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의 미디어스타] 뉴욕 증시 누비며 아프가니스탄 종군 지원

혹독한 수습기자 훈련 겪으러 국내 언론사로

문혜원 기자(Angela Moon‧31)는 톰슨로이터 본사 최초의 한국인 기자다. 로이터통신이 창사 158주년을 맞이한 2009년, 뉴욕 본사에 한국 국적을 가진 첫 한국인 기자가 ‘인종의 벽’을 깨고 입성했으니 그가 바로 문 기자인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AP, AFP와 함께 세계 3대 통신사로 꼽힌다. 2007년 5월 캐나다의 금융정보 미디어회사인 톰슨 코퍼레이션이 로이터를 172억 달러에 인수‧합병함으로써 ‘톰슨로이터(Thomson Reuters)’로 이름이 바뀌었다.

톰슨로이터는 합병 후 본사 주식금융 분야에 결원이 발생하자 ‘각국의 능력 있는 기자들을 본사에 재배치한다’는 인사정책을 내세워 각국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기자들의 지원을 받았다. 문 기자도 지원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취재‧기사작성 능력, 근무 실적 등을 평가받아 길지 않은 기자 경력에도 불구하고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문 기자는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나이지리아, 미국, 태국, 오스트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성장한 뒤 2004년 캐나다 토론토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2005년 1월 동기 14명과 함께 연합뉴스 공채 26기로 입사했고, 이듬해 8월 <로이터통신> 한국지사 특파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톰슨로이터> 뉴욕 본사에 지원해 정식 발령을 받은 것은 2009년 7월이다. 언론사 입사 전에는 국제 업무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시야를 넓히기 위해 2004년 7월부터 비엔나에 있는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 아시아태평양국 공업개발부에서 3개월, 로이터통신에서 3개월간 각각 인턴십을 이수했다.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외국 언론사를 제쳐두고 국내 언론사를 택한 이유는 외교관을 지낸 아버지가 “적어도 기자로 성공하려면 혹독하기로 소문난 한국의 수습기자 수련 코스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고 미리 ‘훈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영리한 딸은 아버지의 속 깊은 마음을 헤아려 무조건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버지가 대학졸업 후 <중앙일보> 수습기자에 합격해 단 3일만 출근하고 그만둔 것을 후회하듯 종종 말씀하셨어요. 딸로서 이것을 극복해야 했고, 모국이지만 오래 살지 않아 생소한 한국을 먼저 알고 그 다음에 보다 넓은 세계를 알고 싶었습니다. 거의 외국에서 자라고 공부했으니 국내의 수재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내 언론사 시험공부가 여간 낯설고 까다로운 게 아니었지만 결국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뉴스> 시절 문 기자는 사회부 수습을 마치고 영문경제부와 영문정치부로 발령 받아 외교통상교섭본부, 국회 등을 출입했다. <로이터> 한국지사에서는 산업뉴스 기자를 맡아 지식경제부, SK에너지, GS칼텍스 등 정유사들을 취재하며 국내외 유가 동향과 에너지 수급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다뤘으며, 싱가포르 아시아본부에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어린나이에 취재 경험도 충분치 않았지만 남다른 감각과 치밀한 준비, 아담한 체구를 무색케 하는 에너지와 근성 등을 바탕으로 다른 기자들이 하기 어려운 ‘특종’을 여러 차례 일궈냈다. 대표적인 것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를 단독 인터뷰 한 것이다. 또 다우코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 단독 인터뷰,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단독 인터뷰도 해냈다. 이런 성과들이 <톰슨 로이터> 뉴욕 본사의 ‘한국인 1호 기자’로 발탁되는 밑거름이 됐다.  

로라 부시, 워런 버핏 등 저명인사 단독 인터뷰 따내 
 
<연합뉴스> 시절인 2005년 가을 부산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렸다. 미국 부시 대통령 부부 등 각국의 정상과 귀빈(VIP)들이 속속 도착했다. 데스크가 농담조로 “해외파의 실력을 발휘해 조지 부시나 로라 부시를 한번 단독 인터뷰 해보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농담이 아닌 압박으로 듣고 치밀한 작전을 수립했다. 부시 부부에 대한 철통같은 경호망, 그들의 살인적 스케줄 외에도 장애물이 많았다. 무엇보다 공식적인 집단 인터뷰 외엔 개별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일체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국내에 비등했던 반미(反美) 감정은 부시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혔다. 문 기자는 그래서 한국 여성 지도자들과의 오찬행사를 취재하면서 우연히 인사를 나눈 같은 또래의 여자 수행원을 집중 공략했다. 행사가 열린 부산에 대해 자기도 잘 모르지만 그 수행원의 마음을 얻으려고 “멋진 곳들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넌지시 “로라 부시를 만나게 해줄 수 있냐”고 했더니 “개인적으로 청해보겠다”고 답했다. 의외로 로라 부시는 수행원의 말을 듣고 응낙해 단독인터뷰가 성사됐다. 문 기자는 인간으로서의 부시, 남편으로서의 부시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하고 풍성한 답변을 이끌어 내, 그해 사내에서 ‘올해의 보도상-우수상’을 받았다.
 
2006년 하반기 국제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생산 정책에 관심이 쏠렸다. 그는 다우코로 OPEC 의장이 비엔나에서 서울로 몰래 온다는 첩보를 듣고 혼자 새벽 4시에 인천공항에 나갔다. 향후 원유 증산 정책 등에 대한 그의 견해가 매우 긴요했던 시기였다. 다우코로는 가명으로 승객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 탑승 여부조차 좀처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비행기 트랩을 빠져나오는 그를 단독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고유가는 수급 문제가 아니라 투기 세력에 의한 것이다. OPEC는 더 이상 생산량을 늘리지 않을 것이다”란 발언을 했다. 문 기자의 기사는 거의 실시간으로 각국에 전송돼 유가가 다시 고공행진을 하면서 에너지 시장을 흔들었다. 이 발언은 당시 원유생산 정책에 대한 OPEC 최초의 언급이었다. 문 기자는 이 기사로 로이터가 아시아지역 주간 최우수 기사 작성자에게 수여하는 ‘아시아베스트 위클리상’을 받았다.
    
2007년 10월15일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77)이 지분을 조금 가지고 있는 대구광역시의 ‘대구텍’이란 회사를 방문했다. 로이터지국장은 “의미 있는 멘트 하나만 따오라”며 문 기자를 대구로 파견했다. 문 기자는 특별한 뉴스거리가 없는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무조건 “미스터 버핏!”하고 소리를 질렀다. 버핏이 “웬 젊은 여자가 나를 불러?”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기에 “1분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더니 수행원이 앞을 가로막으며 제지했다. 그러나 버핏은 의외로 호기심을 보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문 기자는 한국 증시에 대한 평가, 보유 중인 기아차 주식 매각 의사 등을 차례로 질문했다. 공식 기자회견때 ‘노코멘트’했던 내용들인데 개별 인터뷰에서는 “아직 한국 주식이 저평가 됐다”는 등의 견해를 밝혔다. 문 기자는 그의 발언을 즉시 기사로 송고했고 당일 한국 증시에서는 외국인들이 대량 매집에 나서 종합주가지수가 급상승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다. 
  
“버핏은 당시 데려온 수행원만 8명이었는데도 자기 짐을 자신이 직접 찾아 들고 나오느라 공항을 늦게 빠져나왔죠. 인터뷰를 하고 싶어 공항에서 기다리다 따라 붙었는데 수행원의 제지는 물론 동행 취재 중인 미국 ABC 기자들의 블로킹이 장난이 아니었죠. 버핏은 저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도 저의 이름, 질문 내용 등을 꼬박 꼬박 메모하더군요.”

세계 최고 기사 써낸다는 뉴욕 기자들의 자부심
 
뉴욕 본사에 들어가 발령 받은 곳은 월스트리트팀. 뉴욕 증시, 다시 말해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식시장을 취재하고 시황 및 증시전망에 관한 기사를 생산해 내는 일이다. 그는 이곳에서 증시 전문가와 펀드 매니저, 거물 투자자 외에도 외신을 타고 국내에까지 일거수일투족이 전달되는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 골드만삭스 회장 등 유명 인사들을 취재했다. 워싱턴 DC의 미 의회 건물인 캐피털 힐(Capitol Hill)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청문회’를 취재했을 때는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이 자신의 잘못을 추궁하는 의원들의 송곳 같은 질문과 시민들의 매서운 피켓 시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神)의 일을 하고 있다”며 당당하게 말해 그 뻔뻔함과 엄청난 ‘포스’에 놀랐다고 말했다.

 “뉴욕에 와서 저를 더욱 믿게 됐어요. 뉴욕에서 일하는 미국 기자들은 자기 자신이 쓰는 기사에 대해 완벽에 가까운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쓰는 기사가 제일이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엄청난 자부심이죠. 미국에서 가장 능력 있는 기자들이 모여 있는 뉴욕에서 경쟁하다보니 저도 더 분발하게 됩니다. 저의 다음 꿈은 아프가니스탄 종군기자입니다. 험난하고 극한적인 상황에서 취재하는 역량을 기르고 싶어요. 그 뒤 미국에서 좀 더 기자 생활을 하고 한국에 돌아가 국익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문 기자는 이런 희망에 따라 지난해 11월 말 아프가니스탄 종군기자로 파견해 달라는 지원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로이터는 6개월을 임기로 아프가니스탄에 종군기자를 정기적으로 파견하고 있기 때문에 심사에 통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는 또 오는 2월 초에 공들여 쓴 자전적 에세이 <오늘 뉴욕증시는?(가제)>을 국내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뉴욕에서의 금융 기자 생활, 종군 기자 지원 배경 등을 상세히 털어놓았다고 한다. 
 
매일 뉴욕 증시를 취재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도 전달 경로가 적다는 것이다. 문 기자는 “저의 조언이 한국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귀담아 듣는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애정 어린 훈수를 내놓았다.
   

“한국은 KOSPI 2000선을 돌파해 경제가 회복세에 진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저금리 환경으로 갈 곳 없는 자금이 증시로 몰린 데 따른 것입니다. 여전히 투자환경이 좋지 못합니다. 최근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도 투기자금이 몰린 까닭입니다. 미국은 아직 ‘출구전략’다운 출구전략을 쓰지 못하고 있죠. 미국은 수출 촉진을 위해 달러화 평가절하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데 잘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세계 경제위기에서 아시아가 희생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시아, 즉 한국이 먼저 ‘출구전략’을 선도해야 합니다. 먼저 치고 나가야 합니다. 중국의 성장은 지역경제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아요. 달러 베이스를 유일하게 꺾을 수 있는 게 위안화이기 때문에 중국과 긴밀하게 협조해 중국을 잘 이용하고, 지리적 근접성을 활용해 경쟁력이 있는 국산 제품들을 중국에 많이 수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야 합니다.”


김정섭 /성신여대 방송영상저널리즘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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