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문사철특강] 김진석 교수
주제① ‘포월’과 ‘소내’의 철학

목표를 향한 초월 대신 함께 기어넘는 포월

김진석 교수(인하대 철학과)는 헤겔의 산책로였다는 ‘철학자의 길’과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학과 사랑, 이성과 감성이 공존한다는 게 멋있게 느껴졌는데, 김 교수는 이상한 대학이라고 하이델베르크를 소개했다.

▲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칼 테오도르 다리. 멀리 산 중턱에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인다. ⓒ 네이버 블로그 fm971019

“신정아 파문 때 좀 걱정했어요. 거기는 학적과나 학적부도 없고, 성적표도 종이 쪼가리에 교수가 싸인 한 게 고작입니다.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 없어도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는 서양철학의 한 갈래인 초월론과 목적론, 그리고 경험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칸트의 초월(超越) 철학은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도 규정을 통해 선험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초월적 목적론은 예를 들어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식으로 말한다. 경험론은 인간이 백지 상태에서 태어나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그것이 다 맞는 얘기는 아니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인간은 백지 상태에서 태어나는 건 아닙니다.  ‘할아버지 재력에 따라 외고 간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부모와 조부모는 이미 태어난 아이의 조건이 되는 게 현실입니다. 또 초월적 목적론적으로 말하는 건 생각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마치 대학 가는 게 목적인양 주입되고, 대학총장은 진리탐구가 대학의 목적이라고 말하는데 정작 살아보면 이런 주류적 생각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가 <초월에서 포월로>라는 저서에서 들고 나온 ‘포월(匍越)’은 바로 초월을 극복하기 위한 개념어이다. ‘포월’이란 한자의 ‘포’는 첫째, ‘기어갈 포’로, ‘포월’은 ‘기어가다 넘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인간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왜 사는지, 왜 이렇게 달려가는지, 회의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이중적 존재입니다. 목표가 다시 기억나면 달려가기도 하죠. 즉, 기어 넘어가기 위해 넘어가는 게 아니라, 기어 넘어가다보니 목표에 도달하는 거죠.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구불구불 또는 빙빙 도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 김화영
‘포’의 두 번째 뜻은 ‘감싸 안을 포’인데, ‘포월’의 의미는 그렇게 확장된다. 서로 안고 감싸 안으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껴안을 때 보편적 관념으로 넘어갈 수 있다.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목표를 향해 초월할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과 몸을 부비면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를 예로 들며 진보와 보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했다. 그는 한 국가의 정치적 성향이 항상 진보로 가는 것도 아니고, 보수로 가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만약에 진보를 역사의 목표라고 설정했다면, 진보 쪽으로 역사가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진보를 설명할 때 한 쪽만 설정하고 나머지는 빼고 설명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 의견을 가진 사람도, 보수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진보적인 사람이 돈을 펑펑 쓸 수도 있고, 자식을 외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외’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낯설어지는 ‘소내’

김 교수는 또 <소외에서 소내로>라는 책에서 ‘소외(疏外)’ 문제를 파고들면서 ‘소내(疏內)’라는 개념어를 들고 나왔다. ‘인간 소외’란 용어는 1800년대 후반 기계화 시대에 어지럽고 혼란스런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됐다. 김 교수는 소외된 현대인의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소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점을 역으로 비판했다. 사람들은 어떤 작품을 보고 이해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소외된 상황을 설명한 작품’이라는 둥 공허한 말을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인간과 기계라는 단순한 대립구도는 시대착오적이며, 기계에 의한 소외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맨발이 아닌 신발을 사용하는 것부터 이미 기계나 보철물을 사용하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인간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인공지능을 다운 받아 무한 능력을 발휘하는 똑똑한 기계가 되길 바란다. 이러한 꿈을 꾸는 순간 인간은 기계가 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기계를 맘대로 쓰려고 하는 점이 문제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 강연중인 김진석 교수. ⓒ 김화영

기계에 의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점이 빼앗긴 건 사실이지만, 이건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소외 그 자체는 아니며, 인간중심적 견지에서 쉽게 얘기할 뿐이라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 만들어낸 말이지만, 오히려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고 시대와 맞지 않는 환상이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어떤 상황 속에 사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런 현상을 ‘소내’라고 표현했다. ‘소외’는 바깥으로 나가면 쓸쓸해진다고 생각하는데, 이 때 중심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내’는 존재 내부에서 낯설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소내’는 소외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 투정만 하지말고 내 안의 상처를 껴안고 가자는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포월’과 ‘소내’는 ‘초월’과 ‘소외’를 극복하자는 개념이다. ‘소외’와 ‘초월’이 기존 체제에서 배제 당한 데 따른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고 그것을 뛰어넘겠다는 것이라면, ‘포월’과 ‘소내’는 그것을 내 안의 긍정성으로 바꾸고 꼴 보기 싫은 현실이라도 부둥켜안고 부벼대자는 것으로 이해됐다.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문사철특강>은 도종환, 김진석, 한홍구, 이권우, 이주헌, 장승구 선생님이 맡았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를 교수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동안 <단비뉴스>가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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