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칼럼] 무상 준비물은 되고 무상 급식은 안된다니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선생님이 칠판에 '급식신청지원서 제출'이라고 쓰셔서 가슴이 철렁했어요. 제 이름을 부르실까 봐요." "진짜 급식지원 받으라고 교무실로 부르는 거 싫어요. 교무실 가면 저랑 같이 급식지원 받는 애들도 있고 창피하거든요." "동사무소 가서 '한 부모 가정 증명서'라는 걸 떼어오라는 데 어떻게 말해야 돼요? 저 진짜 바보같이 부끄럼 많은데…." "공짜로 먹는데 많이 먹을 땐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지난달 22일 EBS '지식채널e'에서 방송된 리포트 '공짜 밥'에 담긴 아이들의 목소리다. 급식비 낼 형편이 안 돼 '공짜 밥'을 먹는 아이들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고 '선별'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는지 절절한 얘기들이 담겨 있다. 이 동영상이 트위터 등을 통해 퍼지면서 '이럴 줄은 몰랐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는 반응들이 폭발했다.

전면 무상급식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밥 한 끼'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 혹은 수치심 때문에 그냥 굶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나섰다고 말한다. 초·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수업료를 안 받는 것처럼, 점심도 학교에서 주어 누구도 '낙인 찍히는' 고통 없이 '따뜻한 한 끼'를 먹게 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지역 농가와의 계약을 통해 유기농 등 친환경 급식을 한다면 아이들의 건강증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구상이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를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부여당이 '표를 노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고 공격하면서 '떳떳한 밥 한 끼'로 가는 길이 거칠어지고 있다. 오 시장은 차기 대선을 위해 보수표를 모으려는 의욕 때문인지, 앞뒤 안 맞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왜 부잣집 아이들까지 공짜 밥을 먹이느냐'고 따진다. 그런데 서울시는 오 시장의 선거공약이라며 올해 예산에 초등생 '전원'의 학습준비물 무상지원 예산 380억 원을 편성했다. KBS '개그콘서트'의 '여당당' 김영희라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와 준비물은 되고 밥은 안 되는데? 와 그라는데?"

의무교육이라 가난한 집은 물론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학비를 안 받고, 준비물도 거저 준다면 점심을 공짜로 못 먹일 이유가 뭔가. 더 생각해 보자. 세금 낼 형편이 안되는 집 아이들은 그야말로 '공짜 밥'을 먹겠지만, 일반 납세자 가정은 부모가 낸 세금으로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손자가 무상급식을 받더라도 시비할 필요가 없다. 부모와 조부모가 남보다 많이 냈을 세금 덕을 보는 것이지, 결코 '공짜'로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건희 손자까지 공짜 밥을…' 하는 공세 대신 그와 같은 부유층이 법대로 세금을 내는 지 철저히 따져 재정을 확충하는 일일 것이다.

오 시장과 서울시는 또 '무상급식 때문에 학교시설 개선 등 다른 사업을 못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무상급식은 교육 예산의 다른 항목을 줄여서 하자는 게 아니다. 낭비성, 전시성 예산을 교육복지로 돌리자는 것이다. 오 시장의 보좌관이었던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언론기고에서 "서울시가 연간 1조 원이 넘는 한강르네상스 등 토건사업의 입찰 방식을 바꿔 건설사들에게 가는 잔칫상 규모만 줄여도 충분히 무상급식이 된다"고 말했다. 4대 강 사업 예산 22조 원을 모두 돌린다면 전국 초중고생 전원에게 10년간 무상급식을 할 수도 있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유럽은 복지병을 수술하느라 난리다' '복지를 늘리면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짝 난다'는 경고도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이 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우리가 유럽복지병 걱정을 하는 것은 살찐 사람이 다이어트 한다고 뼈만 앙상한 약골에게 '너도 조금만 먹어'하는 꼴이다. 또 포르투갈 등 남유럽국가들은 유럽에서 복지가 가장 낙후된 나라고, 재정위기의 근본원인은 세금을 제대로 못 걷은 것이다. 스웨덴 핀란드 등 진짜 복지국가들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하는데 고작 초중학교 급식을 놓고 이 난리라니, 우리는 정말 이 정도밖에 안된단 말인가.


*이 칼럼은 1월 11일자 국제신문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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