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가족 위해 물불 안 가리다 범죄에 빠지는 그들

“개자식!”
 이 거친 표현이 영화 ‘황해’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인 김구남(하정우분)에게 중국인 등 주변 사람들이 심심하면 내뱉는 말이다. 김구남 자신도 “개병(광견병)이 지금 돌고 있다”는 독백으로 영화의 서막을 올린다. 무참한 살인극을 벌이는 면정학(김윤석 분)의 본업도 개장수다. 면정학은 김구남에게 빚을 청산해준다는 미끼로 한국에 가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굶주린 개들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된다.

 ▲ 김윤식· 하정우 주연의 영화 <황해> 포스터  ⓒ 황해 공식사이트

조선족, 살기 위해 한국 왔지만…

어렵사리 한국에 밀입국한 김구남은 먼저 돈 벌러 왔던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그러다 아내로 ‘추정되는’ 한 조선족 여성이 동거하던 남자에게 토막살인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김구남 으로부터 사체를 확인해달라고 부탁 받은 사람은 사진 속의 인물이 맞는지 판별할 수 없었으면서도 “얼굴 보니까 딱 알겠다”고 거짓말을 한다. 김구남은 ‘아내의 사체’를 화장하는 비용으로 그에게 200만원을 건넨다. 신원확인을 위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할 수 없는 밀입국 조선족의 처지는 그렇게 턱없이 손해 보는 현실로 이어진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도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가입할 수 없어 일자리를 못 찾는 조선족들이 있다. 

 ▲ 영화에 등장한 대부분의 조선족은 살인청부업에 가담돼 있다. ⓒ 황해 공식사이트

영화는 청부살인에 동원된 인물들 말고도 다양한 조선족의 모습을 비춘다. 김구남이 살해 대상인 김승현(곽병규 분)을 죽이러 가기 전 서울 논현동 근처에서 식사를 마쳤을 때, “다 먹었으면 나가세요”라고 말하는 식당 아주머니도 조선족 억양이다. 김구남이 아내를 찾기 위해 헤매던 안산역, 영등포역, 가리봉동 등은 실제로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이 많은 지역이다. 한국 사회에서 또 다른 ‘하층민’으로 자리 잡은 조선족의 곤궁한 일상, 그 중에서도 살인청부를 맡을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숨 가쁜 몸놀림을 카메라는 당겨 찍고 있다.

 ▲ 아내를 찾기 위해 김구남이 수소문하는 곳은 ‘가리봉동’이다. ⓒ 황해 공식사이트

매끄러운 조선족 연기가 감칠맛

쫓고 쫓기는 두 주인공, 김구남과 면정학을 맡은 하정우와 김윤석은 손톱만큼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선족 속에 녹아들었다. 중국 연변과 서울 가리봉동을 헤집고 다니는 하정우는 ‘고향이 어딜까’ 궁금해 질만큼 천연덕스런 조선족 말투였다. 영화를 위해 체중을 15kg 늘리고 쭈뼛쭈뼛한 머리모양을 내려 ‘호일파마’까지 했다는 김윤석은 정말 인정사정  없고 잔혹해보였다. 나홍진 감독과 출연진이 1년 동안 촬영에 몰두하면서 일부러 중국술과 양꼬치 등 현지 음식을 찾아 먹었다는 뒷얘기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영화는 2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네 파트로 나뉘어 깔끔하게 구성됐다. 특히 완성도 높은 액션과 뛰어난 영상이 볼만했다. 김구남이 트럭을 타고 도망가자 면정학이 운전석 쪽으로 뛰어올라 김구남을 끌어내려다 자기가 떨어지는 장면은 비슷한 종류의 할리우드 영화보다 긴박감 넘쳤다. 

▲ 극중의 두 주인공. ⓒ 황해 공식사이트

그러나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와 이야기 전개가 지나치게 복잡해 관객이 따라가기 어려웠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예를 들면 김태원(조성하 분)이 자신의 정부와 내연관계를 맺은 김승현을 죽이라고 부하에게 사주하고, 다른 한편에서 김승현의 아내와 불륜관계인 김정환(박병은 분)도 김승현을 죽여 달라고 면정학에게 청부했다는 것, 그리고 면정학이 김구남에게 김승현 살해를 지시했다는 구도가 그렇다. 지나치게 찍고, 찌르고, 피를 뿜는 장면이 많다는 것도 이 영화를 주변에 권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 면정학이 김태원의 부하와 싸울 때 도끼로 두개골을 찍어 피를 사방으로 뿜는 장면 등은 과하게 잔인했다.

빚을 청산하고 아내를 찾기 위해 살인청부까지 맡았지만, 졸지에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경찰과 범죄조직 양쪽에서 쫓기는 신세가 된 김구남. 그는 악착같이 살아남아 고향으로 가는 배를 타지만 결국 노모와 아이를 볼 수 없게 됐다. 청부살인자가 되어 날뛰던 다른 조선족도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중국에서의 삶도, 한국에서의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영화 속의 조선족들. 어디까지가 영화적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문득 2년 전 쌀국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함께 일하던 조선족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왜 한국에 왔느냐는 질문에 “고조 욜심히 일해서 딸래미 학비 보태지!”라고 말하던 아주머니.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단 한 번의 지각결석도 없이 성실히 일했지만 4대 보험혜택도, 수당도 챙기지 못했던 그 아주머니는 지금 어디 있을까? 지금쯤은 사랑하는 ‘딸래미’에게 돌아갔을까? 아내를 찾아 함께 돌아가려고 황해를 건넜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김구남과 달리 현실의 조선족들은 제발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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