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라면 다 보여줘야지. 홍보수단이 돼서야.."
[신문쟁이 방송쟁이]중징계 김용진 기자 인터뷰

KBS 명예 높인 탐사보도팀장이 명예실추 혐의로 정직?

요즘 KBS에는 ‘징계 플루’가 돌고 있다고 한다. 사측이 일으킨 ‘묻지마’ 식 징계 칼바람으로 징계에 걸린 사원이 크게 늘어난 것을 두고 하는 자조적 농담이다. KBS 부산총국 울산방송국 김용진 기자도 사측으로부터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선고받았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과잉홍보한 방송을 비판한 게 징계사유였다. 사측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이 KBS의 명예와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당수 KBS 동료들은 김인규 사장 체제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처로 본다. 오히려 KBS의 명예를 지키려다 당했다며 새노조를 중심으로 반발하고 있다. 김용진 기자는 사실 KBS 탐사보도팀 명데스크로서 KBS의 명예를 크게 높인 기자로 평가됐다. 그는 기자 11명과 함께 2005년 4월 국내 최초로 출범한 탐사보도팀을 이끌면서 사회 곳곳의 비리를 들추어냈고, 한국기자상(3회), 방송대상(2회), 이달의기자상(18회) 등을 휩쓸었다.

▲ 김용진 기자가 공영방송의 위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선필

그러나 이명박 정권 들어 KBS 사장이 바뀌면서 돌아온 것은 탐사보도팀과 본인의 수난이었다. 그가 애써 개척했던 방송의 미디어비평 영역도 ‘미디어 포커스’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바뀌면서 순치됐고, ‘시사기획 쌈’ 등은 폐지됐다. 팀장 직책도 박탈당한 채 <부산KBS>로 발령 났고, 한 달도 안 돼 다시 <울산KBS>로 전출됐다.

연말연시를 맞아 잠시 서울로 귀가한 김 기자를 2일 저녁 홍대앞 한 막걸리집에서 만났다. 그는 ‘담배 피워도 된다’는 주인 아주머니 허락에 안도한 듯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밤늦도록 '공영방송 KBS'에 대한 애정과 분노를 표시했다.

"G20 반대 목소리도 보도해야 공영방송"

“공영방송은 구성원들 것이 아니라 공적 자산입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소중한 것이죠. 지금 비록 KBS가 여러 어려움에 빠져있지만 KBS라는 공영방송 시스템 자체는 절대로 훼손돼서는 안 되죠. 시민들이나 단체에서 얘기들 합니다. ‘KBS는 정권 홍보방송이라 안 본다, 없어져라.’ 하지만 없어지면 다양한 목소리는 누가 담아냅니까? 없어지면 어떡하려고요. 바로잡으려고 노력해야죠. 정치적 독립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그런 것들을 감시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돼야 합니다.”

김 기자는 허물어져가는 공영방송의 위상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적어도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면 다양성과 공정성이 강조돼야 하는데도 ‘국정철학’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 김용진 기자 ⓒ 이선필
“공영방송이라면 다 보여줘야죠. 예를 들어 G20를 한다. 거기 맞춰 시위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도 보여주고. 음식물 쓰레기 배출 못하게 단속 했다가 시끄러웠던 적 있죠. 그런 것도 보도하고 말입니다. 매일같이 G20로 한국이 세계 중심국가로 우뚝 섰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면 어떡합니까?”

그러면서 그는 캐나다 공영방송 CBC 사례를 들었다.

“그들이 G20 보도한 것 한번 보세요. CBC가 G20에 맞춰 개설한 뉴스 블로그(G20: STREET LEVEL)를 보면 기자들과 시민들이 팀을 이뤄서 이모저모를 다 다뤘어요. 심지어 이런 것도 있어. 거리의 상점들을 돌아다니면서 시위 용품 파는 것도 소개하고. G20 열릴 때 입을 시위용 티셔츠도 소개하고. 그거는 그야말로 다양한 목소리를 보여주는 거죠. 시민들 중에는 G20 반대해서 시위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 아닙니까? G20에 들어가는 비용, 경찰의 과잉진압 등에 대해서도 비판해요. 결국 ‘사진 찍기용 회의가 아니냐’는 시민들의 시각도 전달되는 거죠. 우리처럼 모든 프로그램에 G20 내보내고 요란 떨지 않아요.”

그는 “방송법 6조에도 공정성에 대해 나와 있다”면서 “정부의 정책이나 특정 집단의 입장만 다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데스크도 아니면서 후배 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탐사보도는 '논란식 보도'를 확인하는 일"

“내가 후배들에게 늘 당부하는 게 뭐냐면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식으로 얘기하지 말라는 거야. 앵커멘트에서 ‘논란을 빚다’? 아니죠. ‘확인 했습니다, 밝혀졌습니다’라고 하라 그래. 기자가 하는 건 그거죠. 예를 들어 ‘누군가 투기 의혹이 있다’? 그럼 확인을 해야지. 확인이 안 되면 기사를 안 쓰는 거야. 대신 재차 자료를 확인하고 현장에 가서 또 확인을 하는 거죠. ‘우리 선에서 안 밝혀졌으면 기사 쓰지 말라’고 그랬어. 내가 탐사보도 할 때 민감한 아이템들을 피해가지 않았어요.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에 도덕성 문제가 많았잖아요. 하나하나가 민감한 이야기야. 땅이 몇 평이네, 재산이 얼마네, 숫자 하나 틀리면 끝장이죠. 그래도 우리가 단 한번 언론 중재위원회에도 걸린 적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기자를 부속품이 아닌 영혼이 숨 쉬는 저널리스트로 만들어주는 게 탐사보도라고 김 기자는 말했다. 관찰하고 보도할 수 있는 분위기, 그러한 환경조성이 중요하다며 기자의 역할을 다시 강조했다.

“쌍방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전해줘야 될 뉴스도 분명히 있죠. 정치권공방 등, 분명히 있는데. 우린 그런 걸 그대로 전하기보다 확인을 해야죠. 항상 야당은 이렇게 이야기했고, 여당은 이렇게 이야기했고.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갑이 뭐라고, 을이 뭐라고 하면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될 거 아니에요. 법은 위반 했나 안했나, 거짓말은 하나 안하나. 그리고 확인되면 보도하는 거야. 거기에 대해 본인이 해명 못하면, 그대로 가는 거지 뭐. 그럴 수 있는 환경조성이 중요해요.”

미국 미주리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탐사보도를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KBS에서 탐사보도팀을 이끌 때 특히 BBC의 <파노라마>가 많은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바뀌었는데 <파노라마>는 도입부에서 기자가 나와서 먼저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조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시작해요. 전쟁 직전이었나? ‘영국 정부가 전쟁에 나가기로 결정하더라도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 BBC의 임무’라고 하더군요. 우리 상황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BBC 상층부 이야기도 거침없이 다뤄요. 부러웠죠.”

▲ 지난 2005년 7월 22일 KBS <뉴스9>에서 '일제 훈장을 받은 한국인 3300여 명 확인' 리포트를 하던 김용진 기자. ⓒ KBS 캡쳐

기억에 남는 취재 순간을 물었더니, 2005년 석 달에 걸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했던 <최초공개,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 편을 들려주었다. ‘KBS 스페셜’을 통해 방송됐던 이 보도에서는 일본 내각 상훈국의 서훈 재가 문서 천여 권을 정밀 검색해 일제로부터 훈장 받은 3천3백여 한국인 명단을 찾아냈고, 분석을 통해 어떻게 친일세력이 형성되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를 규명했다. 사료적 가치뿐 아니라 친일행위자 명단 작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보일 때까지 파야 그게 언론인이지"

새해를 앞둔 지난 30일, 폭설 보도로 유명해진 ‘눈사람’ 박대기 기자를 비롯한 KBS 보도국 막내 35기 기자들이 성명을 냈다. 그들은 ‘사장님은 이제 결단하셔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KBS의 공정성이 의심받으면서 취재현장에서 겪었던 고초와 G20·4대강 보도 논란 등을 거론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더 힘든 것은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구성원들이 징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김 사장에게 ‘명예로운 퇴장’을 요구했다.

지금의 KBS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뭘까? 김용진 기자는 정치적 독립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권이 국정철학을 전파할 사람을 찾아서는 안 되며, 공영방송의 진정한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KBS를 지키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내부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힘이란 참 미약하기 때문에 노조가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처해야죠. 앞서 언급했지만 공영방송은 공적 자산이기에 꼭 지켜야 합니다. 법적인 효력이 있는 노조가 보다 조직화하고 보도나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죠.”

그는 팀장에서 평기자로 강등된 뒤 다시 노조원 자격을 회복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김 기자는 웃으며 “이래도 기자 하고 싶냐”고 물었다. 정말 기자를 하고 싶다면 “치열하게 끈질기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잡놈이 하는 거야. 무식하게 해야 돼요. 품위 따위는 없어, 기자한테. 보일 때까지 파야지. 그게 취재고 그게 언론인이지.”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