
시장경쟁도 제대로 안 되는 사회

김 교수는 화두를 바꿔 ‘경쟁’이라는 키워드로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제대로 된 시장경쟁’도 안 되는 사회이기에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는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라는 명제도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는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기득권 진입을 오히려 어렵게 하고, 능력에 따라 시장을 열어주는 제도가 아닌 희귀한 구조에, 보수가 먼저 반대하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대기업 노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매일 기업만 비판하다보면 좌파도 너무... 아, 이런 말은 하긴 해야 하는데, 내가 뭐 하러 이런 말을 하고 있나....”

그의 한숨 속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논제들이지만 하나씩 짚어가며 생각의 깊이를 드러냈다. 

버스에서 라디오소리 듣지 않을 권리도 민주주의

 ▲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도 정치학자도 이 거대한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보수는 민주주의를 정치적인 선거전략으로 많이 생각하고, 진보는 평등과 인권이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는데,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민주주의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발달해왔기 때문에 뭐라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중앙정부가 통제하지 못해 너무 사회가 혼란스러워도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고, 거꾸로 너무 빡빡하게 조여도 발달하지 못합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려면 행정력, 중앙과 지방 또는 시민 관계 등을 일정하게 컨트롤할 능력이 있어야 혼란이 안 생기고 민주주의가 발달한다는 거죠.”

김 교수는 국가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행정력이 있어야 민주주의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근대국가의 지방 토호들도 다 군사력이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폭력적 수단을 합법적으로 가진 것이다. 그는 지방 차원의 폭력을 다 몰수해 중앙정부에 폭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국가’라는 접근을 시도했다. 단일화한 권력과 폭력 때문에 근대 이후에 민주주의가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빼고 인권과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에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개인에게 어느 정도 경제적인 소유가 가능할 때 민주주의가 발달한다는 것이다. 신체를 소유할 권리도 다 포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버스에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데, 그것을 듣기 싫어하는 것도 신체에 대한 권리입니다. 신체적 평안을 간섭받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권리 혹은 종교적인 권리, 이것도 다 소유의 권리입니다.”

일자리 문제는 대졸 위주 사회가 원인

최근 마이클 샌델의 책으로 화두가 된 ‘정의’에 대해서도 그는 “민주주의가 발달하면 정의가 발달한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란 약자가 정의를 위해 뭉치고 강자에게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일자리 문제를 짚었다. 인과관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졸 위주 사회가 원인인데도 일자리 자체로 문제를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비판하는 ‘근본주의’는 사회 이슈를 단순하게 분석하기 쉬운 언론인지망생들에게도 경계해야 할 사고방식임에 틀림없다. 그는 강의 도중 “나는 ~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등으로 말하며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려 노력했다. 강의를 끝내면서도 “왔다 갔다 하며 두서없이 얘기했다”고 겸손해 했지만, 원래 세상 이치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강의였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문사철특강>은 도종환, 김진석, 한홍구, 이권우, 이주헌, 장승구 선생님이 맡았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를, 강의를 함께 들은 담당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동안 <단비뉴스>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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